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병, 느리게 오는 봄
다들 저만치 앞서가도 나는 조급해하지 않는다.
내 등 위에는 이제 막 터지려는 가장 화려한 봄이 실려 있으니까.
거친 흙바람맞으며 납작 엎드려 기어가지만
검은 등껍질 위로 모란꽃 흐드러지게 피어났으니
나는 뒤처지는 게 아니라 봄을 배달하는 중이다.
조금 늦더라도 기다려주기를. 내 등이 닿는 곳이 비로소 봄의 절정일 테니.
*분청사기 박지철채 모란문 자라병(국보): 자라가 웅크린 모양을 한 조선 초기의 분청사기 병입니다. 표면에 검은색 안료를 칠한 뒤 모란 무늬 부분만 긁어내어(박지 기법) 흰색을 도드라지게 했습니다. 모란은 ‘꽃 중의 왕’으로 불리며 늦봄인 4~5월에 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