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침대 위의 환자가 아니라, 세상 속의 한 사람

환자이기 전에 한 사람, 병실 안에서도 삶은 계속된다

by Time Right

업무 중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는 ♥엄마♥.

반사적으로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전화를 받기도 전에, 머릿속이 잔뜩 조여왔다.


엄마의 첫마디는 대개 이랬다.

“과자 좀 사다 줄래? 음료수도.”

그 순간엔, 정말 그게 전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 나면 묘한 죄책감이 따라왔다. 과자나 음료 때문이 아니라, 엄마가 나와 대화를 나누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뒤늦게 밀려왔기 때문이다.


엄마는 원래 하루 종일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던 사람이었다.

주중에는 평생 일을 하셨고, 주말에는 교회 활동으로 바빴다. 일과 사람, 사람과 웃음으로 하루를 채우던 사람이었다.


6년 전, 병실은 엄마의 새로운 사회가 됐다. 그나마 친구들이 찾아왔고, 나도 주말마다 들렀다. 근처를 산책하고 바람을 쐬었고, 외식을 하면 안 되지만 몰래 맛있는 걸 먹으며 깔깔 웃었다. 병실 안에서도 세상은 여전히 이어져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가 찾아오자, 그 사회가 통째로 봉쇄됐다.

병실은 세상의 끝이 되었고, 엄마는 나를 통해서라도 세상과 연결되고 싶어 했다. 장난을 주고받고 싶었을 테지만, 나는 내 하루를 버티는 데 급급했다. 여유 없는 대답, 무심한 목소리. 나 스스로도 알았다. 엄마를 ‘환자’로만 보고 있다는 걸.


어느 날, 수간호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보호자님, 오늘 간병인과 어머니 사이에 말다툼이 있었어요.”

간병인이 엄마를 함부로 대했고, 엄마는 결국 밥상을 엎어버렸다는 얘기였다.

나는 엄마 편을 들고 싶었다. 그러나 병원에 엄마를 온전히 맡기고 그곳에서 생활을 이어가려면, 할 수 없이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현실적으로 병원을 옮기는 건 어렵고, 병실에서 만들어진 엄마의 관계망을 깨트리는 건 더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조심스럽게 상황을 중재하며, 속으로만 울분을 삼켰다.


환자도 여전히 사람이다.

아무리 병실이라고 해도 함부로 옷을 벗기면 수치심을 느끼고, 아무리 눈이 안 보이고 몸이 불편해도, 기운으로 자신이 무시당하는 걸 느낀다. 엄마는 나보다 훨씬 긴 삶을 살았다. 누군가의 아내였고, 친구였고, 이웃이었으며, 사회 속에서 자기 역할을 해왔던 사람이다.


그러나 병실 안에서는 ‘환자’라는 이름 안에 ‘인격’이라는 뜻이 지워졌다. 사회는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고, 나마저도 그 경계에서 자주 무너졌다.


그래서 씁쓸했다. 죄책감이 남았다.

그럼에도 나는 잊지 않으려 한다.

환자라는 단어 뒤에도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그걸 잊는 순간, 우리는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할 기회를 영영 놓치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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