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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문재 Jan 20. 2016

자본주의의 적(敵)

얀 피터르스존 쿤은 네덜란드의 ‘장보고’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동상을 세워 쿤을 기린다. 그는 해군력을 바탕으로해상 무역을 확대했다. 네덜란드는 무역에 힘입어 스페인 식민지에서 유럽의 강소국(强小國)으로 탈바꿈했다. 향료 무역은 네덜란드에 엄청난 부(富)를 안겨줬다. 


쿤은 향료 무역을 위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식민지를건설했다. 무역을 독점하기 위해 경쟁국은 물론 식민지 주민들을 무자비하게 다뤘다. 식민지 주민들이 저항하면 대량 학살로 대응했다. 부하들도 호전적으로행동하도록 독려했다. 영국 지휘관을 사살한 부하에게는 금덩어리를 아낌없이 내줬다. 


쿤은 인도네시아 총독으로 재직했다. 실질적으로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최고경영자(CEO)였다. 그는 아시아 향료 무역을 개척했다. 무역 확대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않았다. 신설 통합법인 동인도회사를 이끌기에는 최고의 적격자였다. 


1600년 전후 네덜란드에서는 주요 항구마다 동인도회사가 운영됐다. 향료무역을 위해서였다. 향료 무역은 전형적인 ‘고위험 고수익’ 사업이었다.위험 분산 및 자금 조달을 위해 동인도회사를 설립했다. 운항기간 동안에만 활동하는 유한책임회사였다.  


아시아와 유럽의 향료 가격은 100배 이상 차이가 났다. 반면 투자 위험도 높았다. 무역선단이 아시아로 출항하면 돌아오는 것은 절반에 불과했다. 1598년 22척의 선박이 암스테르담을 떠났지만 12척만 무사히 귀환했다. 

 

네덜란드는 1568년부터 80년간 스페인을 상대로 독립전쟁을 벌였다. 스페인을 대적하려면 덩치를키워야 했다. 그래서 네덜란드 의회는 기존 동인도회사들을 단일 법인으로 통합하자고 제안했다. 마침내 통합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가 1602년 출범했다. 


동인도회사는 자본주의와 주주 민주주의를 실천했다. 네덜란드 국민이라면 누구나 출자가 가능했다. 출자 상한선도 없었다. 상인과 장인(匠人)은 물론하인들도 주식을 사려고 몰려들었다. 네덜란드 의회는 지역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동인도회사 자본금을 6개 지역 의회에 고루 배분했다. 일종의 국민주(國民株)였다. 


동인도회사는 현대적인 지배구조를 갖췄다. 주주 권익 보호를 위해 견제 기능을 강화했다. 거액 투자자 가운데 70명의 감독관을 뽑은 후 이들이 ‘17인 위원회’ 구성원을 선출케했다. 17인 위원회는 이사회였다. 


대주주라도 동인도회사 경영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수 없었다. 암스테르담은 동인도회사 자본금의 57%를 출자했다. 하지만 17인 위원회 가운데 8명만암스테르담의 몫이었다. 지분은 과반수였지만의결권은 47%로 제한됐다.   

네덜란드는 동인도회사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고민을 거듭했다. 1622년 동인도회사 특별법을 통해 감독관의 임기를 종신에서 3년으로축소했다. 아울러 9인회를 만들어 17인 위원회와 주요 사항을 함께 결정토록 만들었다. 회계감사관도따로 임명해 회계장부 조사권을 부여했다. 


지배구조상 특정인의 독단적 운영이 불가능했다. 쿤은 17인 위원회에 자주 분통을 터뜨렸다. 쿤은 “17인 위원회가 아시아 현지 사정도 모르면서 발목을 잡는다”며불만을 표시했다.  


쿤은 무역 독점을 위해 영국과의 전쟁도 마다하지 않았다. 17인 위원회는 제동을 걸었다. 스페인과 전쟁을 치르면서 영국과도등을 돌리면 네덜란드처럼 작은 나라는 생존을 모색하기 어려웠다. 17인 위원회의 판단은 옳았다. 쿤은 전투에는 뛰어났다. 하지만 ‘전쟁도 정치’라는 진리는 깨닫지못했다. 동인도회사의 지배구조는 합리적 의사결정을 이끌었다. 


역사 발전에 대한 믿음은 흔들릴 때가 많다. 과거보다도 후진적인 행태나 제도 때문이다. 음악 서비스 ‘멜론’ 운영업체를 매각하는 과정에서 홍콩계 사모펀드는 1조2000억원 이상의 차익을 거뒀다. 반면 3년 전 출자 규제로 이 사모펀드에 자신의 지분을 넘겨야 했던대기업은 쓴웃음을 지었다. 


사전적 출자 규제는 재산권을 제약하고 침해한다. ‘참 나쁜’ 규제다. 그런데도철폐를 주장할 때마다 “세상 물정을 모른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출자를 통해 설립된 자회사가 소수지배주주(총수 일가)의 부당한 사익 추구 수단으로 악용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총수 일가는모기업의 출자를 통해 자회사에 대해 실제 소유권보다 훨씬 더 많은 의결권을 행사한다. 


총수의 내연녀가 집을 사고 파는 과정에 계열사가 동원되기도한다. 이런 상황이 되풀이되는 한 출자 규제를 주장하면 ‘재벌의주구(走狗)’로 지목될 수 밖에 없다. 21세기 한국에서는 대기업 소수지배주주가 자본주의의 발전을 위협하는 코미디가 벌어지고 있다.   


참고문헌 

1)   존 캠프너 지음. 김수안 옮김. 2015. 권력 위의 권력 슈퍼리치. 푸른숲

2)   니얼 퍼거슨 지음. 김선영 옮김. 2010. 금융의 지배. 민음사. 

3)   이상승 지음. 2015. 구글, 재벌, 경제민주화 : 1주1표의 시각에서. 공동체자유주의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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