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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락 Jan 04. 2024

당신의 첫 기억은 무엇이었나요?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을 때 이 질문을 던지는 걸 좋아한다.

“당신의 첫 기억은 무엇이었나요?”

내가 이 세상에 있음을 실감하게 했던 첫 기억. 그건 대개 섬광처럼 날카롭게 시작된다. 새해를 축하하는 폭죽이 ‘펑’ 하고 터지듯이 찰나에 모든 감각이 한꺼번에 깨어난다. 분명 그 전에도 웃거나 울거나 말하거나 했을 텐데, 마치 그날 태어난 것 같다.


나는 울고 있다. 무엇 때문에 우는지는 모르겠는데, 울음을 멈출 수가 없어서 더 크게 울어버린다. 내 울음 소리에 노래 소리가 묻힌다. 나는 어딘가에 앉아 있고, 내 옆에는 한 여자가 있다. 세상에 나와 처음 본 듯한 그 여자를 나는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생각한다. 여자는 노래를 부르며 손가락을 움직이고, 손가락의 움직일 때마다 노래가 만들어진다. 여자는 피아노를 치고 있다. 노래를 부르는 건 여자뿐만이 아니다. 등 뒤에서 우렁찬 노래 소리가 들려온다. 이 곳은 1993년 색동유치원 병아리반. 아이들은 큰 소리로 노래하고, 나는 더 큰 소리로 운다.


유치원의 아이들과 내가 다른 점은 노래와 울음 말고도 또 있다. 이 반에서 나만 여섯 살이고, 모두 다섯 살이다. 엄마가 일하러 나가기 시작한 여섯 살에 나는 유치원에 입학해야만 했는데, 엄마와 헤어지는 순간부터 유치원이 떠나가라 울었다고. 급기야 6세반에서 5세반으로 강등되었고, 5세반에서도 선생님 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니는 껌딱지가 된 것. 한 해가 지나 같은 반 동생들이 6세반으로 올라갈 때, 나는 홀로 7세반으로 두 계단 뛰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사귄 친구들이 한 살 어려서일까. 지금도 나는 한 살 어린 친구들이 이상하게 편하다. 재수를 한 덕에 한 살 터울 친구들이 많아져서 참 다행이라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가끔 기억은 기적의 증거물이 되기도 한다. 깜깜한 유치원 안에 붙어 있는 꽃 장식, 동네 골목길 모퉁이, 할머니가 준 500원짜리 동전.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세 컷의 장면은 지금까지 엄마가 놀라워하는 기적의 조각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늦잠을 자고 유치원 버스를 놓친 나는 엄마 차를 타고 유치원에 갔다. 차를 세운 엄마는 1층 복도까지 내 손을 잡고 들어와 안녕 하고 떠난다. 문을 열고 들어선 교실에는 아무도 없다. 선생님과 친구들 이름을 부르며 유치원 이곳저곳을 둘러보지만 누구의 대답도 들리지 않고, 어느새 목소리는 울음이 되어 유치원을 가득 채운다. 악을 쓰며 여러 사람의 이름을 불러봐도 돌아오는 건 더 커진 내 울음소리뿐이다.


그 다음 기억은 엄마에게 있다. 가게에 출근한 엄마는 나의 할머니, 그러니까 시어머니의 전화를 받는다. 받자마자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니느냐는 불호령. 뒤이어 여섯 살 아이가 엉엉 울면서 유치원에서 노인정까지 걸어왔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 엄마의 뇌리에 스친다. 내일은 7세반 아이들의 졸업식 다음 날이라 휴원한다는 선생님의 이야기가. 찬물을 끼얹은 듯 등에 소름이 끼친다.

“거길 어떻게 너 혼자 걸어왔어?”

“몰라. 골목길 걸어온 거랑 계속 우니까 할머니가 과자 사러 가자고 500원 준 것만 기억 나.”

“엄마는 그날 생각만 하면 지금도 가슴이 덜컹한다. 그 쬐끄만 게 혼자 텅 빈 유치원에 있었을 생각을 하면…

그날의 기억을 거의 잃은 나는 별로 놀라워하지도 않는다.


기억이 시작되고 나서는 듣고 보는 모든 게 처음이었을 텐데, 유독 바다를 처음 본 기억만이 선명하다. 그림으로 보던 바다와 실제의 바다는 너무 달랐다. 미술학원에서 바다를 그릴 때면 꼭 새파란색으로 스케치북을 모두 채우곤 했는데, 눈으로 본 바다는 그렇게 파란색이 아니었다. 학습지에 나오는 것처럼 문어와 불가사리, 조개와 물고기가 마구 보이지도 않았다. 보이는 거라곤 엄청나게 많은 물 뿐이었다. 엄청나게 큰 욕조 같았다. 그날은 한 해의 마지막 날이라 다음 날 아침에 해가 뜨는 걸 보고 집으로 왔다. 집으로 가기 전에 잠깐 혼자 바다를 걸을 시간이 있어, 언젠가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파도 옆에서 터덜터덜 걸어보았다. 바다와 하늘이 만나는 곳을 바라보면서. 그때 마음에 눈물이 맺히는 기분이 들었다. 어른들은 그걸 슬픔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드라마 속 주인공의 슬픔이 내게도 전염된 걸까. 나도 이제 슬픔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속으로 으쓱해하며 처음으로 찾아 온 슬픔을 느꼈다. 가슴 어딘가가 깎여나가는 기분.

‘이런 게 가슴이 아프다는 건가?’

