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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락 Mar 21. 2022

비밀

※성북구 책방 '부비프'에서 매주 수요일 열리는 온라인 글방에 참여해 쓴 글입니다. 매주의 글감과 필자의 글, 짧은 모임 후기를 올립니다. 

이 주의 글감 

나는 용서한다. 


대학원에 입학하면서 심리학으로 진로를 바꾼 언니의 졸업논문 주제는 용서였다.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면서까지 공부하고 싶은 주제였다. 언니에겐 절실했을 것이다. 평생을 두고 미워한 사람을 사랑하고, 그래서 용서하는 일이. 갓 스물이 된 나에게 연구에 쓸 녹음테잎을 들려주던 언니는 숨쉬고 싶어 하는 금붕어 같았다. 


언니가 다섯 살이었을 때, 엄마가 아빠와 결혼했다. 언니의 기억이 시작되었을 때 즈음, 언니의 엄마는 나의 엄마였던 것이다. 엄마가 된 엄마는 언니와 거리를 두었다. 자신의 아이였지만 결코 자신만의 아이는 아니었기에, 혼내는 일도 조심스러웠다고 했다. 아이를 직접 나무라고 가르치는 대신, 같이 살던 할머니에게 양육을 맡겼다. 


1년 후, 언니에게 동생이 생겼다. 그렇지 않아도 커져가던 모녀 사이의 구멍은 차츰 돌이킬 수 없는 간극이 되어갔다. 나와 언니는 자연스럽게 한 지붕 두 아이처럼 자랐다. 집안의 불안한 고요 속에서 엄마의 사랑을 받고 싶은 언니의 마음은 조용히 자라났다. 하지만 돌아오는 엄마의 관심은 너무 늦거나, 기대에 턱없이 모자랐다. 

중학생이 된 언니는 놀기 좋아하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비행을 일삼았다. 아빠와 엄마는 교무실에 불려가 머리를 조아리는 일이 잦았고, 가까스로 정학을 면한 언니는 수업을 듣는 대신 조회대 옆에서 풀을 뽑았다. 


그러던 언니가 엄마의 자랑이 된 건 아주 우연한 행운 덕분이었다. 교무실에 드나들던 엄마가 언니의 성적표를 보게 된 거였다. 함께 사고를 친 친구들과는 달리, 언니의 성적은 반에서 12등으로 우수한 편이었다. 엄마가 지나가는 말로 “공부를 곧잘한다”는 말을 한 다음날부터 언니는 밥상을 펴고 공부를 했다. 같이 놀던 친구들과도 더는 어울리지 않았고, 일년을 바짝 공부해서 명문고에 입학했다. 


내가 우리집의 비밀을 알게 된 건 중학교 3학년 때였는데, 너무 울어서 쉰 목소리로 새벽에 전화를 건 내게 서울에 살던 언니는 놀라지 않고 대답해주었다. “우리가 남처럼 산 것도 아니고, 평생 한 가족으로 살았잖아. 달라질 건 없어. 괜찮아.” 


괜찮다며 나를 안심시키던 언니는 사실 전혀 괜찮지 않았다. 언니의 머릿속엔 항상 저울이 있어서 엄마의 사랑이 어느 쪽으로 기우는지를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저울이 내 쪽으로 기울어질 때마다 좌절하던 언니는 어느 새 좌절에 익숙해졌고, 익숙해진 좌절은 분노로 바뀌고 있었다. 


성인이 되어 마주한 언니는 살아있는 시한폭탄 같았다. 언니 몸엔 수없이 많은 분노 버튼이 내장되어 있어, 즐거운 대화 중에도 별안간 화를 내지르기 일쑤였다. 대부분의 레퍼토리는 이랬다. “어학연수를 가겠다고? 내가 어학연수 간다고 했을 때 엄마는 쌍수 들고 반대했었어.”, “대학원 간다고 말했는데 엄마가 암말도 안 하든? 나 대학원 갈 때는 온갖 핑계를 대면서 취업하라고 하더니.” 물론 나는 언니와 엄마 사이에 있었던 일을 알 길이 없었다. 그렇기에 얼음물을 뒤집어쓴 사람처럼 얼떨떨한 상태로 언니의 분노를 받아내야 했다. 


마음이 아팠던 언니는 임상심리사가 되어, 마음 아픈 사람들을 치유해주었다. 하지만 끝끝내 스스로를 치유하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오래 사귀던 남자와 결혼식을 치른 후, 언니는 가족을 떠났다. 


이제 언니는 아무도 용서하지 않아도 된다. 사랑하는 이가 내게 저지른 잘못을 하나하나 돌이키고, 그걸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덮어주는 수고를 들이지 않아도 된다. 떠나기 전, 언니는 내게 사과를 했다. 어릴 적부터 미워하고 질투했던 작은 일들 모두 미안하다고.


나는 언니를 용서하기로 한다. 태어났을 때부터 언니는 내 언니였기에, 그의 모든 잘못을 사랑으로 소복히 덮어주고 싶다. 더는 언니가 아닌 그가 모자람 없이 사랑받고, 마음껏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2022.3.8)



"새벽이면 고백하게 된다." 

지난 번 Y님의 글 속에 있었던 문장이다. 이 문장을 나는 이렇게 바꾸고 싶다. "글방에 오면 고백하게 된다"고. 

매주 글감을 받을 때마다 가슴에 콕 박히는 주제가 있는데, 시간을 보내면서 어떻게든 그 주제를 피해보려고 애쓰지만 결국 그 주제로 쓰게 된다. 마감일이 촉박할 때는 더욱 그렇다. 

나 자신에게도 잘 내보이지 않는 내밀한 일들을 쓰고, 사려깊은 이들 앞에서 읽고 있으면 떨리면서도 위로받는 느낌이 동시에 들곤 한다. 

그래서 글방 글은 늘 마감일 새벽에 쫓기듯 쓴다. 더 즉흥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망설임 없이. 

'이 글도 브런치에 올릴 수 있을까'를 오래 고민했다. 하지만 가끔씩 올라오는 따뜻한 댓글을 보면서 누군가에게 고백하는 마음으로 기록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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