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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락 Apr 04. 2022

천천히 무엇인가 되어간다

요즘 친구들의 최대 고민은 ‘내가 무엇이 되면 좋을까’다. “집 꾸미는 거 좋아하니까 인스타를 해보면 어때?”, “느낌이 데리고 냥튜브는?”, “그냥 지금처럼 프리랜서로 사는 것도 좋지 않아?”, “편집자 잘 맞았잖아. 다시 편집자하자!”. 이 모든 말들은 사실 나의 한 가지 물음에서 비롯됐다. ‘나, 도대체 뭐가 되면 좋을까?’라는.


“나는 나는 자라서 무엇이 될까요? 나라사랑 가르치는 선생님이 될 테야.”

초등학교 1학년 즐거운생활 시간에 배웠던 노래다. 교실 뒤편 나무엔 사과 모양 도화지에 쓴 반 아이들의 꿈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과학자, 소방관, 군인, 디자이너, 대통령까지. “작가가 되렴” 하던 담임 선생님의 한 마디에 나는 ‘작가’라는 꿈을 매달았었다. 동화작가, 소설가, 시인으로 조금씩 달라졌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쭉 작가를 꿈꿨었다.


대학교에 가서는 꿈이 없었다. 꿈꿀 시간이 없었다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그날그날 재밌는 일들이 많았기에,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무언가 되어 있을 거라고 믿었다. 친구들이 토익 점수와 컴퓨터 자격증을 따느라 분주할 때도 혼자 중앙도서관에 틀어박혀 읽고 싶은 책을 쌓아놓고 읽곤 했다. 아쉽게도 졸업할 때까지 나는 즐거운 백수였을 뿐,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았다.


라디오PD는 어떻게든 취업시장에 명함을 내밀어야 했던 날의 어쭙잖은 꿈이었다. 어릴 때부터 라디오를 좋아했고, 라디오가 만들어내는 특유의 포근함이 좋았지만 라디오PD가 뭘 하는 직업인지는 하나도 알지 못했다. 운 좋게 처음으로 이력서를 낸 방송사에서 최종면접까지 올라갔지만, 아무런 준비가 없었기에 보기 좋게 떨어지고 말았다. 라디오 방송 현장을 알고 싶어 지원한 아르바이트 면접장에서 면접관인 라디오PD는 내게 말했다. “라디오PD 하고 싶으면 이 알바 하지 마요. 어차피 우리 모두의 꿈은 정규직이잖아?” 잘 생각해보고 연락달라는 그에게 끝내 연락하지 않았다.   


좁아터진 방 컴퓨터 의자에 앉아 빙글빙글 돌며,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요즘 사회는 돈으로 시간을 살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직후였다. 좋아하는 책을 읽고, 쓸데없는 상상을 마음껏 하며 살려면 무슨 일로 시간을 벌어야 할까? 고민 끝에 생각해낸 답은 두 개였다. 발명과 이모티콘 그리기. 인류의 눈이 번쩍 뜨일 발명품을 만들어 특허를 내면 평생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거였다. 나처럼 그림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못 그리는 그림’을 콘셉트로 이모티콘을 그려 팔면 B급감성으로 대박이 날 수도 있지 않을까? 그 무렵, 내 책상 앞 벽엔 발명 아이디어와 이모티콘에 들어갈 그림이 담긴 포스트잇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 중 하나도 실현해보지 못한 채 회사원이 되었다.


출판기획자. 회사원으로서 내가 얻은 첫 번째 직업이었다. 어린이책을 만들 땐 낯설기만 한 독자들을 이해하려 주말마다 동네도서관에서 ‘동화책 읽기’ 봉사활동을 했다. 매일 내 기획노트는 온갖 아이디어로 채워졌다. 하지만 입사한 지 2년이 채 안 된  신입사원에게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일과를 끝낸 후 밤에 쓴 기획안을 다음 날 상사와 마케터에게 보여주었지만, 그 어떤 피드백도 오지 않았다. 막내가 열심히 한다는 흐뭇한 미소뿐이었다. 꿈없이 일만 하던 나는 병이 났고, 1년을 백수로 지내다 다른 출판사로 자리를 옮겼다.


그 즈음 나를 움직였던 책 제목이 있다.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꼭 무엇이 되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저 일상을 지탱하는 몇 가지 즐거움과 함께 살아간다면, 엄청난 ‘무엇’이 필요할 리 만무하지 않은가. 서른이 된 내겐 일 말고도 사랑하는 것이 많았다. 매일 내 귀를 설레게 하는 뮤지션도 있었고, 갓 가족이 된 고양이도 있었고, 일과에 지친 나를 깨워주던 요가도 있었다. 덕질과 고양이와 요가. 내가 사랑하는 세 가지가 삼각형을 이루어, 안정되게 나를 지지해주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행복한 마음 한편에서는 갈급증이 일었다. 일에 내 에너지를 좀 더 쏟고 싶다는 열정이었다.


열정이 이끈 다음 회사에서 나는 그야말로 온몸을 갈아 넣으며 일했다. 무엇이 될지는 고사하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인식하기 어려웠다. 나는 제대로 된 기름칠도 없이 매 시간 돌아가야 하는 기계 같았다. 자주 삐걱댔지만 앓아 누울 시간도 없었다. 나라는 개인으로서는 절대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일로 마주하며 ‘무엇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정말로 무엇이 되긴 했었다. 콘텐츠 기획자라는 있어 보이는 무엇이. 하지만 내 몫은 아닌 것 같았다.

 

회사를 빠져나온 나는 프리랜서가 되었다. 프리랜서라는 말은 언뜻 그럴 듯했지만, 실상은 반백수였다. 하염없이 일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날이 많았고, 일이 없을 땐 먹고 노는 게 일상이었다. 모두에 회사에 가는 평일 오후, 흔들의자에 앉아 고민을 시작했다. “무엇이 되어야 할까?” 고민은 길어질수록 무거워졌다.


사려깊은 친구들은 내가 무엇이 되면 좋을지를 자신의 일처럼 고민해주었다. 친구의 말대로 인스타도 시작했고, 고양이 사진을 찍어 올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을 하려고 해도 맞지 않는 이유만 백만개씩 떠오른다는 내 말에 오랜 선배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말야. 네가 열심히 무언가 되어가고 있는 중인 것 같아.”

“뭐가 되어가고 있는지는 확실히 알겠어요. 저는 바보가 되어가고 있어요, 선배.”

능숙한 농담으로 받아쳤지만, ‘무언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라는 그 말이 뇌리에 박혔다.


나는 무언가가 되고 싶다.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모습의 내가 되고 싶다. 변하고 싶다. 나아지고 싶다. 깊어지고 싶다. 쉰이 넘은 선배는 이제서야 자기 자신이 마음에 좀 든다고 했다. 매일 제자리에 머무는 듯한 하루지만, 조금씩 반복하다 보면 나도 무엇이 되어 있을까. 그때의 나는 내가 퍽 맘에 들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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