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보내는 신호를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었다
코로나 덕분에 나는 내 몸의 상태를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백신을 맞으러 갔는데, 혈압이 너무 높다고 접종을 거부당했다.
피를 뽑고 다음 주에 다시 오라는 말을 들었다.
일주일 뒤, 의사는 이번에는 갑상선 기능 저하라며 처방전을 내밀었고, 접종은 또 미뤄졌다.
이석증, 위궤양, 편두통... 내 몸은 살려달라는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도 더 견디기 어려운 건 엄마에 대한 마음이었다.
풀리지 않는 미움과 벗어날 수 없는 죄책감이 내 안에서 뒤엉켰다.
엄마는 결국 병원에서 쫓겨나듯 퇴원했다.
그리고 1년 만에 내가 직접 마주한 엄마는, 입원할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코로나와 폐렴을 앓고 난 뒤, 엄마의 몸은 눈에 띄게 쇠약해져 있었다.
“이제 거의 안 보여.”
엄마는 담담히 말했지만, 짧게 민 머리와 흐릿해진 시야, 기운 없는 표정은 내 눈에 20년은 늙어버린 듯한 모습으로 비쳤다.
무너질 수 없었다.
휠체어를 밀고, 짐을 챙기고, 운전을 하고, 입원 수속을 밟으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그날만큼은 엄마의 보호자로서 정신력으로라도 버텼다.
하지만 일상에서는 감정을 끝내 통제하지 못했다.
회사에서 일이 잘 풀리다가도 엄마 생각이 스치면 눈물이 터졌다.
내 미래를 떠올리면 불안이 몰려와 밤잠을 설칠 때가 많았다.
결국 내 생활에도 균열이 생겼고, 일에도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결국 정신과 상담을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약의 힘을 빌려 잠시나마 마음을 붙들 수 있었다.
그러나 엄마의 현실은 내가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또 무너졌다.
다행히 가족들이 엄마를 함께 돌보겠다고 나서주었다.
잠시 안정을 찾는 듯했지만, 그즈음 나에게는 또 다른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부산 발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