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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문재 Feb 16. 2016

죽은 참모의 시대

원전의 안전 규제와 진흥은 

분리해야 안전성 제고 가능

대통령의 원전 관리 지시에 

재고 건의 없으면 직무유기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Domitiam)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엇갈렸다. 일반 백성과 군인들은 그를 뛰어난 군주라고 칭송했다. 반면 원로원 의원을 비롯한 귀족은 달랐다. 이들은 황제에게 노골적인 적대감을 표시했다.


나름대로 이유는 충분했다. 도미티아누스는 서기 81년 즉위한 후 96년 암살될 때까지 16년간 로마를 다스렸다. 화폐 개혁 등을 통해 경제 부흥을 이끌었고, 이민족과의 전쟁을 불사하며 영토를 확장했다. 로마 재건을 위해 대대적인 건설 공사도 추진했다. 백성들은 그에게 박수 갈채를 보냈다. 


백성들의 환호에 취했던 것일까? 그의 통치는 과속으로 치달았다.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와 다름 없는성군(聖君)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했다. 자부심은 어느새 개인 숭배로 전이됐다. 자신을 ‘주인님이자 하느님(dominus et dues)’이라고 부르도록 강요했다. 


귀족들은 모멸감에 치를 떨었다. 로마가 BC 21년 아우구스투스의 황제 즉위와 함께 제정으로 바뀌었지만 아직은 공화정에 대한 향수가 남아 있을 때였다. 100년간의 제정 기간 동안 어느 황제도 감히 자신을‘주인님’이라고 부르도록 요구하지는 못했다. 


귀족들은 숨이 막힐 것 같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도미티아누스가 살아있을 때는 평화조차 잔인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귀족들은 때를 기다렸다. ‘주인님’이 드디어 암살로 생을 마감하자 일제히 칼을 빼 들었다.   


원로원은 도미티아누스에게 ‘기록말살형(刑)’을 선고했다. 그와 관련된 기록은 모두 삭제됐다. 도미티아누스의 얼굴이 그려진동전은 하나도 남김없이 녹여버렸다. 그의 자취는 깨끗이 지워졌다. 


귀족들의 매질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상당수가 온갖 기록을 통해 황제를 ‘잔인하고 피해망상증에 걸린 폭군’이라고 묘사했다. 전형적인 부관참시(剖棺斬屍)였다. 귀족들의 용렬(庸劣)함이 적나라하게드러났다. 


로마 최고의 역사가 코르넬리우스 타키투스도 용렬한 귀족의 대열에 가세했다. 타키투스는 뛰어난 문장가이자 연설가였다. 그는‘연대기’, ‘역사’ 등을 통해 정치 권력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을 뽐냈다. 그의 간결한 문장과 치밀한 구성은 많은 동료 작가들을 절망하게 만들었다. 아무리 뛰어난 작가도 타키투스와 비교하면 ‘제갈량앞의 주유’였다. 


그의 장점은 여기까지였다. 그는 도미티아누스가 살아 있을 때는 충성을 바쳤다. 황제에게 ‘침묵’을 헌정한 대가로 출세가도를 달렸다. 타키투스는 라틴어로 ‘침묵’이라는뜻이다. 타키투스는 적어도 도미티아누스 치세에는 명실상부한 삶을 살았던 셈이다.  


타키투스는 ‘역사’를 저술하면서 자괴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도미티아누스 시절 원로원의 노예 신세를 통렬히 비꼬면서 자신의 자긍심에도 침을 뱉어야 했다. 


타키투스의 용렬함은 언제 어디에서라도 재현된다. 21세기 대한민국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잘못이라는 것을 알면서도자리를 지키려고 입을 닫는 경우가 많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산업통상자원부를 중심으로 원자력발전안전 관리 체계를 재정비하도록 지시했다. 상당수 원전 전문가들은 대통령의 지시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원전 진흥에 초점을 맞춘 부처다. 따라서 안전 규제가 진흥보다 뒷전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  


안전 규제와 진흥 기능은 따로 떼어놓는 게 원칙이다. 원전 비리가 불거진 것도 안전 규제와 진흥 분리가 그저 ‘말뿐인 분리’, ‘형식적인 분리’에 그쳤기 때문이다. 오히려 진흥 쪽에 무게가 실린 ‘샴 쌍둥이’나 다름 없었기 때문에 구조적인 원전 비리가 발생했다는 지적이 많다. 


부산을 비롯한 원전 인근 지역에서는 ‘원전 안전성 문제’에 대해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만약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고라도 나면 민심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의 지시는 재고돼야 한다. 지금은 진흥보다는 안전 규제에 방점을 찍어야 할 때다. 밀양 송전탑건설공사를 둘러싼 갈등에서 보듯 국민적 신뢰와 지지를 확보하지 못하면 에너지 정책은 표류할 수 밖에 없다. 


과문한 탓인지 “공무원들이 대통령에게 지시를 재고해야 한다”고 건의했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없다. 이런 건의가 없었다면 대통령의 참모는 있으나 마나한 존재다. 타키투스처럼 그저 침묵만을 헌정하고 있는 꼴이다. 우리는 지금 ‘죽은 참모의 시대’, ‘죽은 참모의 사회’에 살고 있는 셈이다. 


참고문헌 

1)    크리스토퍼 B. 크레브스 지음. 이시은 옮김.2012. 가장 위험한 책. 민음인.

2)    Domitian-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3)    Tacitus-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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