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창에 무언가를 입력하면, 화면을 가득 채우는 것은 정보가 아니라 광고다.
글을 클릭하면 전면 광고가 뜨고, 두 줄을 읽으면 중간 광고가 끼어들고, 스크롤을 내리면 하단에 또 광고가 달라붙는다. 본문이라고 쓰인 것은 어디서 긁어왔는지 모를 짜깁기이거나, AI가 찍어낸 영혼 없는 문장의 나열이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특정 블로그 플랫폼이 검색 결과에 뜨면 아예 누르지 않게 되었다. 누를 이유가 없다. 거기엔 내가 원하는 정보 대신, 내 클릭을 0.01달러로 환산하려는 누군가의 욕망만 있으니까.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질문이 생긴다.
그 0.01달러를 위해 영혼을 갈아넣는 사람들에게, 대체 누가 "이렇게 하면 돈이 된다"고 가르쳤을까.
1848년, 캘리포니아에서 금이 발견되자 수십만 명이 서부로 몰려들었다. 역사는 그들 대부분이 빈손으로 돌아갔다고 기록한다. 정작 돈을 번 사람은 금을 캔 사람이 아니라 곡괭이를 판 사람, 청바지를 판 사람, 숙소를 빌려준 사람이었다.
2020년대의 디지털 골드러시에도 같은 구조가 반복된다.
"글 몇 개 써서 월 몇백"이라는 문장은 인터넷 곳곳에 흩뿌려져 있다. 블로그에 광고를 붙여 수익을 내는 방법, 쇼핑몰을 열어 자동 수익을 만드는 방법, AI를 활용해 콘텐츠를 양산하는 방법. 그것을 가르친다는 강의는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을 호가한다. 한국소비자원 자료에 따르면 '고액 온라인 부업 강의' 관련 피해구제 신청은 2023년까지 연간 2~3건에 불과했으나, 2024년 11건, 2025년에는 42건으로 급증했다. 피해 금액은 100만 원에서 400만 원 사이가 전체의 약 90%를 차지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피해 유형이다. 가장 많은 것이 '강의 품질 불만'이고, 그다음이 '약속한 수익이 발생하지 않음'이다. 풀어 말하면 이렇다. 돈을 내고 배웠는데, 배운 대로 했는데, 돈이 안 된다.
당연하다. 강사 본인도 지금은 못 하니까.
어떤 강사는 블로그 광고 수익으로 경제적 자유를 얻었다고 말한다. 그의 인증 화면에는 월 수백만 원의 수익이 찍혀 있다. 하지만 그 스크린샷이 2021년의 것인지, 2026년의 것인지, 블로그로 번 것인지, 강의로 번 것인지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검색 생태계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바뀌었다. AI가 검색 결과 상단에서 답을 직접 요약해주는 시대에, 사람들은 더 이상 블로그를 클릭하지 않는다. 광고 단가는 하락하고, 플랫폼은 자체 광고를 강제로 끼워 넣어 블로거의 몫을 깎아간다. 7년간 블로그를 운영했다는 어떤 사람의 고백이 이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때 월 270달러를 넘기던 수익이 하루 0.01달러까지 떨어졌다고. 원인은 명확하다. 사람들이 이제 검색 대신 AI에게 직접 물어보기 때문이다.
강사들은 이 변화를 알고 있다. 아니, 누구보다 먼저 체감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진작에 사업 모델을 바꿨다. 블로그를 운영하는 일에서, 블로그 운영법을 가르치는 일로. 광고 수익을 올리는 일에서, 광고 수익을 올리는 법을 파는 일로. 노동에서 자본으로, 리스크에서 안전지대로 이동한 것이다. 남아서 글을 쓰는 건 수강생의 몫이다.
진짜 노하우가 있다면 왜 팔까, 라는 오래된 질문은 이제 수정되어야 한다. 더 정확한 질문은 이것이다. 팔 수 있는 노하우 자체가 남아 있기는 한 걸까.
블로그 수익 강의 정도는 아직 귀여운 편이다. 이 생태계의 상위 포식자는 다른 차원에서 놀고 있다.
