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친구에게 문득 서운한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이 쉽게 풀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상황은 이미 지나갔고, 친구는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지만, 정작 나는 계속 그 말을 곱씹는다. 머리는 ‘그럴 수도 있지’라고 이해하려고 하지만, 마음은 ‘그런 말을 듣는 내가 되어버렸구나’ 하는 씁쓸함에 오래 머문다.
돌이켜보면, 그 순간이 정말 아팠던 건 단순히 말 한마디 때문이 아니었다. 나 자신에 대해 가지고 있던 어떤 이미지 — ‘나는 친구들에게 존중받는 사람이다’, ‘나는 늘 따뜻한 존재로 여겨져야 한다’는 그 무언의 자화상 하나가 금이 가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나 마음속에 ‘나’라는 사람에 대한 그림을 그리고 살아간다. 그 그림은 우리가 해온 행동, 들어온 말, 스스로 다짐했던 기대들로 채워진다. ‘나는 믿음직한 사람이다’, ‘나는 실수를 잘하지 않는다’, ‘나는 사랑받는 사람이다’. 그런데 삶은 늘 그 기대를 따라주지 않는다. 가끔은 내가 예상하지 못한 모습으로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내가 알고 있는 나와, 세상이 반사해 주는 나의 모습 사이의 간극은 생각보다 크고 날카롭다. 그 사이에서 상처받고 무너지는 순간,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난 왜 이렇게 무너질까?” 하지만 실상 무너지는 건 지금의 현실이 아니라, 내가 쌓아 올린 ‘나라는 이미지’ 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볼 수 있다.
“나는 나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었을까?”
“내가 고수하려 했던 그 이미지는 정말 나였을까?”
실수 한 번에 자책이 길어지는 건, ‘나는 이런 사람이면 안 된다’는 이미지가 우리 안에 너무 공고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무심한 말 한마디에 하루가 무너지는 건, 내가 나를 어떤 사람으로 여기고 있었는지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그러니 힘든 상황이 닥쳤을 때, 때로는 그 상황 자체보다, 내가 그 상황을 통해 잃어버렸다고 느끼는 ‘나의 모습’에 집중해 보자. 그리고 묻자.
“나는 왜 꼭 그런 사람이어야만 했을까?”
우리는 실패할 수도 있고, 때때로 미움받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때야말로 진짜 나를 만날 기회일지 모른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은 나, 예상과 다른 모습으로도 살아가는 나. 그렇게 조금씩, 내가 만든 이미지를 벗고 진짜 나로 걸어갈 수 있다.
“지금 흔들리는 건 나인가, 아니면 내가 쥐고 있던 ‘나의 모습’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