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땅에서 열린 제23회 동계올림픽
티켓을 손에 쥐기까지
때는 2017년 5월, 평창 동계올림픽 온라인 사전 판매가 시작될 때였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이라... 꼭 한 번은 가봐야 후회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평창 동계올림픽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올림픽 티켓값이 비쌀 거라 생각은 했지만, 개막식과 폐회식, 우리나라 강세종목인 쇼트트랙, 동계올림픽의 꽃이라는 아이스하키 티켓은 한국시리즈 프리미엄석에 버금갈 정도로 비쌌다.
"하... 이 돈을 주고서라도 올림픽을 봐야 하나..."
라고 생각했지만, 당시 넉넉했던 자금사정으로 맘에 드는 종목 티켓을 여러 장 구입한 뒤 한참을 잊고 지냈다.
11월이 되자 뜬금없이 택배가 발송되었다는 문자가 왔다. 그 사이 거주지가 바뀌었기 때문에, 택배를 직접 받지 못하고 물류 보관소까지 찾아가 티켓을 받았다. 서류봉투 한 장에 평창 동계올림픽 안내서와 티켓 여러 장이 들어있었지만, 아직도 세 달이라는 기간이 남아있었기에 특별히 신경 쓰지도 않고 지냈다.
개막식
시간은 화살과 같이 흘러갔고, 어느덧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이 열릴 거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아, 내가 평창 동계올림픽 티켓을 들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갑자기 가기 싫다는 생각이 솟구쳤다. 여러 가지 일로 머리가 혼란스러운 와중에 평창이라는 먼 곳에 가야 하는 것도 그랬고, 준비 없이 여행하는 것을 싫어하는 편이라 티켓을 다 팔아버리고 집에서 쉬면서 일하는 것이 오히려 낫다고 느꼈다.
하지만 개막식 이틀 전에 양도하는 것도 마땅치 않아 개막식 당일 급하게 반차를 내고 평창으로 향했다.
동서울버스터미널에서 진부 시외버스터미널, 진부역을 거쳐 평창올림픽플라자에 도착하니 어느덧 오후 6시가 되었다. 용평리조트가 없으면 기억에 잊힐 작은 마을 횡계리가 눈부신 발전과 변화를 거쳐 엄청난 수의 관광객을 수용할 정도가 되니 입이 떡 벌어진다. 개막식을 보기 위해 찾아온 수많은 외국인들에 끼어 올림픽 스타디움으로 향하는 동안 동계올림픽이 대한민국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열리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개막식에 열린 정치집회는 덤...)
빛 터널과 검문검색대를 지나니 올림픽플라자 한가운데 있는 각양각색의 국기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겨울이 없는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의 몇몇 국기들이 보이는 것이 신기했다. 한국을 알리는 대표적 건축물인 한옥, 동계올림픽을 후원한 기업들의 부스, 동계올림픽 관련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스토어 등 축제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수많은 장소들이 관람객의 눈길을 끌고 있었다.
입구에서 한참을 걸어가야 도착할 수 있는 평창 올림픽 스타디움은 개막식과 폐회식이 열리는 동계올림픽의 가장 중요한 장소다.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올림픽로 200'이라는 주소에서도 볼 수 있듯이 첩첩산중 한가운데 지어진 스타디움이다. 역대 올림픽 개최 도시 중 가장 작은 도시로 손꼽히는 평창. 작디작은 산골 마을 한가운데 이렇게 큰 스타디움이 있는 것이 놀라웠다. 작은 규모와 추운 날씨에 상관없이 수많은 인파가 스타디움에 몰려들었고, 경기장 내 빈 좌석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올림픽 개막식의 하이라이트는 선수단 입장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이라 ABC 순이 아니라 가나다 순으로 참여국들이 입장했으며, 동계올림픽 강국인 노르웨이와 독일 선수단이 가장 많은 선수단을 파견한 것으로 보였다. (노르웨이는 인구 500만밖에 안 되는 국가지만 엄청난 수의 선수단이 파견되었고, 결국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한다고 했던가. 한국과 북한은 한반도기를 들고 동시에 입장했으며, 문재인 대통령의 축사와 함께 평창 동계올림픽의 개막이 선언되었다.
