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육볶음은 유난히도 익는 소리가 선명한 음식이다. 팬 위에 고기가 닿는 순간 퍼지는 지글거림은 귀를 먼저 깨우고, 이내 매콤한 향이 코끝을 찌르며 마음을 조금씩 움직인다. 불 앞에 선 몸은 조금 바쁘고 분주하지만, 그 바쁨 안에는 어쩐지 평온함이 있다. 그 순간 나는 지금 이 요리 안에 온전히 머무르고 있다는 감각을 느낀다. 그리고 그런 감각은 문득, 삶의 더 깊은 자리로 나를 데려간다.
뜨거울 때는 누구나 제육볶음을 좋아한다. 방금 불을 벗어난 고기는 촉촉하고 윤기 나며, 그 위를 감싸는 양념은 마치 ‘지금’이라는 시간 자체를 먹는 것만 같다. 하지만 놀라운 건 그것이 식은 후에도 여전히 맛이 있다는 사실이다. 따뜻함이 사라진 뒤에도 고유의 풍미가 흔들리지 않는 이유는, 바로 양념이 깊숙이 스며 있기 때문이다. 겉의 온기가 아니라 속의 진심이 맛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삶에서도 그런 순간을 자주 마주한다. 관계든 일상이든, 처음의 열정은 시간이 지나며 식어가기 마련이다. 우리는 때로 그 식어가는 과정을 실패나 무기력으로 받아들이곤 한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 열기가 사라진 이후에도 내가 어떤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가이다. 변하지 않는 온도는 겉이 아니라 중심에서 나온다.
나는 뜨겁지 않아도 여전히 다정할 수 있을까. 말이 줄어들어도 마음은 여전히 머물고 있을까. 그런 물음 앞에서, 식은 제육볶음은 하나의 답이 된다. 겉의 열기는 사라졌지만 본질은 오히려 더 또렷해지는 음식. 그 안에 담긴 정성과 시간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냉장고 속 남은 제육볶음은 도시락 반찬이 되고, 주먹밥 속에 들어가 또 다른 모습을 한다. 형태는 달라져도 맛은 여전하고, 오히려 하루를 건너 더 깊어지는 순간도 있다. 관계도, 마음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건 겉의 열정이 아니라, 그 사람 안에 오래도록 우려진 진심일 것이다.
나는 지금 어떤 온도로 살아가고 있을까?
겉은 웃고 있지만, 속은 식어 있지는 않은가. 혹은 겉은 조용해도 중심의 불은 아직 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게 된다. 삶을 조리하듯 천천히 들여다볼 수 있을 때, 우리는 편견을 걷어내고 더 너그러운 시선으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시간이 흘러도 여전한 무언가가 내 안에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온기라면, 더할 나위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