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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서 May 01. 2024

가보지 못했지만 간 것처럼

누구에게나 그런 시절이 있었겠지

규모가 있는 회사에서는 대체적으로 근속 10년 정도 되면 해외연수 겸 특별휴가를 보내는 주는 제도가

있을 것이다. 

소규모회사에서는 쉽지 않은 복지 제도이지만 그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도

나름의 노력 덕분이 아니겠는가. 

이번에 해외연수 대상자를 상대로 하는 설명회에서 자료영상을 만들게 되었다. 

5년 전 사고 이후 영상일에서는 완전히 손을 떼고 관심을 끊어냈다고 생각했는데..

편집을 하다 보니 또 재미가 있어서 밤새 편집을 했다. 

짧은 영상이고 직접 촬영한 것도 아니고 어디 방송으로 송출하는 작품도 아니지만..

즐거웠다. 

가보지도 못한 나라들 이야기와 일반사람들이 CCTV(일반적으로 구도 없이 찍는 것을 난 이렇게 부른다)

처럼 찍은 영상들이지만 그래도 그것들을 재구성하고 새롭게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은

자막, 음악, 장면들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기분이라고 할까?

비록 난 가보지 못했고 그런 혜택을 받을 일이 없는 계약직이지만(내규상 무기계약직은 가능하다고 함)

그런 상황과 상관없이 즐거운 작업이었다는 것은 틀림없다. 

식도를 타고 올라오는 무언가 울컥하지만

나도 모르게 인터넷 쇼핑몰에서 장비들을 검색하고 있다. 

아.. 생활비와 병원비 때문에 너무 값싸게 중고로 판 장비들이 스쳐 지나간다. 

물론 다시 돌이켜 생각해 봐도 그 당시에는 그게 최선이었다는 점은 변함이 없었지만

때론 아쉬움이 한 모금 숨처럼 나온다. 

이미 그런 장비들은 내게는 사치가 되어 있었다. 

현업으로 돌아갈 의지도 남아 있지도 그런 시기도 지나버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직 다 끝내지 못한

나만의 기획안이 잠들어 있다. 

남태평양 수많은 섬에는 아직 문명이 닿지 않은 유인섬이 존재하는 것으로 안다. 

관찰은 되었지만 접근이 어려워서 촬영하지 못한 지역이 아직 존재하는데 그 미지 영역에 모습을 

영상으로 담아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은 대략 10 여전.. 하지만 그 꿈은 이제 깊고 검푸른 바다에

잠들어 있을 뿐이다. 

하루하루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도 남은 여력이 충분하지 않은 나에게는 힘겨운 상상이라는 것을 안다. 

지금의 조건으로 보자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비록 긍정의 에너지를 쏟아붓는다고 해도 현실의 벽은 높고 높다. 

5년간의 공백은 큰 빚을 지기 충분했다. 그리고 꿈보다는 현실의 생존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이상도 꿈도 멈출 수밖에 없다고 자기 위로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테니 말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시절 전성기는 있었잖아

과거일 수도 현재일 수도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인지 모르지만 누구나 전성기를 존재한다.

과거의 전성기에 집착하면 오늘과 내일이 없고

오늘의 전성기에 취하면 내일의 실망에 좌절할 수도 있고

내일의 전성기에 몰두하면 오늘의 소중함을 잊어버릴 수도 있다.

마음가짐을 적절하게 유지한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이 된다. 

오늘도 직장에 나와서 빈 사무실에서 글도 쓰고 일도 미리 하고 하는 것은 그런 불안한 마음을

조금이나 진정시키기 위한 나만의 방식인지 모른다.

이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모르겠다.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면서 다시 돌아가기 위해서 살아가고 있다고 하지만 

그 빚을 다 갚기 전에는 만날 수 없다면 아직도 몇 년의 시간이 더 걸릴지 알 수가 없다. 

