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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임투티 Jul 07. 2016

꽃농부, 그 시작은 칠사로부터

셀프페인팅으로 꽃농부 생활을 시작하다.

막상 농장에 와보니 무얼 할지, 어떻게 할지 하나도 모르겠다.

풀도 없는 횡한 농원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진짜 뭐가 되긴 되는 걸까 싶었다. 뭘 심기에도 아직은 땅이 꽁꽁 얼어 있을 때고, 봄이 오는 기운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농원에서 나는 꽃농부가 되겠다고 나선 것이다.



농장에 첫눈에 보인 것은 다름 아닌 창고. 논 중심에 있다보니, 비행 청소년들이 쉬어가며 자물쇠를 몇번이고 잘라갔는지 모른다. 그래봤자 농기구밖에 없는 창고인데 말이다. 그간 무슨일이 있었는지 단숨에 알만큼 으스스한 분위기의 창고와 대문짝만한 CCTV 촬영 중이 영 마음에 거슬렸던 것이다.



등나무가 오히려 무섭게만 느껴지던 우리 창고.

농기구뿐이지만 여전히 으스스한 분위기는 어쩔 수 없다.



오두막도 장판이 깔려 있어 그리 근사하진 않다. 게다가 날씨까지 을씨년스럽다. 

정말 시작해도 되는걸까? 갑자기 고민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사진은 3월 무렵인데 아직은 풀을 심기에도 땅이 꽁꽁 얼어있는 느낌이다.

농장에 오기 전, 페인트 집에 들렀다.


"컨테이너 페인트칠을 하려구요"

"어느걸로 드려요?"


"...."


페인트마저도 모른다. 꽃만 모르는줄 알았는데 페인트조차도 모르겠으니 답답할 지경이다.


"작은 컨테이너 창고를 칠할거에요"

"유성으로 쓰시면 돼요. 신나도 적정량 섞어주시구요"

"적정량이라 하시면...?"

"대충 점도를 보고 뚝뚝 떨어지지 않을정도?"


"....네"


대답은 해보았는데 막상 내게 덩그러니 남겨진 녀석들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래 뭐, 시작해보자.




민트색과 파란색을 한참을 고민했다.

민트색은 이다음에 봄이 오면 푸릇한 잎들과 잘 어울릴 것 같았고,

파란색은 튀지만 농장은 좀 더 튀어보여야한다는 색에 그리스풍 색감을 생각했다.



우선 호기롭게 칠하기로 했다.

페인트칠이야 미국에서 집을 여럿 고쳐보아 자신있었다. 이쯤 작은 창고라면 금방 칠할거 같아!



막상 칠하고 나니 색감이 너무 어둡다. 나는 분명 그리스의 산토리니 느낌을 꿈꿨는데 너무 어두워 깜짝놀랄 지경. 이때는 몰랐다. 빨리 칠해야지 오로지 그 생각뿐이라 뒤도 옆도 돌아보지 않는 경주마처럼 쉬지않고 페인트칠만 해댔다. 



그리스 느낌을 주고 싶어서 나름 모서리 부분은 하얗게 남겨두었다.

나름 멋을 내본다고 한 것인데 보시는 분들 마다 왜 칠하다 말았어? 여쭈어보시니 내 미적 감각을 이해 못하신다며 답해보았지만 왠지 뜨끔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어쨌든 그렇게 하루종일 페인트칠만 해서 드디어 완성.

산토리니... 역시나 산토리니는 아니었다. 그냥 촌티나는 파란 창고.



뭐, 나름의 비포애프터 차이가 있다는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사실은 민트로 할걸 하며 백번은 외쳐댈 정도로 후회했다)




이모는 칠사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크지 않은 창고지만 무려 두겹을 칠한대다가 모양까지 내주는데 꼬박 하루 걸렸다. 홀로 페인트칠을 몇시간을 하고나니, 이래저래 시작선에는 선 것 같았다. (꽃농부와는 전혀 상관없잖아!)


아니다. 시작이 반이다. 무조건 반은 먹고 들어간 기분이다.



제대로 반을 먹고 들어가기 위해 새참을 먹어주었다.

농사 지으시는 어르신들이 왜 농사 중간중간 술을 드시나 했는데 지금은 완전히 알 것만 같다. 

이때까지만 해도 잘 모를때지만 하루종일 신나 냄새를 맡다가 막걸리 한잔은 기똥찼다. 

물론 한잔이 아니라 두병을 뚝딱해버렸다.



돌아다니던 장화를 그냥 대충 신고 페인팅을 했는데 맙소사. 다 뭍히고 말았다. 

누구 장화인지 괜히 미안하고 머쓱하다. 난 분명 칠사인데 이렇게 큰 흔적을 남기고 말았으니...



농장 전문 칠사라 불러다오.






지금은 창고의 하얀 모서리는 없어졌고,

조금 더 밝은 하늘색으로 칠해주었다. 그치만 여전히 비슷한 느낌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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