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데 방해되는 것은?

by 밤하늘 읽는 시간

'있는 그대로의 나'라는 말은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부드럽게 스며들며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그것은 꾸미지 않고, 숨기지 않으며, 억지로 덧칠하지 않은 본래의 모습을 의미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종종 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찾으려 애쓰면서도 그것을 드러내는 데 주저한다. 무엇이 우리를 머뭇거리게 하는 걸까? 사회나 집단이 기대하는 모습과 본래의 나 사이의 간극 때문일까? 아니면 나 자신조차 있는 그대로의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어렵기 때문일까?


사회는 끊임없이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태도를 요구한다. 우리의 말투, 행동, 사고방식까지 특정 기준에 부합하길 바란다. 그러한 기대는 때로 우리를 성장하게 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본래의 나를 억누르고 숨기게 만들기도 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모습과 있는 그대로의 나 사이에서 발생하는 간극은 혼란과 고통을 불러일으키며, 때로는 우리를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한다. 이 간극은 단순히 외부와 나 사이의 문제를 넘어 내면의 싸움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이 간극 속에서 끊임없이 갈등한다. 사회가 기대하는 모습과 본래의 나 사이에서 흔들리며, 무엇이 진정한 나인지 고민한다. 사회적 기대는 과연 나를 위한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외부의 요구에 불과한 것일까?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종종 혼란스럽고, 때로는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있다. 이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모습도, 본래의 나도 모두 내 안에 자리한 소중한 일부다. 각각은 나를 구성하는 중요한 조각이며, 둘 다 존중받아야 할 가치가 있다.


하지만 본래의 나와 사회적 역할로서의 나, 이 두 모습을 동시에 받아들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우리는 흔히 한쪽을 부정하거나 밀어내려고 한다. 본래의 나를 부정하면서 사회가 요구하는 모습에 자신을 맞추려고 애쓰거나, 혹은 사회적 기대를 거부하며 본연의 나만을 고집하려 한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내면의 갈등을 더욱 심화시킬 뿐이다. 갈등은 억누를수록 더 깊어지고, 우리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결국, 두 모습을 모두 인정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마음속에서 평화를 경험할 수 있다. 그것은 마치 나 자신을 제3자의 시선으로 관찰하는 것과 같다. 멀리서 나를 내려다보듯 관조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첫걸음을 내딛게 된다.


그렇다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내가 인정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를 가로막는 것은 외부의 시선이나 사회적 기준이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내 안에 깊이 자리 잡은 두려움, 자존심, 그리고 고정관념이다. 우리는 종종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믿으면서도, 특정 모습만을 움켜쥐고 방어하려는 마음에 사로잡힌다. '이게 내 진짜 모습이야. 이것만이 소중하고 중요한 거야.' 이렇게 스스로를 정의하려 들면서, 우리는 오히려 자신을 왜곡하고 제한하게 된다. 자존심은 나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나를 틀 속에 가둔다. 고정관념은 안정감을 주지만, 다양한 가능성을 닫아버린다. 두려움은 나를 안전한 곳에 머물게 하지만, 내가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가로막는다.


내가 나를 진정으로 인정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움켜쥐려는 집착과 두려움을 내려놓는 일이다. 손을 놓고, 나의 모든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것은 나를 관조하듯 바라보며, 편견 없이 수용하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높은 곳에서 풍경을 내려다보듯, 한 걸음 물러나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 내가 가진 모든 모습—사회적 역할, 본래의 모습, 때로는 내가 싫어했던 모습까지도—모두가 나를 이루는 중요한 조각임을 이해하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길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나 자신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는 필연적인 길이다. 내 안의 모든 모습을 받아들일 때, 나는 비로소 온전하고 자유로운 존재로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그 자유 속에서 나의 모습은 훨씬 자연스럽고 평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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