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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오 Jun 23. 2021

오후 두 시의 테라스

잔나비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

“지금 몇 시라고 했지?”

“1시 56분.”

 친구의 말 끝에 약간의 짜증이 묻어 나왔다. 그는 이미 들었던 답을 세 번째 듣고 있었다.

“왜 이렇게 긴장을 했어? 그저 사람을 만나는 일인데.”

“그럴 리가. 난 아무렇지도 않아.”

 그는 친구의 물음에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그들 옆을 지나가던 누구라도 알아차릴 정도의 거짓된 대답이었다. 그는 몇 분 전부터 왼손 검지로 테이블을 누르고 있었다. 나무 문양과 검은 철제 마감의 틈에 그의 손톱이 들어갔다 나오길 반복 중이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단지 4분. 아니 이미 58분을 향해 초침이 흘렀을지도 모른다. 그의 손가락 움직임이 가팔라졌다.


 두어 달 전, 한 사이트에 올렸던 공고가 화근이었다. 제목은 “디자인 전공자를 구합니다.”였다. 그 어떤 기교도 없는 솔직한 제목이었다. 제목과 관련이 없는 이들은 쳐다도 보지 않을, 담백한 다이어트용 닭 가슴살의 맛이 느껴졌다. 실로 글을 읽은 사람 수도 적었고, 그마저도 식감이 뻑뻑했는지 댓글조차 달리지 않았다.


 그와 친구는 그 사실에 안도했다. 그들은 분명 디자이너가 필요했다. 그들이 연초부터 시작한 사업은 그럴듯한 포스터와 감각적인 ppt가 요구되었다. 하지만 둘은 절실하게 누군가를 찾지 않았다. 그들에게 그것은 이유가 되기 때문이었다. 늦은 오후 학교 도서관 앞 벤치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할 이유, 그들이 시작한 일이 아직 결과물을 만들지 못한 이유, 혹여 일이 잘 진행되어 지금의 일상이 깨질지도 모른다는 이유까지. 벤치에 내려앉은 연 노란 꽃가루보다 많은 이유가 그들을 감쌌다.


 알람은 이틀 전, 금요일 오후 1시에 예고 없이 울렸다. 그는 가끔 안부를 전하던 선배의 부탁으로 우체국에 가고 있었다. 연갈색의 종이봉투는 용량을 초과한 서류들에 곧 제 역할을 하지 못할게 분명했다. 그는 그 무게에 함께 짓눌려 왼손과 오른손을 번갈아가며 분담시키고 있었다. 왼손의 네 번째 차례가 오자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아주 짧지만 강단 있는 움직임이었다. 오른손은 교대를 받지 못하고 계속 역할을 이어나가야 했다. 오른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을 가까스로 꺼내어보니 “구하셨나요?”라는 메시지가 와있었다.


 “구하셨나요?”라니 이름 없는 게임의 npc가 용사에게 반복적으로 할법한 식상한 대사였다. 세상에 착한 것만을 보고자란 눈을 머금은 npc는 하루에 몇 명의 용사를 마주할까. 하긴, 이름 없는 게임이니 유저가 많지는 않겠구나. 그렇다면 너무 성의 없는 대사가 아닌가. 어떤 사람을, 보물을 구해야 되는 건지는 좀 알려줄 수도 있는데 말이야. 하며 그는 메시지와 전혀 상관없는 세상에 잠시 들어갔다 나왔다. 하지만 아무리 떠올려 보려 해도 그가 구할 것은 없었다. 결국 그는 가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들고 있던 종이봉투를 가슴에 밀착시킨 채 메시지를 눌렀다.


 ‘디자인 전공자를 구합니다.’ -댓글 1개


 메시지는 올려놓고 기억에서 거의 지웠던 공고에 달린 댓글이었다. 아, 내가 구하던 건 디자인 전공자였지. 그래서 npc가 알려주지 않았구나. 하고 필요 없어진 것들을 잔뜩 쑤셔 넣은 낡은 서랍에서 불현듯 떠오른 물건을 찾은 사람이 된다. 그는 같은 자리에서 자신이 썼던 공고와 댓글을 번갈아 읽다 댓글을 남기기로 한다.


‘010-0000-0000.으로 연락 바랍니다.’


 그는 성의 없어 보일지도 모르는 대답을 남겨놓고 다시 우체국으로 향했다. 종이봉투의 밑 부분이 결국 흠집이 나 우체국 안의 제일 작은 박스를 사서 다시 포장을 해야 했다. 아주 작은 구멍이 촘촘히 나있는 유리막으로 된 창구 안에서 이름 없는 게임의 npc보다 더 식상한 미소를 머금은 직원에게 박스를 전한다. 직원은 기계적으로 박스를 저울에 올려놓고, 보낼 주소를 묻고, 결제 방식을 묻는다. 유리막보다 촘촘한 그 직원의 일처리에 쫓아가기 위해 주머니에서 선배가 준 하얀색 체크카드를 꺼내 그에게 내민다. 종이봉투로 고생한 오른손엔 이제 플라스틱 카드와 영수증이 들려있다.


 전화가 울린다. 아까와는 달리 규칙적이고 가벼운 진동으로 오른 주머니가 흔들린다. 처음 보는 번호가 화면 상단에 띄워져 있다.


“여보세요?”

“아, 네. 댓글 보고 연락드렸어요.” 아주 얕은 톤의 목소리가 그의 귀에 들어간다.

“아, 디자인 전공자이신가요?”

“네. 내년에 졸업 예정이에요.” 그의 당연한 질문에 얕은 목소리는 웃음기를 머금고 대답한다.

“그렇군요. 수요일 오후 두 시에 보시죠. 장소는 문자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는 웃음기에 감염되지 않기 위해 좀 더 사무적인 어투로 전화를 마무리한다. 상대방은 그런 어투 따위 신경 쓰지 않는지 좀 더 웃음기 가득하게 “네 그때 봬요." 하고 전화를 끝냈다.


 그리고 오늘 그 장소에 그와 친구가 있다. 그들이 자주 앉던 벤치가 내려다보이는 도서관 1층 카페테라스.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그가 손가락으로 톡톡 테이블을 두들기는 소리가 커진다. 친구는 더 이상 그것에 대해 묻지 않는다. 톡, 톡, 한 음이 날 때마다 그들의 기대와 걱정이 반복된다. 톡, 한 번에 새로운 디자이너가 가져올 변화에 대한 설렘이. 톡, 한 번에 지금껏 지내온 일상의 변화에 대한 걱정이. 이제 시간은 1분도 남지 않았다.


 “혹시 공고 올리신 분이세요?” 얕은 목소리가 테이블 옆에서 울렸다. 다른 소리는 더 이상 울리지 않았다.


 시간은 오후 두 시. 장소는 도서관 앞 테라스. 구하던 것은 디자인 전공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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