개막식의 각종 이벤트들이 소치 동계올림픽에 비해 적은 비용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화려함과 독특함으로 인해 방문객들과 외신들의 찬사를 받을 수 있었다. 평창의 밤하늘을 수놓은 드론들도 멋있었지만, 대한민국 국민들의 영웅인 김연아가 빙판에서 연기를 펼치며 성화에 불을 놓는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다. 벤쿠버와 소치 동계올림픽의 영웅인 그녀의 연기를 본 사람들은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영하의 추운 날씨를 잊은 듯 보였다. 역사적인 현장을 눈 앞에서 보게 되자, 가기 싫었던 그동안의 생각이 한순간에 사라지게 되었다.
개막식이 끝나자 수많은 인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지만, 진부역으로 향하는 셔틀버스들이 원활하게 운행되었기 때문에 30분만 기다리면 집으로 향하는 KTX를 탈 수 있었다. 새벽 2시까지 운행되는 KTX의 도움으로 비싼 돈을 내고 평창에 묵을 필요 없이 집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크로스컨트리
크로스컨트리는 동계올림픽의 마라톤으로 불리는 종목으로, 눈 쌓인 들판을 빠른 시간에 완주하는 경기다. 오르막, 평지, 내리막이 1/3씩 구성되어 있으며, 선수들은 클래식과 프리 주법을 사용해야 한다. 남자 6개, 여자 6개로 나누어 12개의 종목이 진행된다.
평창 동계올림픽 크로스컨트리를 보기 위해 성남시청 앞에서 하루에 한 번씩 운행되는 e-Bus를 탔다. 서울 외 e-Bus를 운행하는 도시는 성남이 유일했기 때문에 편하게 올림픽 경기장으로 향할 수 있었다. 올림픽 흥행을 위해서인지, e-Bus는 무료로 운행되고 있었고 2시간~2시간 30분이면 주경기장인 알펜시아 또는 올림픽 플라자에 도달할 수 있었다.
알펜시아에서 내리면 알펜시아 크로스컨트리센터, 알펜시아 스키점프센터, 알펜시아 바이애슬론센터가 모여있는 알펜시아 올림픽파크로 향해야 한다. 선수들이 타는 버스 정류소와 관람객이 타는 버스 정류소가 잘 구분되어 있지 않아 자원봉사자들에게 물어보는 것이 편했다. 올림픽파크 북쪽 입구 또는 동쪽 입구에서 접근할 수 있는데, 크로스컨트리센터는 동쪽에서 조금 더 가까웠다.
한참을 걸어 크로스컨트리센터에 도착하니 생각보다 많은 관람객들이 벌써부터 모여 선수들을 지켜보고 있다. 크로스컨트리 종목 중 내가 본 것은 크로스컨트리 스키 여자 7.5km + 7.5km 스키애슬론으로, 처음 7.5km는 클래식으로 마지막 7.5km는 프리 주법으로 주행해야 하는 종목이다. 마리트 비에르겐 (37)은 2010 벤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 3개,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 3개를 딴 크로스컨트리의 살아있는 전설로, 평창에서도 금메달을 딸 유력 후보 중 하나였다. 마리트 비에르겐이 선두그룹에서 치고 나가자, 옆에 있던 미국인들도 환호를 지르며 그녀가 금메달을 딸 것으로 예상했지만... 샬로테 칼라 (스웨덴, 30)가 1km를 남기고 선두그룹과 격차를 벌려나갔고, 압도적인 차이로 우승을 차지했다. 샬로테 칼라가 우승한 건 의외였지만 결국 모두의 예상대로 크로스컨트리 강국인 북유럽 국가들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이 금, 은, 동 모든 메달을 싹쓸이했다.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이하 "쇼트트랙")은 111.12m 아이스링크 위에서 스케이팅을 펼치는 빙상 종목이다. 스피드스케이팅처럼 기록종목이 아니라 경쟁종목이기 때문에 경쟁자보다 빨리 결승선을 통과하면 된다. 남자, 여자 총 8개의 종목으로 진행되며 (500m, 1000m, 1500m, 남자 5000m 계주, 여자 3000m 계주), 우리나라가 동계올림픽에서 따는 금메달 대부분을 차지하는 효자종목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종목답게 다른 종목보다 비싼 티켓 가격을 자랑한다.
