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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문재 Feb 16. 2016

가난한 이를 위한 교회

교황까지 빈부격차 해소를 강조

양극화가 이미 세계화됐다는 뜻

성장과 불균형 해소를 병행해야 

사회의 공동 번영도 실현 가능


서기 312년 10월 28일 두 명의 백인대장이 멜키아데(Miltiades)의 은신처로 들이닥쳤다.  그는 “마침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32대 교황으로서 묵묵히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초대 교황 베드로를 비롯해 그의 전임자 가운데 침대에서 선종(善終)을 맞은경우는 아주 드물었다. 대부분 원형경기장에서 맹수의 먹이가 되거나 참수형 또는 화형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성호를 그은 후 당당히 순교할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기도했다. 


밖으로 나가자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키가 훤칠하게 큰 지휘관 뒤에는 수백명의 로마 병사들이 밀집대형으로 도열해 있었다. 그저 힘없는 사제 한 명을 잡아들이기 위해 동원된 병사치고는 너무 많았다. 


지휘관의 얼굴에서는 적의(敵意)를 읽을 수 없었다. 그는 마치 반가운 친구를 만난 듯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였다. 미소를 띠는 것은 당연했다. 콘스탄티누스는 그날 아침 로마제국의 지배권을 놓고 정적 막센티우스와의 결전을 벌인 끝에 승리를 거머쥐었다.  


콘스탄티누스는 승리의 비결을 전투 직전 자신의 눈 앞에 나타난 ‘십자가’ 덕분이라고 믿었다. 그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하늘을 보니 십자가 밑에 “ 이 십자가 덕분에 너는 승리를 거두리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 병사들에게 하늘에 나타난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자 “예수쟁이들이 믿는 신(神)의 상징”이라고 답했다. 이 예언은 적중했다. 콘스탄티누스는 밀비우스 다리 앞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대승을 거뒀다. 


콘스탄티누스는 멜키아데를 포옹한 후 그의 어깨에 자주색 가운을 덮어줬다. 황제는  “초대 교황 베드로가 묻힌 곳이 어디냐”고 물었다. 멜키아데는 황제를 그곳으로 안내했다. 콘스탄티누스는 베드로의 무덤앞에 무릎을 꿇은 후 “이곳에 신전을 짓겠다”고 말했다. 


황제는 멜키아데에게 ‘최고제사장’이라는 호칭까지 선물로 줬다. 시저가 좋아했던 호칭이었다. 멜키아데는 기가 막혀 말도 나오지 않았다. 황제는 ‘신전과 교회’, ‘제사와 미사’조차 분간하지 못했다. 황제의 호의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황제는 멜키아데를 라테란 언덕의 큰 궁전으로 데려가더니 “앞으로 이곳이 당신과 당신의 후계자들이 거처할 장소”라고 선언했다. 콘스탄티누스는 로마 교외의 간돌포에 여름 별장까지 마련해줬다. 


그 때가 변곡점이었다. 박해를 피해 지하묘지를 전전하던 불순세력이 영적인 지도자로 격상됐다. 교황의 힘과 권위는 갈수록 높아졌다. 로마제국 말기의 레오1세는 “교황은 베드로의 후계자인 만큼 부도덕하거나 무능해도 상관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교회의 재산도 쑥쑥 불어났다. 로마 귀족들은 기독교도로 개종하면서 자신의 재산을 교회에 기부했다. 로마황제도 교회에 땅을 증여했다. 중세 이후 프랑스 등 다른 유럽 국가들의 귀족도 기부 대열에 가세했다.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 곳곳의 토지가 교회 재산으로 편입됐다. 


막대한 재산도 사치와 과시욕 앞에서는 ‘봄볕에 녹는 눈’과 마찬가지다. 메디치가문 출신의 레오10세는 사치로 교회 재산을 탕진한 후 면죄부 판매에 골몰했다. 가톨릭은 비판이 쏟아지자 자정 노력을 펼쳤다. 


가톨릭은 대체로 보수적이다. 변화를 수용하는 속도가 늦다. 그렇다고 변화를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1958년 비오 12세가 선종하자 추기경들은 진보적 성향의 요한 23세를 교황으로 선출했다. 1963년 요한 23세에 이어 교황에 즉위한 바오로 6세는 미국 CIA에 의해 ‘공산주의 동조자’로 평가될 정도였다. 바오로 6세는 “선진국의 부(富)가 후진국을 위해 쓰여져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가 파격적이다. 교황은 최근 브라질에서 “불평등을 방치하면 빈부격차를 키울 뿐”이라며 “가난에 맞서 싸우지 않는 사회에는 평화와 행복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신도 이탈 현상을 ‘엑소더스(Exodus)’로 표현하며 자기 비판을 잊지 않았다. 


교황이 불평등 해소를 촉구할 정도로 빈부격차 및 양극화는 세계화됐다. 불평등은 불안정을 촉진하고, 불안정은 다시 불평등을부추긴다. 판을 깨트리지 않으려면 불평등을 시정하려는 노력이 끊임없이 이뤄져야 한다. 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노력과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시도는 양립될 수 없는 과제가 아니다. 두 가지가 균형을 이뤄야 사회는 공동의 번영을 향해 날개를 펼칠 수 있다. 


참고문헌

1)   Williams,Paul. 2003. The Vatican Exposed. New York: Prometheus Books. 

2)   조지프 스티글리츠 지음. 이순희 옮김. 2013. 불평등의 대가. 열린책들. 

3)   Constantinethe Great -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4)   PopeMiltiades -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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