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진짜 아픈 것 같아

1. 불란서에서 불안장애와 같이 사는 이야기

by 내향손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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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글을 쓰고 몇 달이 지난 것 같다. 그때는 이맘때쯤이면 마음이 많이 좋아졌으리라고 생각했고, 불안도 줄어들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달라진 것은 없고 오히려 더 심해졌다. 불안과 스트레스에 집어 먹혀서 이제는 위염이 생겼고 그래서 아침에 배를 붙잡고 구르기도 한다. 오늘부터 명상을 다시 시작했는데 가만히 몸에 힘을 빼고 내 들숨과 날숨을 카운트하고 있으면 위의 통증이 찌르르 느껴진다. 그래서 오히려 더 집중이 잘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당시 나의 문제는 뭐였던가? 불안도가 높고 남들이 다 나를 쳐다보는 것만 같고(당연히 부정적이거나 평가적인 시선으로), 그리하여 나는 무방비 상태에서 수리검 같은 타인의 시선을 온몸으로 맞아내야만 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보니 수업을 들을 때 특히 고개를 돌리기가 어렵고 누가 이쪽을 갑작스레 쳐다보면 창피하게도 지진이 난 듯 고개가 자동으로 움직였다. 마치 자동차 앞 좌석에 많이 놓는 머리만 움직이는 인형처럼 말이다. 이 증상이 있은지 어언 6개월이 되었건만 달라진 것은 없다. 다만 문제가 있음을 많이 깨달았다. 나의 사고방식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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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책을 하는 게 유독 심했다. 자책할 만한 일을 두고 자책을 하면 뭐 그건 나름대로 쓸모가 있으련만 자책할 필요도 없는 걸 두고 애를 혼냈으니 애가 주눅이 드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이를테면 마트에 가서 싸가지 없는 직원과 마주했을 때 '이렇게 했어야지, 그럼 더 당당해 보였을 텐데. 내가 주눅 들어 보였으려나? 그럼 분한데'라고 생각했다. 싸가지 없음은 그의 잘못인데 왜 내가 나를 혼낸 건지 알 수가 없다. 나를 위해 물건을 찾아주려 노력한 고마운 직원에게는 '왜 더 고마움을 표현하고 웃어주지 않았지?'라고 하면서 또 자책을 했다. 놀라운 것은 이렇게 몇십 년을 살아놓고서는 이게 잘못된 줄을 몰랐다는 것이다. 부드럽고 나긋한 목소리로 '니가 하는 건 왜 이렇게 다 엉망이지? 너는 글러먹었구나'라고 하면 이게 칭찬이 되는가? 여전히 악담이고 비난인데 나는 내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에게 건네는 자책을 그냥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니 휴일에 일주일치 장을 보러 마트에 갔다 오면 왠지 불쾌하고 진이 빠지고 그랬는데 그것도 당연한 것이다. 아무 잘못도 안 하고 욕을 잔뜩 먹어오니 불쾌하고 기운이 빠질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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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안장애를 앓고 있는 것 같다. 아직 정신과 의사를 만나보지도 못했지만(아, 그를 만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관문이 지독히도 멀어 보인다) 나의 증상을 보면 그런 것만 같다. 의사들은 환자들이 내리는 자가진단을 지독히도 싫어하겠지만 뭐, 어쩔 수 없다. 싫어하라고 해라. 지금까지 내 인생에 별 의미도 없는 사람들에게 유능해 보이고 세련돼 보이고 성숙해 보이고 인격이 괜찮아 보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던가. 아유, 그냥 싫어하라고 하자. 지겹다. 매일 진이 빠져서는 해야 할 일을-나에게는 이것이 보통 과제, 복습, 시험 준비, 이력서 쓰기이다- 미루고 그러다 보면 '아, 이걸 내가 할 수 있을까? 이걸 못하면 좆될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면서 아침에 몸은 침대에서 뭉기적거리지만 심장은 벌렁벌렁 거린다. 정말로 심장이 어디 있는지 아주 잘 알 수 있게끔 강하게 움직이는데 정말 괴롭다. 그래도 6개월 전에는 이런 증상은 없었던 것 같은데. 그럼 더 심해졌다는 얘기군. 이렇게 신체적인 증상, 나의 경우에는 위염과 심장의 펄떡거림, 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아마 문제를 잘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냥 덮고 넘어가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글을 쓰면서 느끼는 건데 어쩌면 이것은 30대의 문턱을(한국나이로 하면 이미 30대에 입장했지만 아무튼.) 거의 목전에 두고 있는 사람에게 던져주는 인생의 숙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데 망상이다. 그냥 정신적으로 아픈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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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 나는 브런치를 내 불안증 치료를 위해 쓸 것이다. 나의 문제는 내 마음을 언어화하는 것에 서툴다는 것이다. 그래서 심리 상담가를 만나도 친구에게 문제를 얘기할래도 '나, 불안해' '뭐가 불안해?' '그냥 많은 일들이' 이 수준으로밖에 마음을 얘기하지 못하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하다고 하던데, 그리고 나도 그 부분에는 동의하는 바인데 표현을 할래도 감정과 문제를 제대로 언어화해 본 적이 없으니 말을 해야 하는 순간에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몇 주 전 학교 건강 센터에 정신과 의사 진료 예약을 잡고 싶다고 메일을 보냈는데 무슨 문제가 있냐고 묻고는 그 이후로는 답장이 없다. 아, 일처리를 끝까지 제대로 하지 못하는 직원을 욕하려다가도 '이것은 아직 정신과 의사에게 갈 준비가 안 됐거나 나에게 필요치 않다는 신의 계시인가?' 하는 남들이 들으면 개소리라고 할 만한 생각도 든다. 근데 사실 정신과 의사를 만나도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나는 누가 질문을 던지면 항상 빨리 대답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제대로 생각해보지 못하고 대충 답을 하는 버릇도 있다. 그리고 여기는 외국이고 내 프랑스어는 점점 거지 같아지고 있다. 점점 자신감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래서 일단 내 문제를 잔뜩 언어화해서 문제를 바라보고 남에게 상세히 설명할 정도가 되는 것이 나의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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