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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문재 Feb 16. 2016

미국 앞에서 작아지는 외교부

17세기 도입된 베스트팔렌 원리

주권의 동등성 규정한 국제규범

주권 국가로 제 목소리 내는 게

한미동맹의 발전을 위해 필수적


러시아는 16세기부터태평양을 향해 서서히 영토를 확장했다. ‘그레이트 게임(GreatGame)’의 경쟁 상대가 동북아시아에서는 영국 대신 중국이었다. 청(淸)나라와의 충돌은 불가피했다. 청(淸)은 조선군까지 동원해 러시아를 저지하려고 애썼다. 양쪽은 일진일퇴를 거듭했지만 내정(內政) 문제로 강화(講和)를 모색했다.  


청(淸)과 러시아는 1689년 8월 12일 네르친스크 조약을 체결했다. 고르비차강 발원지에서 스타노보이 산맥이 바다에 이르는 선을 경계로 남쪽은 청나라, 북쪽은 러시아의 영토로 인정하기로 했다. 


조약 정본은 라틴어로 작성했고, 부본을 1통씩 만주어와 러시아어로 만들었다. 협상 과정에서 한족(漢族)은 철저히 배제됐다. 만주족으로만 협상 대표단을 구성했다. 중원(中原)의 백성들은 조약 내용을 알 길이 없었다. 


한족을 다스리기 위한 심모원려(深謀遠慮)였다. 지배 이데올로기는 “이 세상 모든 땅은 황제의 소유”라고 가르쳤다. 오랑캐는 그저 조공이나 바치는 ‘아랫것들’일 뿐이다. ‘대등한 입장에서 조약을 맺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조약 체결은 ‘황제와 오랑캐의 수장이 동급(同級)’이라는 함의를 갖는다. 만주족을 쫓아내고 한족의 나라를 다시 세우자는 ‘멸만흥한(滅滿興漢)’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조약 내용이 백성들에게 알려지면 황제의 권위는 땅에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통치권에 도전하려는 움직임을 촉발할 것이라는 우려가 엄습했다.  


청(淸)은 인정하기 힘들었지만 베스트팔렌 조약의 정신이 이미 새로운 국제질서로 자리잡은 뒤였다. 유럽은 구교와 신교간의 처절한 전쟁을 거치면서 종교적 증오에서 비롯된 대량 살육을 막기 위한 시스템을 고민했다. 그 결과가 바로 1648년 수립된 베스트팔렌 평화 체제다. 


베스트팔렌조약 체결과 함께 신성로마제국은 사실상 붕괴됐다. 황제도 유명무실해졌다. 그 대신 고만고만한 제후들이 황제나 다름없는 권력을 쥐게 됐다. 베스트팔렌 조약의 주요 원리 가운데 하나는 ‘왕은 자신의 영토 내에서는 황제’라는 것이다. 제후들도 자신의 영토에서는 절대적인 주권을 행사하는 동시에 외교권과 조약 체결권을 확보했다. 작은 도시국가도 스페인같은 대국과 얼마든지 대등한 입장에서 조약을 체결할 수 있다는 뜻이다. 


네르친스크 조약은 베스트팔렌 원리가 이미 글로벌 스탠다드로자리잡았다는 의미를 갖는다. 중국은 네스친스크 조약을 체결한 후에도 이런 스탠다드에 저항했지만 대세를 돌이키지는 못했다. 조선이 1882년 미국과 조미수호통상조약(朝美修好通商條約)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청(淸)은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주장했다. 미국은 베스트팔렌 원리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청(淸)의 주장을 일축했다.  


지금은 베스트팔렌 원리를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유럽의 소국 리히텐슈타인의 인구는 3만 명에 불과하다. 미국에서 가장 작은 ‘로드 아일랜드’조차 인구가 100만명을 웃돈다. 하지만 리히텐슈타인은 ‘로드 아일랜드’가 아니라 미국과 동등한 입장에서 조약을 체결할 수 있다. 이게 현대 국가의 주권 원리다. 


미국이 우방국가들의 재미 대사관에 대한 무차별적인 도청으로 물의를 빚고 있다. 미국의 전방위 도청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아예 대사관을 개축할 때 벽돌을 비롯한 건자재에 도청 장치를 미리 심어놓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사관 건물 자체를 도청장치로 도배할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미국 정부는 도청에 대해 사과는커녕 궁색한 변명으로 일관하고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다른 나라도 의사 결정을 돕기 위해도청에 의존한다”며 물타기를 시도하기도 했다. 


유럽연합을 비롯한 주요국들은 미국의 태도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당연한 반응이다. ‘부도덕성’이나 ‘불법성’을 따지기앞서 대사관은 그 나라의 영토다. 이 영토에 도청 장치를 심어놓고24시간 감시했다면 명백하고, 노골적인 주권 침해다.


다른 나라의 항의 수위와 비교하면 우리 외교부의 태도는지나칠 정도로 미온적이다. 고작 나온 반응이라는 게 “사실관계를 파악중”이라는 설명이다. 이런 조심스런 모습이 한미동맹 때문이라면 더 큰 문제다. 동맹은 상호 신뢰를 전제로 유지, 발전될수 있다. 대등한 관계가 아니라고 평가되면 동맹에 대한 국민적 지지도 확보키 어렵다. 북한에서 ‘자주성 부족’을 운운해도 제대로 반박하기도 힘들다.  


외교부의 소극적 대응은 반미(反美)여론을 확산시킬 수도 있다. 그래서 외교부에 묻고 싶다. “왜 미국 앞에만 서면 그렇게 작아지느냐?”고….


1)   김명섭. 2013. 한국(韓國)의 분립(分立)과 6.25전쟁의 지정학.한국미래학회 제3회 德山미래강좌. 

2)   Treatyof Nerchinsk –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3)   Peaceof Westphalia -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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