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둘로 나누어 세상을 보고 있지는 않은가?

by 밤하늘 읽는 시간

우리는 늘 무언가를 나누며 살아간다. 나와 남, 옳음과 그름, 좋음과 싫음, 얻음과 잃음. 생각할 때마다 무의식처럼 이원대립의 틀을 꺼내 들고, 세상을 둘로 갈라놓는다. 나를 지키기 위해, 나의 생각을 분명히 하기 위해, 우리는 자연스럽게 선을 긋는다. 하지만 선명하게 가른다고 해서, 세상이 정말 그렇게 분리되는 걸까. 나와 남은 분명 다르다. 그러나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둘은 독립된 섬이 아니라 미묘한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때로 나는 남의 거울이 되고, 남은 나의 거울이 된다. 서로가 완전히 다른 존재인 듯하지만, 삶의 어느 지점에서는 어쩔 수 없이 엇갈리고 겹치고 스며든다.


분필을 예로 들어 생각해 보자. 책상 위에 놓인 분필 하나는 그 자체로는 길지도, 짧지도 않다. 하지만 동전 옆에 두면 길게 느껴지고, 젓가락 옆에 두면 짧게 보인다. 분필이 변한 것인가? 아니다. 우리가 비교하는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다. 길다거나 짧다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사물을 고정시키고 만다. 그리고 짧은 것으로만, 긴 것으로만 기억한다. 하지만 진실은 그 어디에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 모든 것은 흐름과 상황에 따라 그렇게 드러났을 뿐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어떤 일은 옳고, 어떤 일은 그르다고 단정 짓는 것은 쉽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상황이 바뀌고 나서 그 판단은 얼마나 자주 달라지는가. 친구와의 갈등, 일터에서의 오해, 스스로를 탓하는 순간들. 그 모든 것도 길고 짧음처럼, 조건과 시선에 따라 색이 달라진다. 만약 나와 남을 뚜렷하게 갈라놓은 채 살아간다면, 우리는 결국 스스로를 고립시키게 된다. 내가 옳고 네가 틀리다는 마음, 내가 얻고 너는 잃어야 한다는 생각. 이런 경계 위에 서는 순간, 세상은 점점 더 날카롭게 갈라진다. 그러나 세상은 본래부터 나누어져 있지 않다.


연못 위에 막대기를 그어도 물은 여전히 이어지고, 하늘을 가르는 구름 사이에도 경계란 없다. 나와 남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흐름이 있다. 갈라진 것 같지만, 본질은 여전히 이어져 있다. 중요한 건 어느 편에 서느냐가 아니다. 지금 내 마음이 얼마나 집착 없이, 열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길다고 말할 수 있지만, 길다는 생각에 머물지 않고. 짧다고 판단할 수 있지만, 짧다는 판단에 묶이지 않고. 이쪽도 저쪽도 아닌, 흐름 속에 함께 서 있을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다. 나는 아직 둘로 나누어 세상을 보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조심스럽게 갈라진 선들을 지워보려고 한다. 물처럼, 바람처럼, 흐름처럼. 세상을 조금 더 너그러이 받아들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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