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감정을 ‘나 자신’이라고 착각하곤 한다. 기분이 가라앉은 날에는 "나는 우울한 사람이야"라고 여기고, 화가 나는 순간에는 "나는 화가 많은 사람이야"라고 단정 짓기도 한다. 마치 감정이 내 성격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많다. 하지만 조금만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감정은 단지 ‘지금 이 순간’ 나를 찾아온 손님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꽃이 시드는 모습을 보면, 괜스레 마음이 아려온다. 하지만 그 아픔은 정말로 꽃이 시들어서일까? 어쩌면 더 깊은 곳에는 ‘꽃이 계속 피어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변화를 받아들이기보다, 그 아름다움을 붙잡고 싶어 하는 집착이 오히려 고통을 만든다. 감정이 우리를 괴롭게 하는 이유는, 경험 그 자체보다는 그 경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할 때’ 생겨난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좀 더 떨어져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나는 화가 났어"라고 말하는 대신 "나는 지금 분노라는 감정을 경험 중이야"라고 표현해 보면 어떨까. 이 짧은 문장 하나가 감정을 나와 조금 분리시키고, 휘둘리는 대신 바라볼 수 있는 힘을 만들어준다. 마치 강한 물살에 빠져 있을 때보다, 둑 위에 올라서서 그 강물을 내려다보는 느낌처럼 말이다.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기쁘고, 슬프고, 두렵고, 화가 나는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그 감정이 나를 지배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지나가는 것’ 임을 아는 게 중요하다. 감정은 구름처럼 흘러가고, 바람처럼 스친다. 지금은 강하게 몰아치는 바람 같지만, 잠시 후엔 다시 고요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많은 고통은 사실 ‘지금의 현실’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이래야만 한다'는 내 마음속 기대, 그리고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을 때의 실망이 고통을 만든다. 내가 갖고 싶은 것을 꼭 가져야 한다는 집착, 보고 싶지 않은 것은 절대 보고 싶지 않다는 거부감. 이런 ‘탐욕’과 ‘혐오’가 우리를 더 힘들게 만든다. 하지만 어쩌면 삶은 움켜쥐려 할수록 더 멀어지고, 놓아줄 때 비로소 편안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바람 부는 날엔 바람을 맞고, 비 오는 날엔 비를 피하지 않고 걷는 것처럼, 감정도 있는 그대로 느끼고 흘려보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괴로움을 억누르거나 밀어내는 것보다, 그 감정이 왜 왔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진짜 위로가 된다.
남을 돕고 싶어지는 마음, 눈물이 나는 순간, 또는 화가 치밀어 오를 때. 우리는 모두 그 감정과 함께 살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감정이 우리 삶을 전부 덮지 않게 하는 일이다. 감정은 나의 일부일 뿐, 나의 전부가 아니다. 내가 화를 낸다고 해서, 나란 사람이 화로만 이뤄진 건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오늘 한 번쯤 이렇게 자문해 보는 것도 좋겠다.
지금 내 마음엔 어떤 감정이 머물고 있을까?
그리고 그 감정은 나에게 어떤 말을 걸고 있을까?
감정을 억지로 바꾸려고 하기보다, 그것을 알아차리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 그 과정이 바로,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감정과 함께 살아가는 길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