어떤 인물은 "찌질했던 내가 인생을 역전했다"는 서사를 무기로 수십만 부의 책을 팔고, 한 번의 온라인 강의 런칭으로 수억 원의 매출을 올린다. 그가 파는 것은 구체적인 기술이 아니다. 뇌 최적화, 유전자 오작동, 자의식 해체 같은 자극적인 용어로 포장된 자기계발 담론이다. 뜯어보면 기존 자기계발서에서 가져온 개념에 새 이름을 붙인 것에 가깝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일반인의 95%를 "언제 치킨이 될지 모르는 암탉"에 비유하는 서술이 버젓이 실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나라에서, 나는 콘텐츠의 질이 아니라 포장의 질이 매출을 결정하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실감한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의 사업 구조다. 그가 운영한다는 사업체들의 실체를 추적해보면 이상한 지점이 나타난다. 재회 상담을 한다던 업체가 알고 보니 반려동물 장례 서비스였다든가, 마케팅 대행업체의 주된 업무가 외부 클라이언트 관리가 아니라 대표 자신의 브랜드 이미지 관리와 강의 후기 생산에 집중되어 있다는 정황이 나온다. 수강생들이 환불을 요구하며 피해자 모임을 결성하고 집단소송을 준비했다는 사실은, 이 비즈니스 모델의 귀결점을 말해준다.
순환 구조를 그려보면 이렇다. 사업체를 운영한다 → 그 경험을 부풀려 강의로 판다 → 강의 수익으로 사업체를 키운다 → 더 큰 사업가처럼 보이며 더 비싼 강의를 판다. 막대한 수익의 실제 원천은 사업이 아니라 강의다. 강의를 팔기 위해 사업체가 존재하는 것이지, 사업을 잘해서 강의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냉정하게 인정해야 할 것이 있다. 그의 책이나 강의 내용이 쓰레기라는 데는 동의한다 하더라도 그 쓰레기를 황금 상자에 담아 수만 명에게 줄을 서게 만든 포장술만큼은, 이 시대 가장 잔인하면서도 영리한 비즈니스 알고리즘이다. 배울 것이 있다면 그가 말한 내용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자기 자신을 어떻게 훌륭한 상품으로 둔갑시켰는가 하는 그 기술 자체뿐이다.
그들의 서사에는 공식이 있다. "나는 원래 아무것도 아니었다 → 어떤 비법을 발견했다 → 인생이 180도 바뀌었다." 이 3단 구조는 듣는 이의 열등감을 정확히 건드린다. "저런 사람도 됐는데 나라고 못 하겠어?"라는 착각을 심는 데 이보다 효과적인 장치는 없다.
하지만 여기에는 치명적인 생존자 편향이 숨어 있다. 강의를 듣고 낙오한 수만 명의 목소리는 커뮤니티에서 삭제되고, 우연히 혹은 원래 자질이 있어서 성과를 낸 극소수의 사례만 전면에 내세워진다. 1타 수학 강사의 강의를 들어도 수강생 대부분은 수학 1등급을 받지 못한다. 다만 수학 강사는 자기 수강생이 누구나 1등급을 받을수 있다고 광고하지 않는다. 그것이 이 바닥과의 차이다.
이 시스템의 가장 잔인한 장치는, '실행력'이라는 단어를 방패로 쓰는 것이다.
강의를 듣고 수익을 내지 못하면, 화살은 수강생의 '부족한 실행력'으로 돌아간다. "내가 알려준 대로 안 해서 그래." "네가 아직 덜 간절해서 그래." 이것은 심리적 가스라이팅이다. 이미 레드오션이 된 시장, 알고리즘이 바뀌어버린 플랫폼, AI가 검색을 대체하는 환경 변화. 이런 것들은 개인의 의지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강사는 '완벽한 공략집'을 팔았으므로 자기 책임은 없다. 모든 패배의 무게는 수강생이 짊어진다. 돈을 잃고도 강사를 원망하기보다 자신의 무능을 탓하게 만드는 구조. 성공하면 강사의 공, 실패하면 수강생의 탓. 어느 쪽이든 강사는 손해 볼 일이 없다.
이쯤 되면 이것은 사기가 아닌가, 하는 질문이 나올 법하다. 하지만 법적으로는 사기가 아니다. 강의를 결제했고, 강의는 제공되었다. 계약은 이행되었다. 그 강의 내용이 유통기한이 지난 쓸모없는 정보였다는 것, 약속한 수익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가 된다. "강의는 제공했으니 계약은 이행했다"는 논리 앞에서, 환불을 요구하는 수강생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집단소송을 준비해도 입증 책임은 피해자 쪽에 있다.