사람이 힘들 때 좋은 경우를 상상하며 바라며 희망을 가지는 것보다 자신보다 더 안 좋은 처지를

바라보며 힘을 얻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 저렇게 힘든 경우도 있는데 나는 지금 괜찮다

이런 모순된 의지가 되살아나서 오늘을 또 살아가게 되는 힘이 되는 것이 어른답지 않은 경우라고 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이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오늘의 나를 용납하기가 쉽지 않다. 

이렇게 잃어버린 상황에서 다시 무언가 되찾으려고 발버둥 치는 것이 우습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이미 예전 같은 상황과 능력이 발휘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뉴스에서나 나올법한 반전의 노력과 성실함을 가지고 버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오늘 8,000원짜리 외식을 하기에도 사치가 되어버린 현실을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현자가 되지 못한

욕망스러운 나에겐 쉽지가 않다. 

회사에 출근하면서 지나쳐야 하는 포장마차의 떡볶이 한 접시도 사 먹는 것이 사치인 지금의 상황과 

지난날을 비교하면 안 된다는 생각과 세상이 보내는 수없는 조언과 격언이 마치 날 비웃듯이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고민을 하는 평범한 나에게 드라마 같은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다. 

부정적인 말보다 긍정적인 말을 좋아하지만

생각의 쉼표마다 새어 나오는 부정적인 현실 판단은 '이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라는 함정에 빠져

의지를 꺾어 버리고 변명을 찾기 일쑤이다. 

돈이 분명 필요한데 아직도 고상한 척하는 것인가

돈이 있어야 해결될 일들이 많음에도 여전히 고고한 이상과 희망의 전달을 위해서 날 포장하면서 

오늘을 참아내고 있는 것 같아서 가끔 나 자신이 역겨워진다. 

긍정의 말들과 희망의 세상을 지향하면서도 불신의 마음이 뜨겁게 달구어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즐거운 마음으로 영상작업을 했지만 그 무엇도 내 것이 하나도 없는 현실에 무기력해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설사 영상을 잘 만든다고 해도 기대할 것도 없다. 오히려 흠집이 잡힐까 봐 두렵다. 

전직 영상제작자였다면 고작 이런 실력이었어?라는 조롱이 벌써 귓가를 맴도는 것 같은 기분이다

망상이라는 것도 지나친 억측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두렵다. 

순수한 마음으로 작업을 했는가? 일말의 대가를 원했는가?

확실히 후자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순수한 마음으로 작업을 했던 것인지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 어쩌면 내 실력을 보여 주고 싶다는 욕망이 섞여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어찌 되었던 영상 6분에는 나의 현재 마음을 가늠하는 결과가 녹여져 있다는 것은 틀림없다.

로또가 된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게 빚을 갚는 게 아니라 

카메라 사는 것이 마음이니 말이다

현실에서는 마음을 죽였는데도 여전히 그 불씨가 꺼지지 않은 채 숨죽이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회복할 수 없는 치명상을 입은 채 마지막 결기로 이빨을 드러내는 늑대처럼 말이다. 

글쓰기에 집착하는 것도 어쩌면 영상으로 만들 수 없는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으로 여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내 글은 따뜻하지 못한 것일까?

영상으로 내가 전하고 싶었던 시리즈에는 '미소'가 주제였던 적이 있다. 

오지에 살거나 사회 약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도 희망이 되는 미소가 깃들어 있다는 

주제로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건방진 본인에게 그들에게 닥쳤던 불행도 안 되는 일에도 꺾인 자신을 보니

창피했던 것이다. 

그렘에도 불구하고 난 꿈을 꾼다

변명일지 모르지만 꿈을 포기하면 살아가는 이유가 없을 거라고 생각이 되어서 포기하지 못하고 

기회를 상상하고 있음을 자백한다. 

여전히 영상작업을 하고 싶다. 대단한 작품을 만들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는 단순한 욕심이다. 

그를 위해서 해결해야 하는 일들이 좀처럼 해결하기 어렵지만 계속 생각하고 생각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배달 알바도 글쓰기 공모전도 유튜브 기획도. 되는 일은 없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간다.

어리석은 한낱 바람 같은 것일지라도 존재하는 한, 난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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