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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문재 Feb 15. 2016

부자를 위한 ‘사회주의’

환경 재해는 대표적 꼬리 위험

확률은 낮아도 피해는 끔직해 

재계의 화평법 무력화 시도는

이익의 사유화, 비용의사회화


편법은 치명적 유혹이다. 정도를 걷는 것보다 편리하다. 돈도 적게 든다. 마약중독처럼 떨쳐버리기 힘들다. 편법이 되풀이되는 과정에서 사고 조짐은 더욱 뚜렷해진다. 마약에 취한 탓에 이런 조짐은 애써 무시한다. 당연히 대형 사고가 일어난다.조직은 물론 사회 전체가 회복하기 힘든 피해를 입는다.   

 

사고 과정을 복기해보면 '하인리히 법칙', 다시 말해'1:29:300 법칙'을 확인할 수 있다. 보험회사직원인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는 노동재해를 분석한 결과, 중상자 1명이 생기기 앞서 같은 원인으로 29명의 경상자가 생겼고, 이런 경상자가 나타나기 전에 같은 원인으로 부상을 입을 뻔했던 잠재적 부상자가 300명에 달했다는 통계를 얻었다. 

 

토리 캐년(Torrey Canyon) 원유 유출 사고도 비슷했다. 사고 발생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을 완벽하게 갖췄다. 실수와 태만이 개별적으로 벌어지면 큰 재난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 문제점들이 한데 어우러지면 대형 사고를 낳는다.  

 

토리 캐년은 1967년 2월 원유를 가득 실은 채 쿠웨이트를 출발했다. 기항지인 카나리아 제도를 거쳐 영국의 웨일즈로 향하다가 3월 18일 암초와 부딪쳤다. 대형 어선단과의 충돌을 피하려고 뱃머리를 돌리다가 일어난 사고였다. 요리사가 조타수를 겸했다. 물길을 모르는 사람이 키를 잡았으니 사고가 나는 건 당연했다. 

 

사고 원인을 분석하는과정에서 새로운 비리가 드러났다. 사고 위험이 있는 데도 웨일즈로 향하는 지름길을 택했다. 운항 시간을 단축하고, 연료비를 아끼기 위해서였다. 

 

실수와 태만의 대가는가혹했다. 토리 캐년에서 무려 76만 배럴의 원유가 쏟아졌다. 영국, 프랑스, 스페인해안을 따라 수백 ㎞의 기름띠가 퍼져 나갔다. 사상 최악의 해상 원유 유출 사고였다.

 

영국 정부는 사고수습을 위해 거의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기름띠가 번져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난파선에 불을 질렀다. 폭격기를 동원해 1,000파운드짜리 폭탄을 42개나 떨어뜨렸다. 그 후 배 위에 항공유를 쏟아 부었다. 하지만 파도가 높아 불은 이내 꺼졌다. 

 

생태계는 돌이킬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 1만5,000마리의 새가 기름을 뒤집어쓴 채 죽어나갔다. 사고 해역은 물고기들의 공동 묘지로 전락했다.

 

토리 캐년은 긍정적결과도 가져왔다. 민법의 보완이다. 우선 과실에 대한 경제적책임이 강화됐다. 책임 한도를 기존의 선주(船主)책임제한협약의 2배로 끌어올렸다. 손해 배상을 담보하는 보험 가입을 의무화했다. 

 

'꼬리 위험(tail risk)'은 무섭다. 확률은 무시해도 좋을 정도로 낮다. 표준 편차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그러나 한 번 현실화되면 가공할만한파장을 불러일으킨다. 기존의 생각이나 상상력의 범위를 훌쩍 넘어선다.


 해상 유류 누출사고는 시간이 흐를수록 대형화했다. 아모코 카디즈호(1978년), 안토니오 그람시호(1979년),타니오호(1980년) 등 대형 유류 누출 사고가 터질 때마다 보상한도도 상향 조정됐다. 

 

지난 2007년 태안 앞바다에서 또 다시 상상력의 범위를 뛰어넘는 사고가 발생했다.이른바 '삼성-허베이 스피릿호 원유 유출 사고'다. 삼성중공업이 해상 크레인을 쇠줄로 묶어 옮기다가 쇠줄이 끊어지는바람에 유조선을 들이받는 사고를 일으켰다. 바다에 유출된 기름이 태안,서산, 보령 등 충청도 해안 일대를 초토화시켰을 뿐 아니라 제주도 추자도 해안까지 피해를가져왔다.    

 

막대한 피해가 발생해도손해 배상은 법에서 정한 한도를 넘어서지 않는다. 2008년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IOPC)에서 추정한 피해규모는 4,000억원을 웃도는 데 반해 최대보상한도는 3,000억원에 그쳤다. 나머지 비용은 정부에서 부담했다. '비용의 사회화'가 이뤄진 셈이다.

 

기업 이익을 대변하는경제단체를 중심으로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화평법)' 무력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국민 건강과 환경보호를 위해서는필요할 지 몰라도 사실상의 '기업 죽이기' 규제라는 주장이다.  


 '삼성-허베이 스피릿호' 사건에서 보듯 이익은 기업에 오롯이 귀속되지만 환경피해에따른 비용은 사회화되는 경우가 많다. 사회화된 비용은 불특정 다수의 국민들이 부담한다. 존 케네스 갈브레이스는 이런 현상을 '부자를 위한 사회주의'라고 비판했다. 

 

화평법에 문제가있다면 보완해야 한다. 하지만 그 보완책이 '비용의 사회화'를 가져온다면 곤란하다. 책임보험 강화, 강제부담금을 통한 기금 조성 등을 통해 잠재적 원인 제공자의 부담을 확대해야 한다. 자기의 밥값은 자신이 부담하는 게 정의다. 자신의 밥값을 남에게 전가하려는 것은 '도둑놈 심보'다. 


참고문헌

1)       신용승외. 2011. 해양 유류 유출사고의 중장기적 영향분석 및 제도개선방안.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2)        김민주. 2009. 하인리히법칙. 토네이도

3)        Torrey Canyon oil spill - Wikipedia, thefree encyclo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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