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간직한 안동의 아름다움을 온 가족이 함께 느낀 여행
안동(安東)이란 이름을 들으면 참 편안하다. 어릴 적 명절 때마다 방문한 부모님의 고향인 의성(義城)과 가까워서였을까. 아니면 영국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가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한 소식이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실린 기억 때문일까. '안동'이라는 지명은 고려가 한반도를 통일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를 멸망시킨 뒤에도 숱하게 일어나는 신라 부흥 운동을 억제하기 위해 '동쪽을 안정시킨다'라는 뜻의 안동을 붙인 건이 그 시작이었다. 조선 시대로 넘어오며 안동의 원래 의미는 유명무실해졌지만 안동은 동북아시아의 중심 사상이었던 유학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유학을 바탕으로 동아시아의 안정을 꾀하는 곳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나도 모르게 안동이라는 지명을 편안하다고 느낀 이유는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인 안동이 한국인이라는 내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곳이라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기억도 안 나는 초등학교 수학여행 이후 다시 안동에 가게 된 건 2012년이 되어서였다. 대한민국의 대표 축제란 축제는 다 찾아다닐 무렵, 안동에서 열리는 '안동 국제 탈춤페스티벌'에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안동을 대표하는 민속마을인 하회마을에 묵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락고재'는 당시 학생이었던 내 신분상 너무나 비싼 선택지였고, 대신 '번남고택'에 묵게 되었다. 일단 예약을 한 뒤 친동생에게 연락해 안동 여행을 떠나보는 게 어떻냐고 물어봤다. 오랜만에 함께 여행을 떠나면 좋을 것 같은데 서울과 포항의 중간 지점인 안동으로 가면 좋겠다고 에둘러 물어봤다. 그는 처음엔 확답을 주지 않았지만 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에 안동에 같이 가자고 연락을 했다. 첫 번째 안동 여행은 '형제가 함께 떠난 화기애애한 여행'이었다.
안동 하회마을 강변에서 펼쳐진 하회 별신굿 탈놀이, 부용대에서 바라본 하회마을의 환상적인 풍경, '안동 국제 탈춤페스티벌'에서 본 세계 각국의 춤 등 무려 7년이 지났지만 당시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있을 정도로 안동은 아름다운 도시였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번남고택 주인아주머니께서 우리에게 하신 질문이다. 창원에서 태어나 자라 '~가?'나 '~나?'로 끝나는 '부산 사투리'와, '~교?'로 끝나는 '대구 사투리'는 숱하게 들어왔지만 '안동 사투리'를 하회마을에서 처음 듣게 되었다. 형제끼리 여행 왔다고 하니, "아~ 둘이 형제니껴?"라고 물어본 것이다. "형제가?"나 "형제인교?"가 아닌 "형제니껴?"라니! 같은 경상도지만 차 타고도 몇 시간 가야 되는 안동이라 사투리도 다르기 마련이었다.
시간은 흘러 흘러 2019년 추석이 되었다. 우리 가족은 명절마다 여행을 떠나며, 여행 계획을 비롯한 모든 일정은 내가 떠맡게 된다. 때마침 2019년에 '한국의 서원'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고, 당시에 방문하지 못 한 병산서원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에 더해 다시 안동에 가서 우리가 느낀 감동을 부모님께 전하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다.
창원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무려 2시간 30분을 달려야 안동에 도착했다. 안동에 도착하자 부슬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고, 시계는 어느덧 2시를 향하고 있었다. 안동을 대표하는 음식인 '안동찜닭'을 먹으러 안동 구시장으로 향했다. 안동찜닭 거리에는 10곳이 넘는 찜닭 음식점이 줄지어 서 있다. 어느 곳에 가도 맛은 비슷하지만 우리가 택한 곳은 '신선찜닭'이었다. 다른 찜닭집과 달리 이 곳에서는 참마 씨앗을 넣는 것이 특징이다. 참마 씨앗은 부드러운 찜닭과 함께 독특한 풍미를 전했다.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뒤에 찾아 식당 내부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손님들은 적었다. 하지만 포장 주문을 하는 손님들은 끊임없이 찾아와 참마 씨앗이 든 찜닭을 싸가곤 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참마 씨앗의 맛이 소리 소문 없이 현지인들 사이로 퍼지는 건 아닐까.
