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문재 Feb 15. 2016

빚쟁이 감옥

18세기 영국에선 돈 안 갚으면  

감옥에 집어 넣어 빚을 받아내 

형평성을 무시한 5억짜리노역

상식과 역사 발전 외면한 불의


자본은 인정에 끌리지 않는다. 냉혹한 계산만 번득인다. 그게 돈의 속성이다. 가치를 유지 또는 증식하기 위해 어떤 짓이라도 서슴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돈 때문에 피눈물을 흘린다. 약자일수록 더욱 그렇다. 


인간은 사회를 만들면서 돈을 빌리고, 빌려줬다. 고대 역사에서도 부채에 대한 얘기는 많이 나온다. 대차(貸借) 거래는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추심(推尋) 행위도 마찬가지다. 돈을 빌려줬지만 떼이는 일도 많다. 돈이 없어서 돌려줄 수 없을 때도 있다. 하지만 상당수는 여유가 있어도 갚지 않는다. 추심은 강압적 수단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채무노예(DebtPeon)는 대표적인 추심 수단이었다. 빚을 갚지 못하면 자신은 물론 아내와 자식까지 노예로전락했다. 로마시대 때는 차입자가 자신을 담보물로 제공했다. 


유럽에서는 기독교가 널리 퍼져나가자 채무노예가 점차 사라졌다. 하나님의 자식으로서 형제를 노예로 삼는 것을 죄악시했기 때문이다. 


대안을 마련했다. ‘빚쟁이 감옥(Debtors’ Prison)’이 등장했다. 강압적인 채권 추심 수단이었다. 빚을 갚지 않으면 채권자가 채무자를 감옥에 집어 넣었다. 영국이 빚쟁이 감옥을 주로 활용했다. 독일 등 다른 유럽국가들도감옥을 운영했다. 하지만 영국과 비교하면 양반 축에 속했다. 


다른 유럽국가들은 투옥 기간을 1년으로 제한했다. 영국은 달랐다. 재수가 없으면 무려 30년이나 감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특히 마셜시(Marshalsea), 플릿(Fleet), 클링크(Clink) 등이 악명을 떨쳤다. 영국의 작가 찰스 디킨스는 “마셜시가 없다면 이 세상도 그렇게까지 나쁜 곳은 아닐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영국의 빚쟁이 감옥은 민간기업이었다. 왕실에서 입찰을 통해 감옥 운영권을 팔았다. 돈벌이가 목적인 만큼 수감자에게 최대한 돈을 뜯어내려고 했다. 숙박비를 받았다. 집세라고 표현하기 민망했던지 ‘간수 수수료(Jailor’s Fee)’라고 이름을 붙였다. 돈을 받고 밥도 팔았다. 


채권 회수가 목적인 만큼 낮에는 외출을 허용했다. 밖에서 돈을 벌어야 빚도 갚고, 간수 수수료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돈벌이가 넉넉한 경우라야 가능했다. 숙박비와 식대를 치를 정도밖에 벌지 못하면 감옥생활은 연장될 수 밖에 없었다. 


가장이 감옥에 갇히면 가족도 똑 같은 신세를 면치 못했다. 감옥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경우도 많았다. 찰스 디킨스의 아버지는 40파운드의 빚을 갚지 못해 감옥에 들어갔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3명의 동생만 데리고 감옥에 들어갔다.


찰스만 밖에서 생활했다.그는 노동이 가능한 나이였다. 12살의 나이에 하루에 10시간씩 공장에서 일했다. 먹고 자는 것을 해결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아버지는 3개월만에 석방됐다. 찰스는 이 때의 경험을 ‘데이비드 코퍼필드(David Coperfield)’, ‘리틀 도릿(Little Dorrit) 등 자신의 작품에 담아냈다. 빚쟁이 감옥이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도 그의 소설 때문이다. 


찰스의 가족은 그나마 행복한 편에 속했다. 벌이가 시원치 못해 굶어 죽는 사람들도 수두룩했다. 1729년 영국의회 보고서에 따르면 마셜시에서는 300명의 수감자가 3개월만에 굶어 죽었고, 여름에는 하루 평균 8~10명이 죽어나갔다. 


감옥 생활은 불편해야 한다. 감옥에 가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그래야 범죄 억제 효과도 얻을수 있다. 징역은 교정(矯正)과 함께제재의 의미도 갖는다. 밖에서 생활하는 것과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낫다면 비정상이다. 불의와 혼탁을 부추길 수 밖에 없다. 


‘황제 노역(勞役)’ 판결이온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부실 기업주가 돈을 감춰놓고도 벌금형 대신 일당을 5억원으로 계산해 노역으로 대신하려 했다. ‘있는 자’에게 대한민국은 정말 좋은 나라다. 아낌없는 관용과 편의를 베푼다. 


하루 5억원짜리노역은 경제원칙에도 맞지 않는다. 같은 물건이나 서비스는 똑 같은 가격에 거래된다. 하지만 ‘일물일가(一物一價) 법칙’도 한국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연줄만 좋으면 똑 같은 일을 하고도 1만배 이상의 몸값을 받을 수 있다. 부자는 망해도 하루 임금으로 5억원을 쳐주지만 최저 임금 근로자는 하루(8시간 노동 기준)에 4만2,000원을 받을뿐이다. 


역사 발전을 믿을 수 없다. 18세기 영국의 빚쟁이 감옥에서도 귀족이나 부자는 창녀까지 불러들였다. ‘18세기의 영국’이나 ‘21세기의 한국’이나 다를 게 없다는 느낌이다.


참고문헌

1)   Graeber,David. 2011. Debt : The First 5,000 Years. New York : Melvillehouse. 

2)   Marshalsea-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3)   Debtors’Prison -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작가의 이전글 패거리 자본주의의 망령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