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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락 Feb 20. 2022

아이

※성북구 책방 '부비프'에서 매주 수요일 열리는 온라인 글방에 참여해 쓴 글입니다. 매주의 글감과 필자의 글, 짧은 모임 후기를 올립니다. 

이 주의 글감

'연대'는 타인을 이해한 후에야 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에 대한 이해와 상관없이 그들을 인정할 때 가능하다.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 타인의 존재를, 그이의 고유한 세계가 있음을 부정하는 핑계가 될 수는 없다. 내가 이해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타인의 세계는 엄연히 존재한다. 
탓해야 할 것은 타인이 지닌 낯선 특징이 아니라 
그 세계를 인정하지 못하는 나의 편협함이어야 한다. 
<타인을 듣는 시간>, 김현우 

글을 쓸 때는 제일 먼저 가족을 떠올린다. 그렇기에 어떤 글감을 받더라도 결국은 가족 얘기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 글방에서 엄마아빠도, 남편도, 고양이도 글로 남겼는데 아직 글 되지 못한 한 사람이 있었다. 늦둥이 내 동생. '타인의 세계'라는 표현에 아주 딱 맞는 아이. 그래서 글의 제목도 '아이'가 됐다. 


나에게는 열 살 어린 동생이 있다. 나라는 세계가 머릿속에서 어느 정도 자리잡은 다음, 세상에 나온 생명체다. 내 옆에서 꼬물거리는 작은 생명을 나는 어떻게 대해야 좋을지 몰랐다. 모르는 동안 아이는 쑥쑥 자랐고, 한 침대에서 매일 꼭 껴안고 자던 아이는 나보다 큰 어른이 됐다. 


크면서 동생이 내게 자주 한 말은 “왜 화를 내?”였다. 작은 일에도 불안해하고, 화가 나 안절부절못하는 나를 그 아이는 자주 아니꼽게 올려다보았다. 그럴 때면 작은 몸에 몇 천년 전 부처의 혼이 들어가 있는 건 아닐까, 겸허해지기도 했었다. 그런 아이였다. 자기 중심을 잘 잡고, 크고작은 집안의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던 큰 나무 같은 어린 아이. 


회사에 적응하느라 바빴던 스물 다섯 무렵,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아이가 계속 학교에서 배가 아프다고 한다는 거였다. 정확히는 배가 아픈 게 아니라, 자꾸만 자기 배에서 큰 소리가 나서 다른 친구들이 들을까봐 걱정하느라 자리에 앉아 있는 게 고역이라는 이야기였다. 

“그거 한번 신경 쓰면 자꾸 그래. 시간 지나면 저절로 괜찮아질 걸?” 

대꾸했지만, 그건 마음의 병이 내는 소리였다. 아이는 대전까지 심리상담을 다녔는데, 상담 선생님 말에 따르면 상담 내내 속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게 먼 거리를 오가기만 하다 상담은 끝나버렸다. 


아이는 고등학교에 갔고, 늘 그랬듯 거기에서도 친구가 많았다. 밴드부에서 일렉 기타를 치기도 했다. 옆학교 남학생들에게 인기도 있었다. 나이 든 언니는 동생 친구들을 쫓아다니며 사이좋게 지내라고 당부했다. 학교 축제날에는 플랜카드를 들고 맨 앞자리에서 밴드부 공연을 봤다. 창피하지만 아이를 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남자 고등학교 축제도 몰래 갔었다. 초대공연을 온 그 아이가 생각지도 않던 언니 얼굴을 보고 얼굴이 붉어지던 기억이 생생하다. 


다른 지역으로 대학교를 가서는 방을 얻어 혼자 살기 시작했다. 학생회 활동에도 열심이었고, 화장술도 날이 갈수록 늘어, 늘 뺨이 복숭아 같았다. ‘한번 가봐야지’ 하고선 그 아이 방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지나가는 말로 ‘한번 갈까?’ 하면 ‘볼 것도 없는데, 내가 서울 와야지’ 그랬다. 


벌써 대학교 졸업반, 취업준비 대신 시험준비를 택한 아이는 학원이 있는 서울로 이사왔다. 서울에서 얻은 방은 이전에 살던 방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작았다. 나름 오피스텔인데도 싱글침대 하나와 책상을 두니 공간이 꽉 찬다고 했다. 방을 얻으러 함께 다니고, 이사 전에 한번 들른 후에는 또다시 걸음하지 않았다. 대신 아이가 고양이와 언니를 보러 우리집에 자주 온다. 


“언니, 저 약 뭐야?” 

밥을 먹다가 식탁 위에 쌓여 있는 약봉투를 보고 묻는다. 

“어… 저번에 먹던 약. 아직도 못 끊었어.” 

“근데 언니, 저 약은 어디서 짓는 거야?” 

생각지 못했던 물음이었다. 

요즘 도서관과 방만 반복해서 오가는데, 언제부턴가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무기력해졌다고. 근데 우울한 건 또 아니라고. 

“우울증이랑 우울감은 또 다른 거야. 혼자 결정짓지 말고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아. 약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면 최대한 빨리 먹는 게 좋고.” 

친구들에게 그러하듯 유명한 병원을 지도에서 찾아줬다. 


아이가 집으로 가고 나서야 실감한다. 아무리 돌을 던져도 파문조차 일지 않는 호수 같은 작은 아이가 아파하고 있다는 것을. 며칠 내내 고민하다 약을 핑계로 최대한 가벼운 무게로 할 말을 꺼냈다는 것을. 


나는 동생을 얼마나 아는 걸까. 그 아이가 내게 보여주려 했던 모습은 아이의 진짜 얼굴 중 아주 일부분일지도 모른다. 내가 없는 시간과 공간에서 그 아이는 어떤 얼굴로 살았던 걸까. 

그 아이는 보기 좋은 모습만 봐주기를 바랄까, 숨어 있는 모습도 발견해주길 바랄까. 그 아이가 기대려 했던 무게만큼만 기댈 수 있으면 그걸로 되는 걸까. 


“잘 도착했어!!” 

아이의 메시지가 왔다. 느낌표 뒤에 웃고 있는 이모티콘이 가득하다. 아이가 도착한 작은 방이 어떤지 나는 묻지 않는다. 저녁은 뭘 먹을 것인지도. 

“저녁 잘 먹고, 또 놀러와~” 

짧게 답장을 보내고 휴대폰을 식탁에 둔 채 거실로 간다. 편안한 내 자리에 앉아 늘 그랬듯 TV를 응시한다. 아이가 빠진 일상이 물흐르듯 이어진다. 

(2022.2.1) 


모임날은 설날 바로 다음날이었다. 쓴 글을 읽는 내내 본가 거실에서 친척들이 고스톱을 치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모임이 끝나고 나서 방을 나왔는데 마침 '아이'가 부엌에 있었다. 자주 보는 얼굴인데도 왠지 낯설게 느껴졌다. 

모임에서는 '자기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외향적인 사람'에 관해 이야기했다. INFP인 나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이지만, 외향적인 성향의 Y님은 그럴 수도 있다고 했다. 반면, 나는 내향적인 사람들과의 네트워크가 발달되어 있어, 아주 작은 일이 있어도 내 주변의 내향인들에게 상의하는 편인데 그러면 나는 과연 내향적인 사람인 걸까. 외향적이면서도 내향적인, 내향적이면서도 외향적인... 설명되지 않는 타인들이 (나를 포함) 세상에는 차고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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