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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손톱 Sep 06. 2024

유학생의 자금조달과
심해지는 쪼잔함에 대하여

04 불란서에서도 갈팡질팡하는 이야기

비행기에서 만난 한국인 아주머니께서 내가 프랑스에서 유학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시더니 "돈 많이 들어가겠네."라고 했다. 유학 비용이야 어느 국가, 어느 지역에서 유학을 하냐에 따라 천차만별이긴 하겠지만 대개는 꽤나 들어간다. 그렇지만 나의 경우에는 생각보다는 덜 들어간다. 

미국의 경우에는 한 해에 억 소리가 나기도 한다는데 프랑스의 경우에는 일단 학비가 싸서 미국보다 훨씬 약과이다. 다만 프랑스 학비가 싸다는 것도 나 같은 비유럽국가출신에게는 더 이상 해당하지 않는 말인데, 몇 해 전부터 많은 학교들이 비유럽국가출신 유학생의 학비를 어마무시하게 많이 올렸기 때문이다. 학사 기준 1년에 200만원이 넘는다. 내가 다니는 학교의 경우에는 그간 인상을 해오지 않다가 올해 신입생부터 올린다고 하니, 나는 참 운이 좋게 가까스로 피한 셈이다. 프랑스가 학비를 올렸다고 해도 우리나라 대학교의 학비 보다야 저렴하긴 하다만, 유학생의 입장에서 이 같은 인상은 야속하기 그지없다. 

주거 또한 큰 문제인데, 나는 파리에 살지 않고 지방에 살고 있어서 그나마 월세가 적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비싸게 느껴진다. 프랑스에서는 학생에게 월세보조금을 주는데 그걸 제하면 내가 순수하게 내는 돈은 55만원 정도 된다. 집 구하기가 한국만큼 쉽지 않기도 하고, 지금 사는 집이 깔끔하고 좋긴 해서 일단 계속 살고는 있지만 부담이 되긴 한다. 만약 파리에 살았다면 살인적인 집값을 내야 했을 것이다. 최근 파리의 주거 문제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법적으로 정한 최소 평수인 9제곱미터에도 못 미치는 방인데도 월세가 65만원이 넘는 집들이 나왔다. 그걸 보면서 분노와 더불어 내가 파리에 살지 않음에 안도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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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간호사로 일하며 번 돈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간호사로 일할 때는 쉬는 날마저도 푹 익은 파김치가 되어 만사가 다 귀찮았다. 백화점에 가서 쇼핑을 하는 것도, 인터넷 쇼핑을 하는 것도 귀찮았고 놀러 가는 것도 귀찮았다. 그것이 어떻게 보면 잘된 일이기도 한 것이, 그 덕분에 돈을 안 써서 돈이 차곡차곡 모였고, 그 돈으로 유학을 갈 수 있게 되었다.

1년은 놀고먹을 수 있었는데 그 이후에는 줄어드는 통장 잔고가 무섭기 시작했다. 주택 청약을 깰까 말까 고민을 하기도 했다. 더 이상 놀고먹을 수는 없어서 알바를 구한 덕분에 무섭게 새는 통장 틈을 막을 수 있었다.

학기가 시작한 뒤부터는 학생 식당에서 저녁타임에만 일하는데, 이 돈으로 겨우 월세를 내고 겨우 생활비로 쓴다. 가끔 쉬는 날이 많거나 중간에 짧은 방학이 있을 때는 월급이 적어서 내 통장에 있는 돈을 꺼내 쓴다.

그럼 쉬는 날 여행은 무슨 돈으로 가냐고? 안 간다. 물론 돈을 아끼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극도의 집순이로서 여행이고 뭐고 다 귀찮고 호텔 예약이고 뭐고 다 귀찮기 때문인 것이 더 크다. 그렇지만 계속해서 오르는 기차표 값이나 사악한 호텔숙박비가 돋아나려던 여행 입맛도 가시게 만들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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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아져가는 지갑이 야속한 것은 단순히 돈이 없다는 사실뿐만이 아니라 자꾸만 돈 쓰는 것에 인색해져 가기 때문이다. 실제로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아, 이렇게 돈을 많이 써도 되나? 너무 낭비 아닌가? 더 싼 것을 사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 때문에 소비를 해도 즐겁지가 않고 되려 죄책감 비스무리한 감정이 든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인터넷으로 로또를 산다,라고 하면 너무 일확천금을 바라는 사람 같은데 맞다. 난 일확천금의 꿈을 항상 놓지 않지만, 그와 동시에 로또에 당첨되지 않을 걸 알기 때문에 절대 오천 원어치를 사지 않는다. 삼천 원어치를 사고 최근에는 천 원어치만 산다. 돈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에 동의하는 바이지만, 확실히 돈은 사람의 마음에 여유를 주기는 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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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 방학 때 한국을 다녀왔다. 그동안 밀린 친구들과의 만남을 착실히 해나갔는데 그 와중에 돈에 대한 나의 강박이 느껴졌다. 7천원짜리 음료를 마시는 게 아깝게 느껴졌다. 친구들과 호텔에서 보낸 1박은 재미있었지만 그때 돈은 왠지 모를 죄책감을 유발했다. 이런 류의 돈을 두고 하는 전전긍긍과 쪼잔함은 돈을 쓰는 순간을 오롯이 즐기지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 문제이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집에서 tv를 보던 중에, 오늘도 출근해서 일하고 있을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자 부끄러웠다. 엄마는 한평생을 저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나는 미성년자도 아니고 심지어 대학도 졸업한 다 큰 성인인데 뭐 하는 거지? 나는 왜 내 시간을 아무런 생산성 없이 보내고 있는 거지? 그리고 그 뒤에 따라오는 죄책감.

직장에 다닐 때는 직장에 모든 에너지를 다 써버리는 삶, 쳇바퀴 같은 삶에 불만을 가지고 온전히 내가 쓰는 시간을 부러워하더니, 백수가 되어서는 생산성 없이 나만 좋자고 보내는 시간이 아깝고 게다가 죄스럽기까지 하다니.

매번 느끼는 거지만 나는 현재를 즐기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그렇게 따지면 직장에 다닐 때는 생산성 있게 돈을 벌며 보내는 자신에 긍지를 느끼면 될 것이고, 백수가 되어서는 모든 시간을 오롯이 자신에게 쓸 수 있는 현재와 유유자적 쉬는 삶을 즐기면 될 텐데 이것이 나에게는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사람이 꼭 생산성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노동을 하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다, 이런 말에 동의한다. 그렇지만 거의 20년 가까이 근속하는 엄마를 생각하면, 저런 말은 그저 죄책감을 덜려고 하는 자기 합리화 같아 보이고 내가 마치 엄마의 등골을 십수 년째 빨아먹으면서 답례는 하지 않는 거머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느냐? 극복 방법은 아직 모르겠다, 돈을 버는 것 말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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