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음 속에는 빈 공간이 있습니다.
그것을 채우기 위해 우리는 별 짓을 다 합니다.
대표적으로 사랑이 있습니다. 사랑으로 우리는 지속적인 충만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함께 저녁을 먹으며 있었던 일을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닌 형식 뿐일지라도, 우리 마음 속 빈 공간은 대충 채워집니다. 왜냐하면 밥이 똑같더라도, 있었던 일이 없었어도, 우리는 함께 먹는 행위를 통해, 뭐라도 이야기하고 듣는 행위를 통해, 상대방이 내 마음에 다시금 들어와 차고, 나도 상대방의 마음에 들어가 채우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제 방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때 느꼈던 충만함의 감각이 기억납니다. 그 감각이 그립습니다. 그것을 채우기 위해 별 짓을 다 합니다. 대표적으로 감각을 증폭시킵니다. 예를 들어 담배를 피면 다리와 어깨가 풀리고 심장은 뛰고 머리는 어질해지는 등 몸이 반응을 합니다. 내 몸이 살아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고, 나는 내 생각으로만 존재했었는데, 내 몸의 감각이 추가로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으로만 존재했던 나에게 몸이 생기는 것입니다. 술도 마찬가지입니다. 머리가 띵하고 몸이 어지럽고 심장이 빨리 뜁니다. 그렇게 충만함이 생기는 것입니다. 사랑의 충만함과는 다르게 짧은 쾌락과 긴 고통의 충만함이지요. 뭐든 좋으니 채우고 싶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비우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죽고 싶다는 뜻일까요? 글을 쓴다는 것은 내 생각을 비우기 위함입니다. 과도한 생각으로 머리가 터질 것 같으니 공책이든 인터넷이든 백지의 매체에 생각을 업로드하고 내 몸의 생각은 삭제해버리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주는 행위도 마찬가지입니다. 줌으로써 남을 채우지만 더 중요한 목적은 나를 비우기 위함입니다. 절망에 빠진 사람은 돈이든 마음이든 잘 줍니다. 나에게 무언가 남아있는 것이 견딜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대가로 마음을 채우고 싶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 마음이 일시적으로 충족될 뿐일지라도.
절망에 빠진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마음을 죽여야할까요. 마음을 죽이면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시간은 흐르는 게 아니라 펼쳤다 닫았다 하는 것이랍니다. 시간을 닫고 아름다운 기억 속을 영원히 반복하며 혼자 방안에서 엉엉 울고 웃기도 하고 그냥 그렇게 죽어가야할까요.
어쩌면 마음을 주는 것이 답일 수 있습니다. 마음은 줄 수록 강해지고 커집니다. 그래서 힘든 사람들이 서로 연대하나봅니다. 고통 받은 사람만이 고통 받은 사람을 알아보고, 그 사람의 고통이 마치 자신의 고통인 것처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연대마저 거북스러우면 어떨까요? 우리는 밤 산책을 나가야합니다. 모든 것이 어둠인 밤, 오로지 가로등만이 거리를 비추고 내 그림자를 내 몸으로부터 땅으로 분리시킵니다. 내 마음을 걷는 것과 똑같은 일입니다. 어둠 속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지만, 이내 걷는 이들을 밝혀주는 가로등이 있음을 깨닫게 되고, 우리는 우리의 그림자를 마주볼 수 있음을, 친구가 될 수 있음을 느껴야합니다.
가로등은 나의 시선입니다. 가로등만은 꺼져서는 안됩니다. 거울을 보지는 못하더라도, 마음은 볼 수 있어야합니다. 그래야 벌거벗고 추위에 벌벌 떠는 마음에게 어떤 말은 건네지는 못할지언정, 가만히 나아갈 길을, 혹은 되돌아 갈길을 비춰줄 수 있습니다. 그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고,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커피는 그 다음의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