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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Space
Oct 16. 2021
떠드는 소리가 모자이크 되어 귀로 들어온다.
잠수라도 한 듯 너울거리는 사람들의 웅성임은
마치 내가 물속에 있다는 착각까지 불러일으킨다.
곧 화장실 문과 함께 떠들썩한 소리가 닫힌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소변기 앞으로 다가가 일을 보고 있으면
고개를 푹 떨구고, 이내 '씨익-' 웃음이 난다.
그리고는 깊은 콧숨을 밖으로 내쉬어 보낸다.
맑으면서도 오래 느끼면 역한 기분이 드는 향,
숨을 내뱉으면 그 향이 난다.
눈이 감긴다. 뜨지 않고 잠시 감고 있는다.
몸이 균형을 잡으려고
진자처럼 가볍게 앞뒤로 진동한다.
세상이 도는 건지 내가 도는 건지, 어지럽다가
멀미가 날 즈음 도로 깨어 현실로 온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 오르면
나와 같은 사람들이 고개를 푹푹 떨군다.
그 광경을 보고 있자면 웃음이 난다.
그들의 모습이 웃기고,
그들 눈 속에서 다를 것 없을 내 꼴을 떠올리며
또 한 번, 씩 웃는다.
잠실역 환승 플랫폼을 통과한다.
2호선과 8호선 사이를 연결하는 그곳은
걸어서 약 5분 정도 지나야 하는 길이다.
그곳에서는,
술 취한 몇몇 사람들의 비틀걸음 행진이 열린다.
즐겁다, 나도 비틀거림을 애써 감추지 않으련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발이 가는 길을 따라간다.
멀어서 희미했던 행선 안내판의 숫자가 보일 즈음
이번이 마지막 열차임을 알아챈 사람들은
언제 취했냐는 듯 정신을 바짝 차려서
비틀걸음은 일제히 해제 상태가 된다.
모두가 사력을 다해 뜀박질을 한다.
그리고 다시 열차에 오르면
헐떡이는 숨을 감추며 주섬주섬 핸드폰을 꺼낸다.
이제 환승 열차를 놓칠 걱정은 없으니
이어폰을 귀에 꽂고 눈을 감는다.
노래를 듣기에 최적인 순간이다.
이어폰이라는 장벽이 세상과 나를 단절시키고
그때부터 오직 나를 위한 공연이 펼쳐진다.
세상에, 어찌 이렇게 조화로울 수 있을까,
온갖 종류의 소리가 섞여 귀에 들어온다.
'듣기 좋은 베이스 라인이군,
좋아, 이쯤에서 드럼은 필인을 넣어주고,
그렇지, 여기서 기타 솔로가 나와야지!' 하며
지휘자 시늉을 해본다. 동시에 생각한다.
아, 이 소리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내 몸속에서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걸까.
고막을 마구 때려대는 이 압력이, 사라지지 않고
도대체 어떻게 전율로 남는 것인가!
역에서 나오면 시원한 밤공기가 피부를 때린다.
그 접촉이 나를 기분 좋게 만든다.
시원한 밤공기를 들이마시면
코를 통해 들어온 시원한 숨결이
모든 세포로 뻗어 나가, 저 손끝까지 발끝까지
신선한 에너지를 부여하고 돌아온다.
오늘 하루 열심히 숨 쉬며 쌓인 노폐물이
한 순간에 빠져나오는 시원 상쾌함을 느낀다.
저기 열심히 일한 사람들, 열심히 마신 사람들,
열심히 공부한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늦은 시간에도 깨어 취객을 태우는
버스기사님의 모습이 아름답고 감사하다.
빵가게 사장님도,
순댓국집에서 얼큰하게 술에 절어 나온 아저씨도
모두가 자기 집을 찾아간다.
밤은 시원하지만 따뜻하다.
바람이 살갗을 찢으려던 어느 겨울날에는,
크리스마스에도 가게를 닫지 않고
손님을 기다리는 빵가게 사장님을 보면
따뜻했다. 다른 때보다 더욱 따스했다.
좋아, 감상은 여기까지면 충분하다.
이제 집에 가자! 사랑하는 집으로 가야지.
그런데 이대로 끝내기는 아쉽다.
집 근처 편의점으로 들어간다.
시원한 맥주를 고르고 카운터로 간다.
'늦은 시간까지 일하는 편의점 사장님,
당신 덕분에 내가 마실 수 있습니다.'
속으로 감사인사를 삼키며 카드를 꽂는다.
편의점을 나오면 노란 달이 둥글게 떠있다.
저기 보이는 밝은 달이 오늘 하루의 끝을 알린다.
무거워진 손을 이끌고 사랑하는 집으로 간다.
아직 안 자고 있는 나의 가족이 나를 반긴다.
따뜻하다. 푹신하다. 이곳이 내 집이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