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바리스타는 유령입니까
저는 원래 커피를 업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 업계가 어려운지라 겁도 많이 났었고, 제 마음에도 확신은 없었습니다.
카페에서 일을 하다, 직장에 들어가 3년 일하고, 지금은 다시 카페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업이 커피라고 지금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여러분은 커피를 왜 드시나요?
'커피 맛이 좋아서', '카페인을 충전하려고', '여유를 즐기고 싶어서' 같이 다양한 이유들이 예상됩니다.
저는 세 가지 이유 모두 일부분씩 해당합니다. 어떨때는 정말 마시고 싶어서 마시고, 어떨 때는 정신을 깨려고 마시기도 합니다. 책 읽기 전에도 한 잔 내려놓고요. 여러분도 마찬가지겠지요.
커피는 다양한 문화적 욕망을 표상하는 기호이자, 놀잇감입니다.
특히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행위는 음료를 위장으로 밀어넣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카페에 와서 친구와 수다를 떨거나, 혼자 작업을 하거나, 쉬거나, 데이트를 하며 공간을 즐깁니다. 이 향유과정에서 커피는 카페에 향기를 더해주고, 풍미를 더해줘 사람들이 더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좋은 매개체가 됩니다.
여기서 커피가 함께 하는 건강한 가치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정, 이완된 각성, 여유, 환대, 환기, 사색 등 많습니다. 해가 떠 있는 활기찬 시간,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것들입니다. 반대로 술의 경우 도취, 망각, 우울, 에로스, 고통 등 조용하지만 미칠 것 같은 밤의 음료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음료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것이 표상하는 바를 좋아하고, 그것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가령 한때 저는 커피와 술을 좋아했지만, 지금은 차가 좋습니다. 물론 직업상 커피와 술도 마시지만, 마시는 양과 관계없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차입니다. 조용하고 부담이 없어서 좋아하는 것 같아요.
우리는 커피, 차, 술을 좋아해서 마신다고하지만, 어떻게 보면, 필요해서 찾는 것이기도 합니다. 업무에 지쳐서 잠깐 환기가 필요해서 커피 시간을 갖는다거나, 이별을 해서 고통을 잊고 싶어 술을 마시거나, 조용히 혼자자 스스로 회복을 하고 싶어 차를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커피를 정말 많이 마시는 한국사회에서 사람들은 여유가 없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겠지요. 혹은 친구와 만날 공원이 없다거나, 과로로 인해 체력을 회복할 시간이 없어 급하게 카페인 수혈이 필요하다고도 해석할 수 있고요.
저는 카페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조용한 음악이 흐르고 책이 많은 곳입니다.
방문자로는 조용하게 작업하고 싶은 사람들이 1/3, 창백하고 예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1/3, 단골이나 동네 주민이 1/3 정도입니다.
2시에서 5시까지 많이 바쁘고, 자리가 없어서 못 앉으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 외 나머지 시간은 비교적 한산하고, 저는 10시에 퇴근하는데 어떨 때는 7시부터 10시까지 한 명도 안 올 때도 있습니다.
저는 가끔 손님들을 바라봅니다. 저마다 무엇인가에 열중해 있습니다.
저는 애정을 느낄 때도 있지만, 구역질이 날 때도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여기서 뭘하고 있는 걸까요.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걸까요, 좋은 시간을 구매하여 공공적으로, 또는 사적으로 연기하고 있는 걸까요.
바리스타와 손님들 사이에는 바가 있고, 그 바는 거대한 강처럼 양쪽을 구분합니다.
이곳에서 바리스타는, 자신 없이 잘 돌아가는 세계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정확히 말해 커피를 전달한 시점부터 바리스타는 손님들의 세계에서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라짐을 바리스타는 바 뒤에서 정확히 느낄 수 있습니다. 그는 이 공간, 이 사람들을 책임지고 있지만, 이 즐겁고 몰두한 사람들은 그를 전혀 보지 않습니다.
이건 당연한 귀결입니다. 카페라는 공간에서 바리스타는 필요할 때 나타나고 필요없어지면 사라지는 유령같은 존재여야 합니다. 이 경우 훌륭한 바리스타이고 훌륭한 카페입니다. 손님들과 적극적으로 교감하는 곳은 저의 기준에서는 첫째, 바리스타는 거짓말을 하고 있으므로 두배로 피곤하다, 둘째, 손님도 거짓말을 하고 있으므로 두배로 피곤하다, 셋째, 서로 양쪽의 거짓말을 받아줘야 한다, 넷째, 그 거짓말로 인한 고통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유대감의 쾌락으로 종종 오해된다, 다섯째, 만약 진심으로 서로를 대하는 곳이라면 그곳은 카페를 초과했다, 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유령의 감각은 비단 카페의 바리스타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분야의 직업군에 적용됩니다. 대표적으로 버스기사를 들 수 있지요. 제가 좋아하는 소설에서는 손님들을 사랑하던 버스기사가 점점 자기자신을 잃어가고, 손님들을 증오하게 되고, 버스와 섹스를 하고, 버스좌석을 도끼날로 그어버리고 뭐 그렇습니다. 바리스타와 똑같습니다. 뒤에서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이 점점 무거워져 그는 차츰 생명력을 빼앗기게 되는 것입니다. 민원을 상대하는 공무원이나 기업체의 직원들도 다 공감하는 이야기겠지요. 그리고 그 사람들은 주말에 커피를 마시러 가거나 밤에 술을 마시러 가고 돌아가는 길에 버스를 타고 버스 기사는 낮에 민원을 넣고 그렇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흡혈하고 있습니다.
자, 여기서 시작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우리의 악몽은 어떻게 해결해야하는지 고민해보려 합니다.
그 전에 우선 커피 한잔을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