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진 듯 갈라지지 않은 세상

by 밤하늘 읽는 시간

우리는 흔히 세상을 ‘둘’로 나누어 바라본다. 나와 남, 옳음과 그름, 선과 악. 이런 식의 구도는 너무도 익숙해서, 마치 세상이 본래부터 그렇게 나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나라는 존재는 언제나 남과는 분리되어 있고, 나와 남은 서로를 대신할 수 없으며, 함께 있어도 본질적으로는 구분된 존재라고 여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사고방식, 즉 ‘이원대립’의 틀이다.


그런데 이 틀이 모든 판단과 감정의 뿌리가 된다면, 우리는 무언가를 선택할 때마다 어느 한 편에 서기를 강요받는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옳다고 믿는 것과 틀렸다고 여기는 것 사이에서 끊임없이 저울질하게 된다. 마치 세상은 이분법의 틀 안에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는 듯 말이다. 하지만 정말 세상은 그렇게 ‘갈라져 있는’ 것일까?


우리가 보는 세상은 사실, 그때그때의 조건과 관계에 따라 달라진다. 물 위에 막대기로 선을 그으면 물은 순간적으로 나뉘는 듯하지만, 이내 다시 하나로 흐른다. 갈라짐은 있지만 동시에 갈라짐이 없는 것. 고정된 나뉨이 아니라, 순간적인 구별일 뿐이다. 문제는 이 구별을 절대적인 것으로 착각하고 집착하는 데에서 생긴다. 마치 분필을 두고 ‘짧다’ 고만 여긴다면, 우리는 그것을 대나무와 비교했을 때만이 아니라, 모든 상황에서도 짧다고 고정지어버리게 된다.


하지만 분필은 어떤 기준과 비교하느냐에 따라 길어질 수도, 짧아질 수도 있다. 그 자체로는 길지도 짧지도 않다. 불교에서는 이를 ‘공’이라 하고, 상황에 따라 다르게 드러나는 성질을 ‘연기’라 부른다. 분필이 짧다고 해도, 그것은 ‘짧지 않은 짧음’이며, 길다고 해도 ‘길지 않은 길이’이다. 결국 문제는 분필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 달려 있다.


이처럼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틀을 너무 굳게 고정하지 않는다면, 나와 남, 옳고 그름, 선과 악의 경계도 조금은 유연해질 수 있다. 세상은 언제나 변화하고, 우리의 판단도 그것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한쪽에 고정되지 않고, 그 사이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마음이다.


우리는 갈라진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갈라진 듯 보이는 세계를 해석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어느 한편에 머물러 자신과 타인을 가두기보다는, 그 사이 어딘가에서 조금 더 자유롭고 넓게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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