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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락 Jul 19. 2023

금은방 딸내미

내가 다섯 살 되던 해, 집에 있던 엄마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회사를 그만뒀다는 아빠의 전화였다. 전화를 끊고 나자 눈앞이 휘청했다. 몇 달째 제대로 잠들지 못하는 아빠를 보고 회사생활이 힘들다는 걸 대충 눈치는 챘었지만, 아침에 잘 다녀오라고 보낸 사람이 점심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퇴사를 통보할 줄은 몰랐다. 그것도 중학교 졸업식 다음 날부터 20년이 넘게 다닌 회사를.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렸다. “너무 다니기 싫다는데 어떡해.” 그날의 심경을 물어보면 엄마는 늘 이렇게 대답한다.


회사를 나온 아빠는 식솔들을 데리고 전국 방방곡곡을 놀러다녔다. 경치가 좋다는 국립공원부터 놀이동산, 야영장까지. 점심으로 구내식당에서 라면 한 그릇을 더 먹는 걸 최고의 행운이라 여겼던 그간의 세월을 보상받으려는 듯했다. 한바탕 유랑이 끝나고 자리 잡은 곳은 집에서 차로 20분 거리의 오래된 아파트 상가. 공연장과 백화점, 관공서를 마주하고 있어 목이 좋은 곳이었지만 장사를 하기엔 턱없이 좁다는 게 흠이었다. ㄱ자로 생긴 공간을 수리해 연 건 금은방. 진열장 안에는 반지와 팔찌가 놓였고, 벽에는 시계가 걸렸다. 바퀴가 달린 손님용 의자와 2인용 소파가 살림의 전부. 결혼하고 살림만 하며 살 줄 알았던 엄마는 하루도 빠짐없이 가게로 출근했다. 덩달아 유치원생이던 나도 란 버스를 타고 가게 앞에 내렸다.


유치원이 끝나는 오후 네 시부터 가게 문을 닫는 아홉 시까지 저녁과 밤을 집 대신 가게에서 보냈다. 가게에 오는 손님들은 나를 ‘금은방 딸내미’라고 불렀다. 자주 오는 단골들은 ‘공주야’라고 부르기도 했다. 가게엔 놀 거리가 무궁무진했다. 손님이 없을 땐 엄마와 아빠만 들어갈 수 있는 진열장 맞은편 통로로 쪼르르 사라졌다. 손님들의 시야에서 보이지 않는 통로 안에는 가게 주인의 작은 세계가 있었다. 무료한 시간을 견디게 해주는 TV와 한 칸짜리 냉장고, 시계약을 갈기 위한 의자와 은박 돗자리 같은 것들. 아빠가 바깥쪽 소파에 앉아 손님이 오는지 보고 있면 엄마는 통로에 돗자리를 깔아놓고 잠을 자기도 했다. 그럴 때면 굳이 엄마 을 파고 들어 함께 단잠을 잤다. 윙. 진열장의 전구 소리를 들으면서.


가게에 물건을 대는 도매상 아저씨들은 대개 요일을 정해놓고 방문했는데, 탁상시계 아저씨가 오는 날을 제일 기다렸다. 아저씨는 늘 새로운 모양의 시계를 들고 왔다. 노래에 맞춰 목을 까딱이는 앵무새 모양 시계나, 정각마다 북을 치는 병정 모양의 시계. 가끔 인기 많은 캐릭터 시계도 있었다. 여러 모양의 시계 중 아빠나 엄마가 마음에 드는 시계를 고르고 나면, 그 다음은 내 몫이었다. 조심스럽게 시계 뒤 까만 버튼을 한 바퀴 돌리면, 정각에 맞춰 시계가 노래했다. 한 번은 여러 시계가 동시에 노래하면 어떨까 궁금해서 시계 버튼을 죄다 같은 시간으로 맞춰놓았다가 한바탕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손님이 있을 때 어린 애의 존재는 득보다 실이 되는 경우가 많다. 손님용 소파에 떡하니 앉아 인형놀이를 한다거나, 바퀴 달린 의자를 씽씽 타고 놀 때마다 당황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엄마가 손님과 이야기하는 동안 아빠는 나를 데리고 외출하는 루틴이 생겼는데, 그럴 때면 늘 뒤에서 딸내미를  안고 종종걸음으로 상가 골목을 누볐다. 짧은 외출은 대개 상가 안에서 끝났다. 입구에 있는 자판기에서 200원짜리 율무차를 뽑거나, 르망제과에서 설탕이 가득 묻은 꽈배기를 사 먹었다. 송정약국의 밤색 나무의자에 앉아 요구르트를 마시며 알아 듣지 못할 어른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을 때도 있었다.


