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끝에 형이 뒤돌아 물어보았다. 나는 곧장 대답하지 못하고 잠시 고민했다. 진지하고 긴 대답을 하기에는 배식대 앞에서 줄 서 있는 시간은 너무나도 짧았다.
“명예?”
“그건 아니에요.”
고등학생 때부터 8년 넘게 해온 소설 쓰기의 수많은 동기와 이유를 겨우 한마디 말로 간단하게 추측하는 그 말이 조금은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형이 곧 배식 받을 차례가 돼서 다행히 대화는 끊어졌다.
그 뒤로 형이 내게 다시 말을 걸어온 것은 점심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정확히는 내가 오후에 출근한 강사님을 위해 간단한 복사 심부름을 하고 귀가하기 위해 건물 밖으로 나왔을 때였다. 다른 조교들과 함께 앞서 걸어가던 형이 여자 조교와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는 목소리가 들렸다.
“여자는 이십 대에는 남자 외모 보고, 삼십 대가 되면 능력 봐?”
“저는 모르겠는데, 제 언니는 취업하고 나서부터 취향이 바뀌었다고 했어요.”
불과 며칠 전에 형이 공무원 시험에 최종 합격했다고 조교들에게 떠벌리듯 얘기하던 장면과 겹쳐져서일까. 형의 그 말이 왠지 더 비호감으로 느껴졌다. 어떻게 저런 속물적인 얘기를 남들이 다 듣는대서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인문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다른 조교들과 정류장 쪽으로 가고 있던 형이 뒤돌아 내게 말했다.
“성우야, 내일 봐. 소설 열심히 쓰고.”
그 말은 단순히 예의상 건네는 인사말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당시의 나는 식당에서 들었던 함부로 판단하는 말 때문에 억하심정이 남아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형이 내가 명예만을 위해 청춘을 다 받쳤다고 판단하고 연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듣지 못한 것처럼 아무 말 없이 빠르게 걸어갔다.
“뭐? 소설을 왜 쓰냐고? 공무원 돼서 순응만 하면서, 세상 속의 숨은 진실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지 마. 너희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해. 난 너희들과 달라. 난 세상을 바꾸기 위해 더 큰일을 하는 거라고.”
아무도 없는 인문대 자습실에서 그렇게 중얼거린 것은 가방에 넣어 온 태블릿PC를 꺼내 소설을 퇴고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어제 새벽에 잠들기 전부터 내내 생각했던 새로운 발상으로 글을 고치고, 새롭게 읽고,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감정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 순간 주인공의 행동이 이전보다 훨씬 자연스러워진 것을 느꼈다. 오랫동안 막혀 있던 혈이 뚫리기라도 한 것처럼, 잃어버렸던 자신감이 다시 생기는 것을 느꼈다.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조울증에 걸린 것 같은 그런 갑작스러운 감정 변화는 사실 빨리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교수님이나 문우들이 보기에는 대단하지도 않은 발상을 억지로 만들어내서 합리화를 한 결과였지만, 당시에 그런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던 나는 자만하여 다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꿈꿔왔던 소설가가 된다면, 내가 쓴 소설을 사람들이 읽는다면 너무 좋을 거야. 세상의 부조리를 자양분 삼아 쓴 소설이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받아들여진다면 세상과 화해한 것 같은 평화로운 기분이 들지 않을까. 그때는 왠지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은 황홀한 기분을 느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평론가의 인터뷰 질문에 대답하는 모습을 상상하다 보니 급기야 사회 문제에 대해 회의감을 가진 스스로가 멋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당시에는 알지 못했지만,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그런 이상한 상태를 불러일으킨 내 마음의 한구석에는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회의감을 팔아 글을 쓰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글 쓰는 이유에 수없이 많은 복잡한 이유가 있는 척하지만, 사실은 형이 말한 명예라는 속물적인 가치를 누구보다 탐하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세상에 어떤 작은 긍정적인 영향이라도 주고자 했던 소망이 다 무색하게 그때의 내가 가진 소설 쓰기에 대한 열정은 사실 순수하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무더운 여름날 토익사관학교에서 힘들게 공부했던 대학생들보다 진지하지도 절박하지도 못 했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세상의 진실은커녕 내 마음속의 작은 진실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바보였던 것 같다. 뒤늦게 후회해도 바뀌는 건 없겠지만, 그 사실을 좀 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가망 없는 소설 쓰기를 좀 더 일찍 포기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아쉬움이 가장 괴롭게 글을 썼던 그 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지금도 종종 들곤 하는 것 같다. *
(ps. 현재는 절대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직장 생활을 사회복지관에서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