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듯 올라간 길, 마지막 인사가 되다
부산 발령을 받아 내려가기로 마음먹었다.
엄마를 모시고 함께 갈 생각이었다.
한동안 내 건강을 챙기느라 엄마를 보지 못했지만, 멀리 떨어지면 다시는 못 볼 것 같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하지만 막상 부산에 도착하니, 적응이 쉽지 않았다.
연고 하나 없는 도시에서 병원을 찾는 일조차 버거웠다.
혼자 생활하는 외로움에 눈물이 터지기도 했다.
‘이러다 엄마를 모시고 오는 게 늦어지는 건 아닐까.’
걱정이 점점 커져갔다.
그러던 중 동생이 엄마의 상태를 알려주었다.
엄마는 욕창이 생기고, 콧줄로 영양분을 공급받으며, 숨조차 편히 쉴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이제는 장거리 운송 자체가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엄마 생일을 앞두고, 나는 결국 휴가를 내고 서울에 당일치기로 올라갔다.
엄마는 시야가 흐릿해지고, 말도 어눌해져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한다 했지만, 그날은 나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힘겹게 말했다.
“어떻게 왔어? 부산에 갔다며? 거기서 잘 지내고 있니?”
“엄마 생일이니까 왔지.”
나는 그렇게 대답했지만, 내 눈에서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엄마가 눈이 잘 안 보여서 다행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약속했다.
“매주는 힘들어도, 2주에 한 번은 꼭 올라올게.”
그리고 예전부터 다니던 정신과에 들렀다.
“부산이 너무 힘들어서 도망왔어요.”
의사는 웃으며 말했다.
“다음에도 힘들면 또 도망와요.”
그 말에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돌아가는 길에 다시 서울에 올 날짜를 정하고, 차편을 예매했다.
그러나 일주일 후, 엄마는 세상을 떠났다.
나는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어졌다.
엄마는 내가 밥은 잘 챙겨 먹는지, 집은 깨끗하게 해놓고 사는지, 어떻게 지내는지를 늘 걱정하셨다.
예전에 엄마를 우리 집에 모셨을 때, 2주간 함께 생활하며
“걱정 안 해도 돼요. 이렇게 잘 살고 있어요.”
하고 안심시켜드린 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내가 부산에서 건강하게 잘 지내는지 궁금해하셨다.
나는 마지막으로 엄마 앞에 서서, 괜찮다고, 잘 살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었다.
몇 년간은 내가 엄마의 보호자로 살아왔다.
하지만 엄마는 끝까지 내 보호자이고 싶어 했다.
마지막 순간, 나는 다시 딸로 돌아갔고, 엄마는 끝내 나의 보호자로 남아 나를 안심시킨 채 세상을 떠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