손님이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 땐 길 건너 상가 밖 세계를 구경할 수 있었다. 아카데미상가 앞 리어카에서 염통꼬치를 배부를 때까지 양껏 먹는다거나, 튀김을 파는 파란 트럭에서  팔뚝만 한 오징어 튀김을 사 먹는 일. 문구점 앞 게임기에서 묵찌빠 게임을 하고 메달을 잔뜩 받거나, 백화점 사탕코너에서 좋아하는 맛 사탕을 고르는 일들이 가능했다.


결혼예물을 맞추는 손님이 올 때면 엄마도 아빠도 손님과 함께 있어야 했다. 그럴 때는 급하게 나를 안고 가게 바로 옆 송정서점으로 향했다. 서점엔 아이들을 위한 퍼즐과 한글 포스터, 세계지도 같은 것들이 잔뜩 있었지만 나의 관심사는 언제나 짱구였다. 짱구 만화책이 있는 코너 바닥에 아무렇게나 앉아 책을 꺼내 읽었다. 알고 보니 19금 만화책이었던 <짱구는 못 말려>는 어린 내게도 묘한 기쁨을 주었다. 지금 알면 안 될 것 같은 걸 몰래 미리 아는 기쁨. 손님들이 가고 난 후, 서점에 들른 엄마는 읽고 있던 <짱구는 못 말려>를 한 권씩 늘 사주었다. 그 안에 어떤 비밀들이 숨겨져 있는지는 꿈에도 모른 채.


저녁 메뉴는 매번 비슷했다. 짜장면 아니면 우동이나 돈까스. 배달을 온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듯 쪼리를 신고 있었다. 쪼리를 신은 그들의 발을 보면 어떤 음식이 왔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소파를 식탁 삼아 신문지를 깔고 바퀴 달린 의자를 하나씩 끌어와 둘러앉아 먹는 저녁. 그 맛이 문득문득 간절해지는데, 이제는 모두 사라졌다고 한다. 반달 모양 분홍 오뎅이 들어 있던 우동을 파는 한 집만 상호를 바꿔 아직도 배달을 한다는데, 매번 본가에 갈 때마다 ‘시켜 먹어야지’ 하고는 놓쳐버린다.


중국집과 돈까스집처럼 우리 가게도 지금은 사라졌다. 내가 대학교에 입학하고 난 어느 날의 일이었다. 금은방에서 금을 사는 사람은 점차 줄었고, 금값은 천정부지로 올라 그나마 있던 단골들도 전처럼 발걸음하기 쉽지 않았다. 아빠와 엄마는 가게에 있던 금과 함께 가게를 정리했다. 애착이 남아 끝까지 내놓을 수 없었던 황금두꺼비와 호박반지는 안방 장롱에 고이 모셔두었다.


미광당. 네온사인으로 빛나던 간판의 세 글자가 없어졌다. 엄마도 아빠도 더 이상 금은방 주인이 아니고, 나도 금은방 딸내미로 불릴 수 없게 되었다. 가끔 엄마와 통화하는 단골들이 나의 안부를 묻곤 한다.

“쬐끄만 딸내미는 잘 지내?”
“쬐끄만 딸내미 벌써 시집 갔잖아. 걔 나이나 그때 우리 나이나 비슷해.”

매번 똑같이 놀라고, 똑같이 웃는다.


20년 가까이 금은방 딸내미였던 내게는 사실 좀 특별한 재주가 있다. 가만히 뚫어져라 보고 있으면 내 앞의 금붙이가 가짜인지 진짜인지, 진짜라면 14K인지 18K인지 24K 순금인지 구분할 수 있다는 것. 은색 금붙이도 백금인지, 도금한 화이트골드인지 구분해낸다. 어쩌면 금은방 주인의 자질이 있지도. 친구들이 끼고 온 반지나 팔찌를 볼 때마다 슬쩍슬쩍 보면서 혼자 즐거워한다. 어른이 되어 만난 친구들은 모르지만, 내게는 번쩍이는 과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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