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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손톱 Sep 10. 2024

중증 향수병에 대한 고찰

05. 불란서에서도 갈팡질팡하는 이야기

1

향수병은 나와는 먼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곳에 처음 와서 지내는 1년 동안 향수병으로 앓아본 적도 없고, 내 주변 사람들이 한국이 그립다 어쩐다 할 때도 난 암시롱도 안 했기 때문이다. 2년 차에 접어들어서도 아무렇지 않다가 그 해 말에는 '어서 한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근데 그건 향수병이라기보다는 프랑스에서의 빡침 게이지가 임계치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집이 그리워서 운 적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향수병과는 거리가 먼 인간이라고 생각했건만 항상 이렇게 방심하는 순간 병은 까꿍 찾아온다.


2

나는 6월과 8월 사이에 두 달 동안 한국에서 방학을 보내고 왔다. 엄마 집에 얹혀살면서 엄마 카드를 쓰면서 말이다. 그 두 달 중 처음 한 두 주 정도는 되려 프랑스가 그리웠다. 내가 사는 도시의 아늑함과 단란함과 문을 잡아주는 사람들의 따스한 미소와 같은 것들이 떠올랐고, 혼자 지내던 원룸에서 정신 나간 사람처럼 춤을 추고 놀던 그 자유로움이 생각났다.

그 이후부터는 엄마와 함께, 가족과 함께 지내는 것이 좋았고(중간에 엄마의 사랑을 크게 느꼈던 계기가 있기도 했다) 한국을 떠나기 대략 한 달 전부터는 지나가는 시간이 아까웠지만 달리 방도는 없었다. 그러고 프랑스에 돌아왔고 나는 가끔, 아니 매일 눈물을 흘린다.

이것은 한국에 대한 그리움은 아니고,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후회, 아쉬움, 미안함 이런 것들이다. 지난날 엄마한테 못되게 굴었던 모든 것이 생각난다. 그리 불효자는 아니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다고 그렇게 싸가지 있는 자식도 아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지나가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 엄마와 함께 보내는 주말, 엄마와 도란도란 아무 의미 없이 나누는 대화를 누릴 기회를 놓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엄마는 건강하시고 이제 50대 후반이니 나이를 그렇게 많이 먹은 것도 아닌데 왜 자꾸 대단히 중요한 시간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나중에 통곡하며 후회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걸까? 심지어는 한국에서 일어난 사건 사고 뉴스를 보면서 엄마가 걱정되고 그런다는 것이다. 우리 엄마는 다치면 안 되는데, 하고. 다른 사람이 들으면 생각이 지나치게 과장되었다고 말할지도 모르는데 내가 봐도 그렇다. 그런 고로 이 증상을 향수'병'이라고 명명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본다.


3

눈물을 쏟아내고 난 다음 이성을 불러온다. 그리고 나와의 문답을 진행한다. 그래,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자. 만약 내가 이것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짐 싸고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모든 것이 좋아질까? 뭘 해야 할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할지 이런 고민들이 한 바가지 쏟아질 것이다. 한국에서 일을 하며 산다고 해도 다른 지역에서 살면 명절에 한두 번 집에 가는 꼴이 반복될 것이다, 전에 그랬듯이. 그럼 엄마와 같이 보내는 주말이며 도란도란 나누는 대화도 일 년에 단 두 번뿐이라는 것이다. 이 년마다 두 달씩 가서 지내는 것과 일 년에 명절마다 두 번 가는 거나 집에 자주 안 가는 건 매한가지고 도긴개긴이다. 집 근처 직장에 취업해서 엄마랑 같이 살면 행복하기만 할 것 같지? 혼자 시간을 보내지 못해서 스트레스받을지도 모르고, 직장 스트레스를 집에서 푸는 싸가지 없는 짓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감정적일 때는 표면적으로만 생각했던 부분을 이성적으로 파고들어 생각하니 거길 가도 마냥 좋지만은 않을 거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마치 남의 송편이 더 커 보여서 훔쳐왔는데 그 안에 깨소가 아니라 콩소가 들어있는 느낌.


4

향수병은 그럼 어떻게 치유하는가? 학계에 보고된 바가 뭔지는 모르지만 내 지론은 실컷 울고 실컷 그리워하는 거다. 한 차례 폭풍우가 지나가고 감정이 잠잠해질 때 할 일을 하고 또 폭풍우가 오면 할 일을 멈추고 울고 그리워하고 후회하고 그러다 보면 여름도 지나가고 장마도 지나가고 우기도 지나가고 괜찮아질 것이다. 물론 엄마한테 전화해서 보고 싶다고 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나는 원체 무뚝뚝한 딸이기에 그렇게 표현하는 것도 낯간지럽거니와 무엇보다도 엄마가 걱정할 게 뻔하다. 그러니 그냥 오늘도 방구석에서 눈물을 흘리고, 엄마와 카톡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ㅋㅋㅋㅋ'를 입력하는 순간에도 눈물을 흘리고 그러는 것이다. 해외살이 하는 모두가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이런 그리움을 안고 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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