쇼트트랙 첫날엔 여자 3000m 계주 예선전, 남자 1,500m 결승전, 남자 500m 예선 등 다양한 종목이 열렸다. 금메달이 걸린 종목은 남자 1,500m 단 하나였지만, 이 날의 경기는 숱한 화제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우선, 남자 1,500m 종목에서는 금메달 기대주였던 세계랭킹 1위 황대헌 선수가 아쉽게 넘어졌지만, 임효준 선수가 1등으로 들어오면서 대한민국에 첫 금메달을 안겼다. TV에서만 보던 한국이 금메달 따는 모습이 실제 내 눈 앞에서 펼쳐지다니... 믿기지 않았다. 임효준 선수가 금메달리스트가 되기 전,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더욱더 흥분했던 건 여자 3,000m 계주였다. 레이스 중간에 이유빈 선수가 넘어졌지만 포기하지 않고 달리면서 1등으로, 그것도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면서 준결승을 통과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미국의 쇼트트랙 대표 선수였던 안톤 오노는
“다른 국가들이 한국을 이기기 위해선 도대체 얼마나 거리를 벌려야 하는가”
라면서 놀라워했다고 한다.
임효준 선수의 금메달 시상식이 끝나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 내내 그 짜릿함을 잊지 못했고, 비싼 티켓값이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경기를 보여준 대표팀 선수들에게 고마웠다.
피겨 스케이팅
피겨 스케이팅은 음악에 맞추어 스케이트를 신고 빙판 위를 활주 하며 다양한 동작으로 기술의 정확성과 아름다움을 겨루는 빙상경기다. 남∙여 개인이 출전하는 싱글, 남녀가 한 조를 이루어 경기를 펼치는 아이스 댄스와 페어, 앞선 네 종목을 합쳐 국가별로 겨루는 팀 이벤트 총 5 종목이 있다.
내가 관람했던 피겨 스케이팅은 10개의 국가가 겨루는 팀 이벤트로, 남∙여 싱글, 아이스 댄스, 페어 모두를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중간 점수를 합산하여 상위 5개국을 가려내며, 5개국이 다시 결선을 펼쳐 최종 점수가 높은 국가가 우승하는 종목이었다. 개인적으로 피겨 스케이팅은 실제로 가서 봐도 그다지 와 닿지 않았다. 각종 기술과 예술도가 중요한 만큼 가까이서 봐야 실감이 나는데, 멀찍이 떨어져서 보면 선수들이 어떤 기술을 구사하는지 식별이 잘 되지 않기 때문이다.
김연아 선수 이후로 대형 선수가 나오지 않은 피겨 스케이팅이라, 대한민국이 피겨 스케이팅에서 메달을 획득할 거라는 기대도 적었다. 차준환이나 최다빈 같은 유망주들의 경기를 지켜보는 것이 이번 대회의 낙이라고나 할까. 다른 국가들보다 비교적 적은 점수를 획득하며 결선에 진출하지 못한 대한민국이지만,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 특히, 어머니를 잃고 상심이 컸을 최다빈 선수가 "Papa, Can you hear me?"에 맞춰 환상적인 연기를 펼치며 성공적으로 복귀한 모습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이후 러시아의 메드베데바 선수가 김연아의 쇼트 세계기록을 경신했다는 소식이 들렸지만, 기억에 가장 남는 장면은 최다빈 선수가 열연했던 그 장면이었다.
스피드 스케이팅
스피드 스케이팅은 2명의 선수가 동시에 출발하여 400m의 아이스링크 트랙 위에서 속도를 겨루는 경기이며, 선수들은 인코스와 아웃코스를 번갈아가며 달린다. 남자 500m, 1,000m, 1,500m, 5,000m, 10,000m, 팀 추월 및 매스스타트, 여자 500m, 1,000m, 1,500m, 3,000m, 5,000m, 팀 추월 및 매스스타트 총 12개의 종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매스스타트 외엔 기록으로 경쟁을 한다.
