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이어지는 말초적 흥미
순식간에 로마 재정 고갈시켜
검투사 경기 같은 자동차경주
순식간에 나라 살림 들어먹어
인간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 의식주가 해결된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사는 재미를 느껴야 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흥밋거리를 추구한다. '놀이하는 인간(Homo Ludens)'이라는 말은 이런 특성을 적시한다.
정치인들은 똑똑하다. 절대로 이를 놓치지 않는다. 백성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볼 거리'를 찾는데 골몰한다. '빵과 서커스(bread and circus)'라는 표현도 그래서 등장했다. 포퓰리즘(popularism)에 대한 질타다. 진정한 공익은 외면한 채 대중에 영합한다는 비판을 담고 있다. 정치인과 민중을 향해 던지는 통렬한 풍자다.
서커스의 어원은 경기장이다. 고대 로마 시내에는 '키르쿠스 막시무스(Circus Maximus)'라는 경기장이 있었다. 말 그대로 풀이하면 '최대의 경기장'이라는 뜻이다. 지금은그저 터만 남아있다. 이곳에서 영화 '벤허'에서 등장하는 전차 경기가 열렸다. 같은 운동장이라도 중앙분리대가있으면 키르쿠스(Circus), 중앙분리대가 없으면 스타디움(Stadium)이라고 불렀다.
경기장 주변에는관중석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원로원과 기사계급에 한해 경기를 잘 볼 수 있도록 나무로 된 계단을 쌓았다. 하지만 이내 일반 시민들에게도 개방됐다. 돌이 아니라 나무로 계단을 만들었기 때문에 튼튼하지는 않았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관중석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나돌자 가장 불안해 보이는 자리에 앉아 경기를 관전했다. 그는 서커스를 가장 잘 활용한 통치자로 평가된다.
전차 경기 못지않게 인기를 끈 게 검투사들의 시합이다. 둘 다 흥미진진하지만 짜릿한 맛은 검투사 시합이 압권이다. 목숨이 오가기 때문이다. 관중들은 열광했다. 백성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좋은 이벤트였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찰나다. 어제 환담을 나눴던 이가 오늘은 망자(亡者)로 나를맞는다. 그게 인생이다. 검투사 시합은 원래 장례 의식의일부로 시작됐다. 지도층 인사들이 돌아가신 부모나 집안 어른에게 최대한의 경의를 표시하기 위해 검투사시합을 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시합은 대형화됐다. 규모가 클수록 환성도 높아졌다. 그저 시늉만 내면 "쪼잔하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3~4일에 걸쳐 수십 차례의 시합을 여는 게 일반화됐다. 시합을 열면서 시민들에게 음식까지 공짜로 제공하기도 했다.
검투사 시합은 이내 정치화됐다. 경기장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자연스레 민의가 형성된다. 이런 행사를 여는 것 자체가 지도자로서 민의를 경청하는 모습으로 받아들여졌다. 일부 지도층인사들은 아버지의 장례식을 공직 선거가 열릴 때까지 무기한 연기하기도 했다. 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이름을알리기 위해서였다.
카이사르도 검투사시합을 최대한 활용했다. 그는 엄청난 빚을 지고 있으면서도 한 번에 320 차례의 검투사 시합을 열기도 했다. 그는 시합 규모를 더 키우려고 했다. 하지만 원로원은 카이사르의 인기가 치솟는 것을 우려해 서둘러 시합 규모를 제한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양아버지 카이사르를 선생님으로 삼았다.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했다. 그는 검투사 시합 지출 규모를 법으로 제한했다. 이런 조치가 없었다면 상당수 로마 지도층 인사들은 파산을 피하기 어려웠다. 그 대신 국고로 검투사 시합을 지원했다. 황제가 최고의 스폰서로 자리잡았다.
티베리우스 황제는검투사 시합을 금지했지만 후임자 칼리굴라는 시민들에게 영합하기 위해 시합을 재개했다. 로마의 재정은바닥을 드러냈고, 칼리굴라도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
국제 자동차 경주대회포뮬러원(F1) 코리아 그랑프리 대회가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내년에는 열지 않고, 2015년부터 다시 개최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지금 상황대로라면 전남 영암에서는 더 이상 경주용 자동차들이 뿜어내는 굉음을 들을 수 없을 것 같다.
F1조직위(전라남도)는 FOM(포뮬러매니지먼트)에서 개최권료를 추가로 깎아주면 코리아 그랑프리 대회가 재개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개최국과의 형평성을 감안하면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F1 조직위의희망 사항일 뿐이다. 시장 가격이 100원인데 나에게는 80원에 줄 것이라고 억지를 쓰는 것과 마찬가지다.
F1 코리아 그랑프리대회는 빚만 잔뜩 남겼다. 보통 사람들은 지갑 사정에 맞춰 지출 규모를 결정한다. 하지만 정치인은 다르다. 신기루 같은 명성을 쫓는다. 밥 값은 걱정하지 않는다. 어차피 자신이 직접 밥값을 낼 생각이없기 때문이다.
밥값은 그런 차이를분간치 못한 보통 사람들의 몫이다. 남의 소를 잡아서 벌이는 잔치인 줄 알았는데 먹고 보니 내 소였다. 정치인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한 업보다. 질주하는 자동차를 보고 열광한 대가치고는 너무 비싸다.
참고문헌
1) 배은숙 지음. 로마 검투사의 일생. 2013. 글항아리.
2) 정태남 지음.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2013. 21세기북스
3) Gladiator-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