굶주린 배를 채우고 향한 곳은 독립운동의 성지인 '임청각'과 국보로 지정된 '안동 법흥사지 칠층 전탑'이었다. 임청각과 칠층 전탑은 서로 코 앞일 정도로 가까우므로 함께 방문하는 것이 좋다. '임청각'은 형조좌랑을 지낸 적 있는 이명이 1510년에 건립한 고택이며, 상해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이상룡의 집이기도 하다. 안동에 있는 대부분의 고택이 그러하듯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에 자리 잡았으나 바로 앞에 철길이 놓여 예전의 아름다운 모습은 온 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이는 임청각이 독립운동가 9명을 배출한 집안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일제가 의도적으로 앞마당과 집 일부를 철거하고 중앙선 기찻길을 냈기 때문이다. 이육사의 고향이기도 한 안동이 예나 지금이나 동쪽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증거 중 하나가 바로 임청각인 것이다.
99칸 대저택이 50칸 정도로 축소되었음에도 임청각은 아름다운 모습을 뽐낸다. 낙동강을 바라보는 '丁' 형태의 군자정은 낙동강의 풍취를 즐기는 양반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비가 오는 와중에도 임청각을 방문한 사람들은 우산을 들고 문화해설가님의 설명에 경청하고 있었다. 해설가님의 안내에 따라 군자정 내부에 들어서니 과연 몇백 년이 된 고택의 향기가 느껴졌다. 창문을 여니 낙동강의 모습과 함께 일제가 놓은 철길이 보였다. 문제를 인식한 정부가 안동역과 함께 중앙선 철로를 이전하며 임청각을 복원할 계획이라고 하니 천만다행이다.
안동 법흥사지 칠층 전탑은 경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석탑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화강암으로 만든 석탑이 아니라 흙을 구워 만든 벽돌을 쌓아 만들었기 때문이다. 탑의 받침대인 기단은 1층이며, 기단의 각 면은 8부중상과 사천왕상으로 장식되어 있다. 탑의 중심부인 탑신과 기단 사이에는 일제 시대 때 보수 명목으로 바른 시멘트가 남아있어 안타까움을 더한다. 높이 17m, 기단 너비 7.75m인 고려 시대 7층 전탑이 아직까지 안정된 자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국보로 지정될 만하다. 7년 전에는 안동역 인근의 운흥동 오층 전탑만 감상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 법흥사지 칠층 전탑을 볼 수 있게 되어 좋았다. 보물로 지정된 오층 전탑과 달리 규모와 안정감 면에서 훨씬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임청각을 들리고 나자 어느덧 저녁 먹을 시간이 다 되어갔다. 점심 식사를 한 지 얼마 안 되어, 숙소로 가기 전 '만휴정 원림'을 마지막으로 들리기로 했다. '만휴정 원림'은 원래 이름보다 '미스터 선샤인' 촬영지로 더 유명한 곳이다. 만휴정은 조선시대의 문신 김계행(金係行)이 말년에 독서와 사색을 위해 지은 건물로, 주변의 자연경관이 아름다워 국가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그는 인근의 묵계서원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만휴정에서 사색을 하며 노년을 보냈다. 연산군으로 인해 정세가 어지러울 무렵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그의 선택은 옳았다. 풍류를 즐길 줄 아는 노 선비 덕분에 송천 계곡의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하며 조선 시대의 삶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민들에게 기쁨을 주었던 '미스터 선샤인'에도 도움을 주었으니 만휴정의 가치는 전 국민에게 전해졌을 것이다.
비록 안동에 왔지만 안동을 비롯한 인근 지역에도 고택이 많다. 봉화의 만산고택, 의성의 소우당 고택, 예천의 예천권씨 초간종택 등 조선시대의 오랜 전통은 경북 북부 지방에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경북 북부 여행을 떠날 때 고택 체험을 하지 않는다면 여행의 매력이 반감된다. 임청각을 보고 한옥의 아름다움에 대해 다시 한번 감동을 느끼게 되었고, 여행 중 고택에서만 묵게 된 내 선택이 옳았음을 확신했다. 우리 가족이 첫날 묵었던 숙소는 청송이 자랑하는 '송소고택'이었다.
신선찜닭
주소: 경북 안동시 번영길 6
전화번호: 054-842-9989
영업시간: 오전 10시 ~ 오후 10시
메뉴: 안동찜닭 (중) ₩24,000
임청각
주소: 경북 안동시 임청각길 63 임청각
전화번호: 054-859-0025
홈페이지: http://www.imcheonggak.com/
관람시간: 오전 9시 ~오후 6시
입장료: 무료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
주소: 경북 안동시 법흥동 8-1
관람시간: 24시간
입장료: 무료
안동 만휴정 원림
주소: 경북 안동시 길안면 묵계하리길 42
전화번호: 054-856-3013
입장료: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