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대화는 독백에 지나지 않는가?

by 밤하늘 읽는 시간

우리가 하는 모든 생각과 판단은 뇌에서 일어난다. 하지만 우리의 뇌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기존의 경험과 기억을 토대로 세상을 해석하고 판단한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방식은 결국, 우리의 과거 경험이 만든 틀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대화라는 행위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가 흔히 대화를 통해 소통한다고 믿지만,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일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예를 들어 친구의 고민 상담을 떠올려 보자. 우리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의 상황에 공감하려고 노력한다. 주의 깊게 친구의 말을 듣고, 그들이 처한 상황을 상상하며, 내가 그 입장이라면 어떤 감정을 느낄지 생각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진심으로 친구를 이해하려 애쓴다. 그러나 이 모든 생각은 어디에서 일어나는가? 바로 내 머릿속에서다. 친구의 말과 고민은 그들의 입을 통해 내 귀로 들어오지만, 그것이 내 안에서 재구성되는 방식은 철저히 나의 경험과 기억에 의존한다. 결국 나는 친구가 아닌, 나 자신이 만들어낸 '친구의 모습'과 대화하는 셈이다.


우리는 내가 경험하지 않은 것을 그대로 복사해서 붙여 넣을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친구의 이야기를 최대한 섬세하게 이해하고, 내 경험에 비추어 공감하려 애쓰는 일이다. 이렇듯 대화는 두 사람이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상대방과 이해의 수준을 맞추려 노력하는 행위로 보인다. 공감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한 결과다. 이는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소통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몸짓이며, 이러한 노력 속에서 우리는 사회를 이루고, 하나가 되려 한다.


그렇다면, 사람의 대화는 독백에 지나지 않는가?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보인다. 우리는 상대와 대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재구성된 상대의 모습과 대화한다. 그러나 동시에, 대화는 단순한 독백에서 그치지 않는다. 대화는 독백을 넘어서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데 있다. 우리는 내가 하는 말이 온전히 상대방에게 있는 그대로 전달된다고 믿으며, 상대방의 말 역시 내가 완벽히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믿음 속에서 우리는 종종 오해를 하고, 그 책임을 상대에게 돌리곤 한다. "왜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할까?" 혹은 "왜 저렇게 말하지?"라는 불만은 결국, 대화가 독백임을 깨닫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그러나 대화가 독백이라는 점을 인정하면,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우리는 독백의 한계를 받아들이면서도,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다. 내가 하는 말이 독백이라면, 그 독백이 상대방을 섬세하게 배려한 독백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들의 말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최대한 그들의 입장이 되어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 있다.


사람의 대화는 결국 독백의 연속이지만, 그 독백이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공간 속에서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진다. 대화는 완벽한 이해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대화를 통해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고, 다가가며, 차이를 인정한다. 대화는 독백에서 시작되지만, 인간은 그 독백을 넘어서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이러한 노력 속에서 대화는 비로소 인간다워지고, 우리는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게 된다.


사람의 대화는 독백이지만, 그 독백을 넘어서는 가능성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대화를 통해 진정으로 소통할 수 있는 이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