슬픔에 이어 가슴이 아프다는 말의 뜻도 알게 되었다. 이제 여덟 살인데 벌써 어른이 된 것 같았고, 몸이 자랄 때까지 기다려야만 하는 시간이 하염없이 길게 느껴졌다. 대체 언제 어른이 될 수 있으려나.


사랑을 알게 되면 어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사랑도 좀 일찍 알아버렸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영어학원에 다니던 오빠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학원을 오래 다닐수록 좋아하는 마음이 풍선처럼 점점 늘어났다. 처음에는 학원에서만 오빠를 좋아하다가 학교에서도 오빠 생각을 하면서 오빠를 좋아했다. 그러다가 오빠 생각만 하면 잠이 안 와서 밤에 천장만 보면서 뒹굴거리는 시간이 길어졌다. 엄마 말로는 사랑을 하면 아이가 생긴다던데. 밤에 문득 무서워졌다.  

‘어떡하지? 배 속에 오빠랑 내 아이가 있으면?’

아랫배를 만져보니 어제보다 더 나온 것도 같았다.

‘엄마아빠한텐 어떻게 말하지? 아이가 생긴 것 같다고 말하면 어떻게 되려나?’

상상은 정신없이 앞으로 달려 날이 갈수록 배는 부풀어 오르고, 부른 배를 감추려 애쓰다가 결국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임신을 들키고, 학교를 그만두고 아기를 키우는 나에 이르러 멈춘다.

‘이제 조금만 좋아해야겠다.’

며칠 후, 영어학원에서 오빠를 쳐다보지 않으려 기를 쓰고 노력한다. 어쩐지 그날 밤에는 배가 좀 더 줄어든 기분이다. 휴, 안심하고 잠에 든다. 사랑을 어제보다 좀 더 모르게 됐으니, 좀 더 천천히 어른이 될 수 있다며.


사랑을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가 누군가에게 품었던 마음을 다른 사람이 나에게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그때까지 나는 인생이 내가 주인공인 한 편의 연극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상대역으로 등장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다리로 걷고 자신의 생각대로 말하고 자신의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들의 눈엔 나도 그저 친구1이나 행인1의 배역을 맡은 상대일 뿐이라는 사실을 한 마디 말로 깨닫게 되었다.

“내가 좋아한다던 사람 있잖아. 그거 너야.”

같은 반 친구의 고백. 또래 남자애답지 않게 다정하고 사려 깊었던 그 애에게 나는 종종 좋아하는 오빠 이야기를 했었다. 그 애도 나처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에 더 신이 나서 오빠 이야기를 했는데, 좋아하는 사람이 나라고 했다. 내가 오빠를 좋아하는 것처럼 그 애가 나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다가 너무 기뻤다. 골목길에서도 오빠가 지나가는 곳만 환하게 보였는데, 내가 지나가는 길도 그 애에겐 그렇게 보이리라는 사실이 놀라워서 사귀자는 그 애의 말에 냉큼 그러자고 해버렸다. 그렇게 그 애는 내 인생 첫 남자친구가 되었다. 누군가와 사귀게 되면 좋아하던 사람을 그만 좋아해야 한다는 건 나중에야 깨달았다. 오빠를 그만 좋아할 수가 없었던 나는 한 달이 안 되어 그 애와 헤어졌다. 인생 첫 이별이었다.


중학교 수학여행 때는 첫 술을 마셨다. 머리 좋은 한 친구가 소주를 변기 몸통 안에 숨겼고, 가방검사에서 살아 남은 한 병을 다섯 명이서 나눠 마셨다. 그 중 한 명은 내가 남자친구와 헤어지자마자 그 남자친구를 사귀었고, 내게 첫 배신을 안겨주었다. 첫 성취로 나고 자란 지역에서 명문이라는 여고에 입학했고, 이유를 알 수 없이 친구들이 하나씩 멀어지는 첫 상실을 경험했다. 내가 속한 무리 중 한 친구의 농간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모두가 그 친구를 멀리할 뿐 나와 다시 가까워지려 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아침부터 밤까지 종일을 붙어다닌 첫 친구를 만났고, 망친 파마머리에 망친 수능 성적표를 들고 첫 좌절을 겪으며 마침내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 되어서는 처음에 설레기보다는 마지막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었는데, 두려운 마음 가운데서도 어김없이 새해처럼 처음인 것들이 찾아와 낯선 감각을 일깨워주었다. 30대가 되면서는 처음인 것들도 마지막 못지 않게 무서워하게 되었는데, 마지막인 것을 마주할 때 으레 하는 것처럼 처음인 것들을 맞닥뜨릴 때 ‘이건 처음이 아니야’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면 조금이나마 안심이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다른 사람들의 처음에는 관심이 많아서 전혀 관계 없는 대화 도중에 아이 같은 표정을 하고는 이렇게 묻는다.

“당신의 첫 기억은 무엇이었나요?”



* 글쓴이의 말

새해 첫 글이라 처음에 관해서 써봤습니다. 일하다 만난 분이든 친한 친구든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에게 '첫 기억'을 자주 물어보는데요. 상대방의 대답을 듣다 보면 이상하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알게 되더라고요. 일로 미팅하다가 여쭤본 적도 있는데요. 정말 어린아이 같은 표정으로 대답해주셨던 기억이 나요.

처음 기억 나는 순간 이전에도 우리는 웃고 울고 말하고 있었을 텐데, 유독 처음 기억 나는 순간이라는 건 그 사람에게 그만큼 인상적인 순간이었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혹시 친해지고 싶은 분이 있다면 한번 이야기해봐도 좋은 질문 같아요. 마침 또 올해 첫 달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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