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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얄루루 Jan 22. 2022

어쩌다 그린란드(5) 눈 그리고 맥주

감성 샷 찍어보고 싶었어

누크에 도착한 다음날부터 끊임없이 눈이 왔다. 하늘에 구멍이 뚫렸는지 쉴 새 없이 와서 이게 가능한 수준인가 싶었다. 원래부터 큰 계획은 없었지만 친구와 더더욱 집에 있자는 결론을 내렸다. ‘낯선 곳에서의 편안함’, 당분간 누크에서의 우리 모토였다. 정말로 눈이 많이 와서 이때 썼던 일기 또한 눈 얘기밖에 없었다.   

   

정말 끊임없이 내리던 눈. 집 앞 뷰
01.19
오늘은 딱히 한 게 없다. 박물관에 가려고 했는데 미적거려서 한 4시까지 집에 있다가 저녁거리로 스파게티 재료를 사 왔다. 새우랑 베이컨 넣고 토마토소스랑 먹었다. 그리고 오늘도 눈이 참 많이 온다. 내일은 무엇을 해야 할까
01.20
진짜로 오늘은 박물관에 가려했다. 근데 눈 지-인짜 많이 온다. 저쪽 건물이 안 보이는 수준이다.

가끔씩 집 현관문을 열어서 문턱에 있는 눈이 얼지 않도록 틈틈이 정리해주는 것 외에는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놓고 하루 종일 눈 오는 것만 구경했다. 다만 하늘이 구름으로 가득해 기대했던 오로라는 보지 못하였다.

눈을 그냥 쌓아 놓는다

눈이 조금씩 잦아들고 중 술쟁이(ㅋㅋ) 내 친구는 맥주가 너무 마시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 대서 겨우 몸을 일으켜 슈퍼로 향했다. 우리가 자주 이용했던 마트는 nuuk pisiffik (주소는 Imaneq 1, Nuuk 3900). 북유럽에 대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알코올에 대해 정말 관대하지 않다는 점이다. 스웨덴 교환학생 시절 중 놀랐던 점은 일정 도수 이상의 주류는 정부에서 관리하는 술 상점에서만 살 수 있다는 것, 노르웨이도 비슷했다. 덴마크는 일반 마트에서도 주류를 구매할 수 있으나 특정 시간대에만 구입할 수 있고 그마저도 잘 안 보이게 가려놓는다. 그래서인지 누크에서 장을 보면서 제일 찾기 힘들었던 게 술 코너였다. 분명 있어야 하는데 보이지가 않으니 찾다 찾다 직원에게 문의하였고 검은 커튼으로 가려져있던 구석진 곳으로 우리를 안내해주었다. 그렇게 비밀스러운 공간에서 다양한 종류의 술을 한 병씩, 그리고 안주거리로 냉동 라자냐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솔직히 라자냐 너무 짰음

맥주들이 다 병맥주라 들고 오는데 상완이두근(ㅋㅋ) 운동이 따로 필요하지 않았는데 재활용이 꽤 되었는지 자세히 보면 세월의 흔적이 보였다. 과연 이 병은 몇 년에 걸쳐 몇 사람들을 취하게 만들었을지 쓸데없는 궁금증도 생겼다. 술 알못 나에게는 엄청 막 특별한 맛은 아니었지만 또 그린란드가 주는 특유의 분위기에 마시는 거 아니겠습니까. 나중에는 눈이 쌓인 곳에 맥주를 꽂아 감성 샷도 몇 장 남겨주었다. 이후 그린란드 여행이 끝날 때쯤 친구가 맥주병을 기념으로 가져갈 거라고 챙겼었는데 Kangerlussuaq 면세에서 판매되는 엄청 화려한 그린란드 맥주 세트를 발견하고 더 신나 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친구야 건강하자 우리.      


뭔가 본 것은 많은데 제대로 구현이 안된 B급 감성샷


멍 때리기 시간 외 고정 스케줄로는 유튜브 시청시간이 있었는데 정말 한국인으로서 용납할 수 없는 인터넷 속도였다. 유튜브마저도 형체만 보이는 144p 화질로 설정해야 끊이지 않고 영상을 볼 수가 있었다. 흐린 눈으로 보면 더 잘 보일까 아니면 자리를 옮기면 인터넷이 빨라질까 이리저리 노력을 참 많이 했는데 그다지 도움은 안되었던 걸로.     


이렇게 누크에서의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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