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담을 좋아한다. 무언가 간절히 원하다 결국엔 놓쳐버렸다는 이야기. 놓치고 나니 사실은 모든 걸 놓친 건 아니었다는 이야기.
어떤 꼬마는 동네 기타교실에 간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 같은 곡을 연주하고 농담도 나누는 곳인데, 형과 누나 들을 따라 기타를 치다가 어느 순간 알아버리고 만다. 그 기타교실에서 자기가 기타를 제일 잘 친다는 걸. 작은 손을 가진 꼬마의 실력은 선생님을 비롯해 모두의 관심사가 된다.
꼬마는 집에 돌아와서도 연주 연습을 멈추지 않는다. 연주곡에서 매일 새로운 대목을 발견하며 부모를 부르지만, 잘한다는 칭찬이 돌아올 뿐 그의 발견을 공감해 주지 못한다. 음악의 새로움을 발견하는 감각이 그에 비해 섬세하지 않았던 탓이다. 시간이 흘러 그는 클래식기타라는 낯선 분야로 미국 최고의 음악대학에 입학한다.
음악에 예민한 이들이 모인 곳. 기숙사에서는 아침부터 온갖 악기의 즉흥 협연이 펼쳐지고 매일을 음악과 함께 보낸다. 칭찬에 익숙했던 그는 교수에게 아주 기본적인 음부터 천천히 다시 연습해보라는 믿지 못할 조언을 듣는다. 생전 처음 기타를 연주하는 사람처럼 연습을 시작하고, 고뇌가 시작된다. 좋은 음악이란 무엇인가, 재능이란 무엇인가, 나에게는 과연 재능이 있는가, 같은.
졸업 후, 오스트리아 빈으로 온 그는 친구와 팀을 결성해 공연을 다니기 시작한다. 클래식의 본 고장에서 클래식과 팝을 합친 기타 연주의 새 지평을 열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하지만 그들이 설 무대는 많지 않다. 가까스로 잡은 술집의 공연에서 손님들은 환호하다 이내 술을 마시러 사라진다. 주인은 약속한 금액의 10분의 1밖에 주지 않는다. 지쳐가던 그는 기타 연주를 그만두고 미국으로 돌아온다.
기타를 떠난 그가 잡은 첫 일자리는 음악전문출판사의 편집자 자리. 일도 상사도 괜찮았지만, 어딘가 빈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결국 그만둔다. 뒤늦게 문학 공부를 시작해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게 된다. 오랜 시간 방치되어 있던 기타를 마주한 어느 날, 굳은 손으로 기타 연습을 시작한다. 그 날부터 매일 아무런 목표도 봐주는 사람도 없이 중년의 남자가 창가에서 기타를 친다. 연습이 끝나면 오늘의 연습 이야기를 글로 남긴다. 그 글이 모여 『다시, 연습이다』라는 이름의 책이 되었다.
조금씩 나아진다는 기분. 연습이 주는 행복감이 필요했다고 그는 말한다. 자신은 기타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연습의 과정 자체를 즐긴 것 같다고. 연습은 더디다. 매번 상상에 못 미치는 자신을 대면해야 하니까. 우습고 부끄러워도 매일같이 앞으로 나아간다. 나아가면서 나아진다. 아주 조금씩. 오직 자신이 알아챌 수 있는 만큼만.
나는 오랫 동안 글을 쉬었다. 글을 쓰려고 들어갔던 대학교 문학회엔 나보다 아는 게 훨씬 많고 멋들어진 글을 쓰는 친구들이 있었다. 무엇보다 나는 열정이 부족했다. 좋은 소설을 읽어도 그 순간만 ‘아, 좋네’ 할뿐 아이돌처럼 열정적으로 파고들지 않았다. 언제까지 써야 한다고 하면 시간 맞춰 써낼 뿐, 좋은 걸 써야 한다는 욕심도 크지 않았다. 문학회를 나온 나는 졸업을 하고 나서도 글 근처를 피해 다녔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다녔지만 매번 오래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오래 고민했다. 고민의 앞머리에는 ‘나는 왜’라는 세 글자가 늘 쓰는 물건처럼 놓여 있었다. 나는 왜 이렇게 끈기가 없는가. 나는 왜 남들 다 잘 다니는 회사를 견디지 못하는가. 나는 왜 이렇게 매번 힘든가. 나는 왜 힘든 걸 못 참는가. 어린 애도 아니고, 싫은 걸 견뎌낼 정도로 철이 든 것도 같은데 매번 왜 나는, 왜 나만…
직장과 건강을 모두 잃고 나서 기적처럼 글을 쓰게 되었다. 뭐라고 써야 할지 몰라 반 장만 쓰는데도 머리에 땀이 났다. 쓰고 나서 뭐라고 썼는지 다시 한 번 읽어보았다. ‘겨우 이걸 썼다고?’ 웃음이 났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아주 부끄러운 나의 것을 만들었다.
매주 고래의 꿈을 꾸고 ‘에계?’ 하는 마음으로 급하게 빈 화면을 글씨로 채운다. 빈 화면 안에서는 의외로 편안하다. 깊은 물 속에 잠겨 있는 다이버의 마음이 이런 걸까. 내보일 때는 목소리를 떨면서도 ‘다음 주에 잘 쓰면 되지, 뭐’ 하고 다짐해버린다. 실력이 아닌 배포가 조금씩 커진다.
하루 중 어디에도 없던 글이 삶의 귀퉁이로, 천천히 중심으로 들어온다. 아파트 단지를 산책하면서, 아침에 고양이와 눈을 맞추면서 이번엔 뭘 쓸까 생각한다. 샤워를 하면서 길지 않았던 인생의 순간을 되짚는다. 이런 것도 혹시 글이 될까 하면서. 중심을 잘 잡으면 작은 일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중심에 둔 일이 아니라면 크게 마음 쓰지 않게 된다.
꾸준히 쓸 수만 있으면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해도 괜찮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태어나 처음으로 해보았다. 실적과 주위의 인정에 연연하지 않고 조금은 여유롭게 웃어가며 일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일이 끝나고 뭐든 쓸 수 있는 약간의 시간만 있다면. 글 쓸 수 있는 약간의 시간, 그게 없어서 그 동안의 나는 그토록 불안했던 게 아닐까. 너무나 미워했던 과거의 나를 이해해버린다. 잘라내버리고 싶었던 인생의 이해.
나는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글쎄, 언젠가는 그럴지도 모르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그렇게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기억하고 싶은 내 잡다한 이야기를 쓰고 있을 뿐, 아직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하고 싶은 말을 찾지 못했다. 그래도 매주 써야 할 시간은 다가오고, 완벽히 준비되지 못한 채로 무대에 오르는 가수처럼 키보드 위에 두 손을 올린다. 오늘은 나한테서 또 뭐가 나올까 궁금해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