스피드 스케이팅은 남자 5,000m, 남자 10,000m 두 경기를 관람했다. 설날을 맞이하여 가족여행으로 평창 동계올림픽을 관람하러 갔는데 원래 보려던 남자 스켈레톤이 표가 동나서 대안으로 선택한 것이 남자 10,000m 스피드 스케이팅이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스피드 스케이팅 기대주인 이승훈 선수는 5,000m에 출전하여 한동안 1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뒤에 나온 선수들의 기록이 워낙 좋아 최종으로 5위까지 밀려나게 된다. 메달을 못 딴 건 아쉽지만 5위를 차지한 것만으로 충분한 이변이었고, 이승훈 선수가 막판 스퍼트로 같이 달리던 독일 선수를 추월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네덜란드의 스케이팅 영웅인 스벤 크라머가 우승을 차지하자 네덜란드 국민들이 환호를 지르며 기뻐하던 모습도 기억에 남는다.
남자 10,000m는 1위를 차지한 테드 얀 블로멘 선수도 12:39.77이 걸릴 정도로 긴 종목이다. 총 12명의 선수들밖에 출전하지 않음에도 경기시간이 2시간 정도나 된다. 이승훈 선수는 랭킹이 낮아 3조로 출전했는데, 이 종목에서도 막판 스퍼트를 보여주면서 좋은 기록을 만들어 냈다. 동메달을 딸 수도 있었으나, 이탈리아의 니콜라 투몰레로 선수와 단 1초 22 차이로 4위를 차지했다. 금메달을 딸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스벤 크라머가 마지막 조로 출전했지만, 상대적으로 부진하여 캐나다의 테드 얀 블로멘 선수가 우승을 했다. 동생과 함께 스벤 크라머가 우승할 거라고 예측을 했지만, 그가 부진하자 마치 네덜란드인이 된 것처럼 같이 안타까워했다. 경기가 끝나고 안 사실인데, 우승을 차지한 블로멘도 네덜란드 출신으로 2014년에 캐나다로 귀화했다는 것이다. 과연 스피드스케이팅의 절대강자, 네덜란드답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피드 스케이팅은 한국이 쇼트트랙에서 금메달을 독차지하는 것처럼, 네덜란드가 금메달을 휩쓰는 종목이다.)
평창 올림픽 플라자나 강릉 올림픽 파크는 경기를 보지 않더라도 2,000원을 내면 입장권을 구입해 들어갈 수 있다. 설날 당일에는 가족들과 함께 강릉 올림픽 파크를 둘러보며 기념품을 구입하고, 스폰서 부스도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엄청난 인파로 인해 각종 기념품들을 구경하기 위해 슈퍼 스토어에서 30분 정도나 기다려야 했지만, 수호랑과 반다비 인형은 고생해서 얻을 만한 가치가 있었다.
스노보드
스노보드는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될 정도로 역사가 짧다. 평행대회전(남, 여), 하프파이프(남, 여), 스노보드 크로스(남, 여), 빅에어(남, 여), 슬로프스타일(남, 여) 총 10개의 종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평행대회전과 스노보드 크로스는 결승선을 먼저 통과하는 선수가 이기는 종목이며, 나머지 종목은 피겨 스케이팅과 비슷하게 연기로 점수를 매기는 종목이다.
스노보더들의 성지라 불리는 휘닉스 파크에서 빅 에어를 제외한 전 종목이 열렸기 때문에, 이번 겨울엔 휘닉스 파크를 사랑하는 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여기서 보드를 타지 못 했다. 내가 본 종목은 남자 평행대회전, 여자 평행대회전이었는데, 하프파이프나 슬로프스타일같이 화려한 연기를 펼치는 종목들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일주일 전 스노보드가 주종목이었던 에스터 레데츠카(체코)가 알파인 스키에서 금메달을 따는 이변으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면, 이번에는 압도적인 기량을 펼치며 체코에 금메달을 선사한다.
여자부 결승도 흥미진진했지만, 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가장 관심 있어했던 경기는 남자부 평행대회전에 출전한 이상호 선수의 경기였다. 예선전을 3위로 통과해 준결승까지 올라왔지만, 예선전 순위가 높은 선수가 코스를 선택할 수 있어서 이상호 선수는 블루 코스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블루 코스가 당일 설질이 좋지 않아 선수들은 유리한 레드 코스를 선택했기 때문에, 이상호 선수가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 경기 중반만 해도 이상호 선수가 기록이 뒤쳐져 동메달을 바라봐야 하는 상황이 아닌가 생각이 되었지만, 후반부 속도를 올리며 0.01초 차이로 결승에 진출하게 된다. (논란이 조금 있기는 하지만) 결승에선 스위스의 네빈 갈마리니에게 지며 은메달을 차지했지만 평행대회전에서 아시아 선수가 메달을 따는 건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설상 종목에서 대한민국이 따낸 최초의 메달이라는 점에서 이상호 선수는 큰 일을 해낸 것이다.
