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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얄루루 Jan 20. 2022

어쩌다 그린란드(4) 그린란드의 수도, 누크 둘러보기

Hello Nuuk!


나의 여행 계획은 누크에서 9박, 일루리사트에서 16박인 만큼 아주 심플했다. 많이 움직이지 말고 오래 머물러서 진득하게 즐겨보자는 모토였지만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니 왜 이렇게 은둔 형처럼 지냈을까 후회가 됐다. 낯선 곳에 가더라도 나는 낯설어지지가 않으니 있는 성격 그대로 느긋하게 여행해보자 라는 의도였지만 가끔씩은 눈 딱 감고 행동했어야 했나 라는 생각도 했다. 근데 사실 심플하게 여행할 수밖에 없었던 큰 이유는 역시 돈 때문이었다. 도시를 옮길 때마다 1시간도 안 되는 비행시간인데도 비행기 값은 왜 이렇게 비싼 건지……. 겨울이라 배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세 도시 이상을 갔다면 경비가 얼마나 더 필요했을지 눈앞이 아득하다. 결론은 돈이 없으니 짱 박혀있는 여행을 하는 수밖에.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겐 멀리 가시는 거 더 투자해서 3 도시 이상 다니셨으면 좋겠다. 시간이 여의치 않다면 일루리사트 추천.     



누크에서의 아침이 밝았다.

유심칩도 사고 시내 구경도 할 겸 호기롭게 집을 나섰다. 밤새 눈이 엄청 많이 왔는데 현관문 앞 발판으로 생각되는 곳에 발을 딛었다가 그대로 눈 속으로 빨려 들 어가 몸이 허벅지 깊이까지 빠져버렸다. 이게 땅인지 아니면 빈 공간에 눈이 쌓인 것인지 분간이 안 되니 이런 참사가 일어나버렸다. 이 이후로 발자국이 없는 눈 위에는 웬만하면 가지 않는 노하우가 생겼다. 내 목숨은 소중하니까 (나중에 집에 와서 다리를 확인해보니 발판을 쓸면서 몸이 빠지는 바람에 멍이 크게 들어있었다 ㅠㅠ) 그래도 부상투혼 정신으로 주인아주머니의 초등학생 아들내미가 학교 가려고 쓸어놓은 지름길을 이용해 시내로 나갔다.    

  

먼저 유심칩을 구입하러 tele post 통신사 건물로 향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온 plan이 있었는데 여행자에게 해당되지는 않았고 덴마크 social number가 있는 사람들한테만 적용되는 것이었다. 친절하신 직원 분께서 한번 가짜 번호(?)로 가능한지 도전해보겠다며 이리저리 노력해보셨지만 되지는 않았다. 결국 보통 여행객들이 사용하는 플랜으로 신청해주셨는데 유심카드 값 포함 400 DKK 우리나라 돈으로 약 7만 원을 결제했다. 대충 계산해 보니 문자, 통화를 안 쓴다는 가정 하에 200MB도의 인터넷을 쓸 수 있는 정도였는데 이걸 사려고 7만 원을 냈다니 껄껄 여행자에게 정말 힘든 나라구나 허탈감에 친구와 실성하며 웃었다. 눈에 고립될 때나 비상상황에 대비해 아껴 쓰기로 했는데 너무 아낀 나머지 200MB도 다 못쓰고 왔다는 후기.      


그렇게 돌아다니다 출출해져서 밖에서 밥을 먹을 생각으로 찾았던 햄버거 가게에 방문했다.

‘farmer's grill & take away'

grilled 패티를 쓴다더니 불 맛이 입안을 맴돌면서 맛있었다. 이름답게 농부가 직접 운영하나 싶을 정도로 아삭했던 야채, 총체적인 평은 그린란드 판 버거킹이었다. 역시 버거는 버거킹! 나중에 거의 다 먹어갈 때쯤에는 목이 막혀서 ‘친구야 콜라 사 먹을래..?’ 했는데 정말 애매하게 햄버거 양이 남아서 콜라가 많이 남을 것 같아 (심지어 밖은 추워!) 메마르게 식사를 마쳤다.



소화를 시킬 겸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데 추운 나라답게 건물에 생기는 고드름도 위협적이었다. 잘못 맞으면 인생이 끝난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주인아주머니께서는 남편분이 매일 아침에 집 지붕에 달린 고드름 청소를 하신다 했는데 그 말이 이해가 됐다. 큰 건물들은 아마 높아서 자주 정리를 못하는 것 같았는데 다닐 때 위를 잘 보지 않고 걸었다가는... 뒷말은 생략해야겠다.



그리고 한 건물을 잠깐 들렀는데 벽에 BTS 낙서가 있어서 진짜 깜짝 놀랐다. 정말 BTS가 어마어마하구나 실제로 체감하게 된 순간. 나중에 일루리사트에서는 BTS 소녀 팬도 만나서 "안녕하세요"라고 몇 번을 인사를 했던 기억이 난다. 선물로 줄 굿즈 같은 게 없어서 아쉬웠는데 다음 여행에는 선물용으로 하나 구비하는 것도 좋을 듯싶다.


이렇게 한국 집순이의 누크 2일 차는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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