이 사각지대를 가장 교묘하게 이용하는 것이 강의팔이 산업이다. 전통적 사기는 "돈을 주면 이익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하고 안 돌려주는 구조다. 이쪽은 "돈을 주면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하고, 실제로 뭔가를 알려주긴 한다. 다만 그 방법이 이미 작동하지 않을 뿐이다. 게다가 이들은 "수익을 보장한다"고 직접 말하지 않는다. "수익을 낸 사람이 많다"고 돌려 말한다. 이 한 끗의 차이가 법적 책임을 회피하는 방패가 된다.
그리고 이것이 일반적인 사기보다 더 악질인 이유가 있다. 돈을 떼먹고 도망가면 사기꾼이라고 욕이라도 시원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쪽은 강의라는 상품을 주긴 줬다. 결과가 안 나오면 "네 노력이 부족했다"며 화살을 돌린다. 피해자는 돈을 잃고도 강사를 원망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을 탓한다. "나는 역시 안 되는 사람인가 봐." 돈보다 더 무서운 것이 빠져나간다. 자존감이다.
이 구조가 가장 잔인한 지점은, 타겟이 누구냐는 것이다. "부업으로 월 몇백"이라는 말에 가장 절실하게 반응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월급이 빠듯한 사회초년생, 취업이 안 되는 청년,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 은퇴 후 막막한 가장. 수백만 원이 없어도 되는 사람이 아니라, 수백만 원이 전 재산의 상당 부분인 사람들이 결제 버튼을 누른다. "누구나 할 수 있다", "하루 1시간이면 된다"는 말은 이 사람들의 조급함을 정확히 겨냥한다. 그리고 수백만 원짜리 강의료를 결제하고 나면, 정작 실전에 투자하거나 버텨낼 자본이 바닥난다. 시작도 하기 전에 고사하는 것이다.
소비자원 통계에서 피해가 전 연령대에 걸쳐 발생한다는 것은, 간절함에는 나이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심각한 범죄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회가 이 문제를 방치하는 동안, 누군가의 소중한 종잣돈은 오늘도 곡괭이 장수의 계좌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이런 수법이 무지한 사람만 노린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히려 전문직에 종사하며 새로운 자극을 갈구하는 사람, 논리적 체계에 익숙해서 '그럴듯한 프레임워크'에 끌리는 사람이 더 쉽게 빠진다.
뇌 과학, 진화 심리학, 유전자 같은 학문의 용어를 가져다 붙이면, 내용이 허술해도 형식이 학술적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진실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믿고 싶은 환상을 논리적으로 설명해줄 권위자를 원한다. 그래서 이들은 실제 사업 실적보다 '실적이 좋아 보이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전력을 다한다. 댓글 작업, 조작된 후기, 직원들이 생산하는 간증글. 이 모든 것이 허상을 유지하는 공장의 부품이다.
경제적 자유를 가르친다는 사람의 주수입원이 경제적 자유를 가르치는 강의라면, 그 강의는 대체 무엇을 증명하는 걸까.
진짜 광산을 발견한 사람은 곡괭이를 팔지 않는다. 곡괭이를 파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광산이 이미 고갈되었다는 증거다. 아니, 어쩌면 애초에 광산 따위는 없었는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이 대단한 수익을 올렸다고 주장하면서, 그 수익의 유일한 증거가 "나는 대단한 수익을 올렸다"는 본인의 말뿐이라면, 그것은 증거가 아니라 마케팅이다. 검증되지 않은 성공담에 수백만 원을 거는 행위는 투자가 아니라 도박이다. 그것도 하우스가 절대 지지 않는 도박.
속지 않는 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대단해 보이는 서사 앞에서 한 번만 물어보면 된다.
"그래서, 그거 검증된 숫자입니까?"
답이 없으면 덮으면 된다.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례는 특정 개인을 지칭하지 않으며, 온라인 강의팔이 산업의 구조적 문제를 논하기 위한 것이다. 누군가 떠오른다면 그건 당신의 기분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