컬링
컬링도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처음 정식종목으로 채택될 정도로 역사가 짧다. 각 팀이 번갈아가며 스톤을 던지고, 10개의 스톤을 던지고 최종적으로 티(원형 타깃의 중심)에 가장 가깝게 스톤을 위치시킨 팀이 점수를 따내는 방식이다. 정적인 경기지만, 전략∙전술이 중요한 종목으로 대한민국 여자대표팀이 은메달을 따내는 이변을 만들어냈다. 남자, 여자, 믹스더블 총 3개의 종목이 있다.
내가 관람한 경기는 남자 컬링 결승전으로 스웨덴과 미국의 경기였다. 티켓을 예매할 2017년 5월 당시엔 대한민국 여자대표팀이 선전할 줄 꿈에도 몰랐기 때문에 남자 결승 티켓을 구입했다. (비록 지긴 했지만 여자 결승전을 못 본 게 너무도 아쉽다.) 컬링 경기는 서로 두뇌 싸움이 치열하게 펼쳐지기 때문에, 작전을 세우는 스킵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국과 스웨덴은 7 엔드까지 5대5로 팽팽하게 맞섰으나, 8 엔드 때 스웨덴의 미스와 미국의 환상적인 작전이 겹치며 미국이 무려 5점을 따내며 경기가 한쪽으로 기울게 된다. 당시 미국의 엄청난 샷을 보며 다음날 한국 여자 대표팀도 선전하길 기원했지만... 스웨덴에 져 은메달에 머물게 되었다. (은메달도 엄청난 성과다!)
봅슬레이
봅슬레이는 1924년 제1회 동계올림픽부터 정식으로 채택되었을 정도로 유서 깊은 종목이다. 봅슬레이는 방향을 조종할 수 있는 썰매를 타고 얼음으로 만든 트랙을 활주하는 경기로, 오픈 4인승, 남자 2인승, 여자 2인승 총 3개의 종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평균 시속이 135km에 이를 정도로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종목으로, 트랙을 매끄럽게 돌면서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봅슬레이 경기가 열린 올림픽 슬라이딩 센터는 2월 16일 윤성빈 선수가 스켈레톤에서 금메달을 따낸 종목이다. 스켈레톤과 더불어 봅슬레이에서도 대한민국의 원윤종 팀이 메달을 따낼 수 있을 거란 기대를 갖고 경기를 지켜봤다. 3차 주행과 4차 주행이 열렸는데, 3차 주행이 끝나고 원윤종 팀의 중간 순위는 2위! 마지막 4차 주행에서 기록은 좋지 않았지만, 독일의 니코 월터 팀과 3:16.38으로 동률을 이뤄 은메달을 따내게 되었다.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에서 이상호 선수가 이룬 것과 마찬가지로, 아시아 국가가 봅슬레이에서 메달을 따낸 건 원윤종 팀이 사상 최초였다. 대한민국 선수들이 메달을 따는 경기를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었던 건 엄청난 행운이었다.
아이스하키
동계올림픽의 꽃이자 미국 4대 스포츠 중 하나인 아이스하키! 한 팀당 2명의 골키퍼와 20명의 플레이어로 이루어진 두 팀 중 득점을 많이 하는 팀이 이기는 종목이다. 3명의 포워드, 2명의 디펜스, 1명의 골키퍼로 구성되며 20분씩 3 피리어드로 치러진다. 가장 인기 있는 종목이라 티켓값도 비싸지만, 미국 NHL 선수들의 경기를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주저 없이 예매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작은 시장이라는 한계 때문에 NHL 사무국은 평창 동계올림픽에 불참하는 것을 선언했고, 세계적인 기량을 자랑하는 수많은 선수들은 출전하고 싶어도 평창에 오지 못하게 된다.
