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된 시간, 흐르는 이야기] 02

자라병, 느리게 오는 봄

by 시간수집가art
분청사기 박지·철채 모란무늬 자라병 국보 제260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다들 저만치 앞서가도 나는 조급해하지 않는다.

내 등 위에는 이제 막 터지려는 가장 화려한 봄이 실려 있으니까.

거친 흙바람맞으며 납작 엎드려 기어가지만

검은 등껍질 위로 모란꽃 흐드러지게 피어났으니

나는 뒤처지는 게 아니라 봄을 배달하는 중이다.

조금 늦더라도 기다려주기를. 내 등이 닿는 곳이 비로소 봄의 절정일 테니.


*분청사기 박지철채 모란문 자라병(국보): 자라가 웅크린 모양을 한 조선 초기의 분청사기 병입니다. 표면에 검은색 안료를 칠한 뒤 모란 무늬 부분만 긁어내어(박지 기법) 흰색을 도드라지게 했습니다. 모란은 ‘꽃 중의 왕’으로 불리며 늦봄인 4~5월에 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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