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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임투티 Jul 07. 2016

서른살, 꽃농부로 살기로 결심했다.

치열하게 살아온 마케터 인생, 농부가 되어 보상받기로 했다.

나는 마케터다.

아홉수는 지독했다. 예상은 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그래서 서른살은 다를 줄 알았다. 난 서른이 될거야! 기대에 가득찼던 기분은 아직도 기억난다. 스물 아홉이 끝나가던 12월 어느날, 새로운 다짐으로 이직을 했고 마케터로의 열정은 여전히 가득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면접 당시에 "저는 서른살이 돼요!" 라며 자랑하듯 말했고, 그냥 서른살이 되면 지독하게 치열했던 지난 20대의 순간들을 보상받을 것만 같았다.


아니었다. 서른살도 똑같았다. 유학을 다녀와서 생긴 편견 때문인지, 어딜 가나 '널 키워주마!' 혹은 '너에 대한 기대치가 매우 높아!' 라는 말을 줄곧 들어왔고, 조금만 삐긋하면 무게감있는 책임이 뒤따랐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상사는 시도때도 없이 연락을 하기 시작했고, 공적으로만 여겼던 모든 행동들이 사심 가득해 다가왔단 것을 고백 받았을 때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표를 던지고 말았다. 사회에 나약한 존재로 받아들여졌지만, 상관없었다. 내게 지금 고통스러운 건 사회에서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보여질지가 아니라,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내 서른살이었으니까.




할머니의 농장에 서다.

어린 시절 나는 할머니의 논에서 놀았다. 서울에서 10분거리지만 우리에겐 논이 있었다. 거머리가 다리에 붙어 기겁한 적도 있지만, 늘 흰 쌀밥은 우리 논에서 나는 걸 먹었던 것 같다. 이젠 할머니는 없지만, 오랜 시간이 흘러 엄마랑 이모는 간간히 꽃을 키우고 있었고 외숙모들은 야채를 키우고 있었다. 여전히 할머니는 우리에게 많은 방법으로 함께 하고 계셨다.


직장생활로 스트레스가 머리 끝까지 찰 무렵, 마케터로서의 삶이 두려워져버렸다. 마케터는 늘 치열하게 경쟁하고, 고민이 많아야하고, 트랜디 하면서도 창의적이어야 하는 어려운 직업이다. 아무나 못하는 일은 아니지만, 아무나 하는 일도 아니다. 좋은 마케터가 되기 위해서 수없이 노력을 해왔고, 대기업, 외국계기업, 스타트업까지 안거쳐본 경험이 없을정도로 나름 매력적인 경력도 쌓았다. 그런데 어느날. 여느 직장인들과 다를바 없이 스트레스 하나로 모든걸 내려놓고 싶은 순간이 찾아왔다. 그 때, 할머니 농장에 찾아갔다.


허름한 비닐하우스와 창고. 엄마와 이모는 이곳에 꽃밭을 만들거라 했다. 실망 가득한 내 서른살의 모습. 피폐하고 힘든 내 마음과 비슷해 보였던 겨울 농장. 그리고 그곳에 꽃밭을 가꾸겠다는 엄마와 이모. 나도 같이 해보겠다고 했다.


비닐하우스 안은 이미 부지런한 엄마이모가 나섰다.


꽃농부의 시작.

풀독이 매우 심하고, 벌레를 보면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런 나에게 꽃밭을 가꿔보겠다는 미션은 나를 향한 새로운 도전 같은 기분이었다. 컬러링북, 캘리그라피 등 소소한 취미생활이 직장인들의 마음을 달래준다할 때, 나는 흙을 만지기로 한 것이다.

문제는 어느 것이 풀인지, 꽃인지 구분도 못할정도로 지식이 없다는 것. 무언가를 새로 배우는게 썩 내키진 않지만 뭔가 힐링이 될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남은 서른살은 내가 기대했던 그 '서른살'로 살아보고 싶어졌다. 나를 괴롭힌 지난 반쪽짜리 서른살에 대해 보상받기로 결심했다.


꽃농부. 직장인 취미생활로 제법 근사한 타이틀이다. 아직은 꽃이름도 구분하지 못하는 일급 초보이지만, 이곳 브런치에 꽃농부가 되기까지의 기록을 남겨보기로 했다.




서른살,
나는 꽃농부로 살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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