나는 이러한 소식을 듣고 아이스하키 경기가 열리기 전 해외여행을 갈 때 또는 한국에서 만났던 미국인에게 항상 하소연을 했다. NHL 사무국이 평창 동계올림픽 불참을 선언했다고. 그런데 4년 뒤 베이징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은 참가한다고. 한국에 가서 동계올림픽을 보고 싶다고 나에게 말하던 미국인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What a stupid decision!"
NHL 극성팬이 아니던 미국인들은 이 소식을 나에게 처음 듣고 경악을 금치 못 했다. 어리석은 결정이라고 분명 후회할 거라고 말했던 미국인들. 평창 동계올림픽이 흥행에 성공했다는 지금, NHL 사무국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NHL 선수들을 보지 못 했지만, 결승전 자체는 흥미진진했다. 총 12개국이 출전한 가운데, 예선 9위에 그친 독일이 상위팀들을 차례로 꺾고 (겨우겨우) 결승까지 진출하는 이변을 연출했다면, 예선 3위로 진출한 러시아는 토너먼트에서 만난 팀들을 압도적으로 누르며 결승에 도달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러시아의 손쉬운 승리를 점쳤지만, 독일은 종료 30초 전까지만 해도 3:2로 앞서며 금메달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게다가 러시아는 한 명이 퇴장당해 제대로 된 공격도 할 수 없는 상황. 하지만 러시아가 득점에 성공해 연장전까지 가게 되자 러시아 팬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열광하게 된다. 승기가 러시아로 넘어간 연장전에서 독일의 한 선수가 퇴장을 당하게 되고 얼마 되지 않아 러시아가 득점에 성공하면서 금메달은 러시아의 몫이 되었다.
같이 간 친구와 함께 독일을 열심히 응원했지만, 30초 남은 시점에서 골을 허용한 후 러시아가 우승할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옆에서 함께 응원하던 독일 가족은 수적으로 압도하는 러시아의 함성에 맞서 목청이 터져라 열심히 응원했지만, 정말 아쉽게도 패하고 말았다. 예선에서 두 번이나 지고도 결승까지 진출한 독일의 근성에 반했지만, 결과는 아쉽게도 러시아의 승. 러시아는 출전국 자격을 박탈당해 시상식에서도 올림픽 찬가가 울려 퍼졌지만, 러시아 대표팀과 국민들은 그에 맞서 (후에 논란이 된) 러시아 국가를 목이 터져라 불러댔다. 러시아 사람들의 애국심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강릉 하키 센터에서 다시 떠 올린 건 이렇게 재미있는 경기를 펼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을 보이콧한 NHL 사무국의 괘씸한 결정이었다.
폐회식
아이스하키 남자부 결승전이 끝나고 3시간 뒤에 평창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폐회식이 열렸다. 강릉 하키 센터에서 평창 올림픽 스타디움까지 가는 것 자체가 고역인데, 셔틀버스를 무려 3번이나 타야 했기 때문이다. (강릉 올림픽 파크→북강릉 주차장→대관령 주차장→평창 올림픽 스타디움) 버스를 오래 기다리긴 했지만, 자원봉사를 마치고 폐회식을 보러 가는 몽골 친구와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평창 올림픽 스타디움과 가까운 식당에서 같이 닭갈비도 먹으며 몽골 친구의 즐거웠던 자원봉사 경험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한국은 자원봉사자들의 모든 편의를 제공해주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일 거라고 그동안 즐거웠다고 우리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흥행이나 한국의 위상 제고 등 여러 면에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평창 동계올림픽답게 자원봉사자들에게도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어 다행이었다.
폐회식은 개막식과 비슷하게 올림픽의 주인공들인 선수단이 입장하면서 막을 내릴 준비를 한다. 순위를 따로 발표하지는 않지만 좋은 성적을 거둔 노르웨이와 독일 선수단이 당당하게 입장을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대한민국과 북한은 개막식과 다르게 한반도기 대신 태극기와 인공기를 따로 들고 입장했다. 당일 경기가 끝나 메달 플라자에서 시상을 할 수 없었던 크로스컨트리 두 종목은 폐회식에서 시상을 하게 되는데 스타디움 바닥 전체가 금, 은, 동으로 변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씨엘과 엑소 두 가수들이 공연이 중간에 열리고, 다음 동계올림픽 개최지인 베이징에 올림픽기를 넘겨주는 행사가 열렸다. 베이징 측에서 올림픽기를 넘겨받은 후, 다음 올림픽의 상징이 돌 판다들이 나와서 화려한 쇼를 펼쳤다. 다음 하계올림픽과 동계올림픽 모두 동북아에서 열리는 만큼 성공적인 개최가 되길 기원하는 마음이다. 폐회식이 끝날 때쯤, 참가국 선수들이 나와 DJ의 음악에 맞춰 춤추고 즐기는 시간이 주어졌다. 김연아가 불 피웠던 성화에 불이 꺼진 모습을 보니 평창 동계올림픽이 막이 내렸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고, 그동안 국민들을 즐겁게 했던 거대한 행사가 끝이 났다는 아쉬움이 마음 한 구석에 떠오른다.
2018 평창 문화올림픽
미디어아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평창을 둘러보면서 미디어아트 순례를 즐길 수 있었다. 각종 버려진 공간들과 동굴을 활용해 미디어 아트가 설치되어 있으며, 재미있는 작품들이 많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특히 동굴 내부를 활용한 광천동굴은 자연과 예술의 조화가 신비로웠고, 가족들과 함께 많은 기념사진을 남길 수 있었던 곳이었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일환으로 강릉 경포해변에서 파이어 아트 페스타가 열렸다. 기존 계획과 달리 건조주의보 때문에 작품들에 불을 피우지는 못 했지만, 인도네시아와 러시아의 공연, 우크라이나의 화려한 불꽃 공연이 펼쳐져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평창 송어의 집
가족들과 함께 평창의 맛집으로 찾은 곳은 '평창 송어의 집'이다. 평창은 맑은 물로 이루어진 고장답게 1 급수에서만 자란다는 송어가 유명한 곳이다. 평창 송어의 집에 들르면 수많은 송어들을 볼 수 있으며, 양식된 송어들을 맛 볼 수도 있다. 송어를 먹어본 적이 없어서 한편으로 걱정이 되었지만, 이때가 아니면 언제 먹어보냐는 생각으로 송어의 집을 들렀다. 민물고기라 맛없을 거라는 편견과 다르게, 송어회와 송어구이 모두 엄청난 맛을 자랑한다. 평창까지 오느라 허기진 배를 채워줘서 그런지, 더욱더 잊지 못할 경험이 되었다.
평창 송어의 집
전화번호: 033-332-0505
영업시간: 11.30am-8pm (break 4.30pm-5.30pm)
메뉴: 송어회 (1인분) ₩17,000, 송어구이 ₩35,000, 매운탕 ₩3,000
선교장
선교장의 한옥 체험은 설 연휴 평창 동계올림픽과 더불어 잊지 못할 경험 중 하나다.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에도 합리적인 가격으로 한옥체험을 할 수 있어 주저 없이 선교장에서 묵는 것을 택했다. 추운 날씨에 따뜻한 온돌방에서 휴식을 취한 건 오랜만의 경험이라 가족들 모두 만족하는 눈치였다. 한옥의 규모와 아름다움을 보고 어머니는 "여기 문화재 아니야?"라고 물으셨고 내가 맞다고 대답하니, 문화재에서 묵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관람시간이 시작되는 오전 9시 이전에 퇴실해야 한다는 점과 화장실, 샤워실이 바깥에 있다는 점이 단점이라면 단점이지만, 수백 년 된 한옥에서 묵을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히 해볼 만한 경험이었다.
선교장
전화번호: 033-646-3270
홈페이지: knsgj.net
숙박료: 서별당 ₩300,000, 연지당 ₩200,000, 홍예헌 ₩250,000
주의할 점: 퇴실시간 9am 이전
대한민국에서 열린 최초의 동계올림픽
아마 내 평생에 있어 대한민국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개막식이 열리기 전엔 너무도 가기 싫었지만, 막상 가고 나니 즐거운 기억만을 선사해준 평창 동계올림픽! 4년간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대한민국의 선수들도 있겠지만,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메달을 획득하지 못한 수많은 선수들도 있을 것이다. 결과야 어떻든, 각자의 길에서 노력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아름다운 법이다. 괴테의 명언 한마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위해 노력하는 이 순간이야말로 영원히 아름답다.
수많은 감동을 선사한 대한민국 대표팀에 너무도 감사하고 즐거운 시간이었으며,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나도 노력하는 그 순간을 즐겨야 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