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영주 멋대로 통행료 뜯어
백성의 거센 반발로 몰락 자초
시험 검사 기관 도덕성 외면해
원전 마피아에 대한 비난 고조
권력이 진공상태에 빠지면 백성들의 삶은 더욱 고단해진다. 권력이 제 역할을 못할 때도 마찬가지다. 질서와 안정이 사라지면 폭력과 불합리가 기승을 떤다. 희생은 고스란히 약자(弱者)의 몫이다. 강자(强者)는 오히려 자신의 이익을 확대한다.
콘라드 4세가 1254년 죽음을 맞자 독일(신성로마제국)은 왕이 없는 ‘대공위(大空位) 시대’로 들어갔다. 콘월의 리차드와 카스틸의 알폰소 10세가 왕위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제후들도 두 개 진영으로 나뉘어 줄다리기에 가세했다. 제후들이 1273년 합스부르크가(家)의 루돌프를 왕으로 추대하자 혼돈의 시대도 비로소 막을 내렸다.
혼돈의 시대를 맞으면 백성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진다. 지방의 영주들 가운데 상당수가 터무니없는 폭정을 저질렀다. 특히 상인들의 고초가 심했다. 과도한 통행료 부담을 져야 했다.
신성로마제국은 라인강을 오가는 화물선을 대상으로 통행료를징수했다. 라인강에 쇠사슬을 가로지른 후 통행료를 내는 배만 통과시켰다. 세금에 비해 백성들의 저항이 적기 때문에 영주들로서는 매력적인 재정 수입이었다.
중앙권력이 영주들을 제대로 통제할 때는 통행료가 큰 부담이아니었다. 합리적인 수준에서 통행료를 결정했고, 표준화된 징수 시스템도 적용했다. 통행료는 주로 은화(銀貨)로 받았지만 현물 납부도 가능했다. 어디에서든 똑 같은 금액을 부담했다. 통행료 징수 장소 사이의 거리도 최소한 5km 이상 떨어지도록 했다.
일부 영주들은 미꾸라지처럼 행동했다. 왕의 허락도 받지 않고 통행료 징수 장소를 추가로 설치하거나, 정해진금액 이상의 통행료를 요구했다.
대공위 시대로 들어가면서 강력한 중앙권력이 사라지자 영주들의 전횡은 기승을 부렸다. 라인강 연안 곳곳에 통행료 징수 장소가 새로이 들어섰다. 통행료도 터무니 없는 수준으로 치솟았다.
통행료만 요구하면 양반 축에 속했다. 화물과 배를 통째로 빼앗거나 상인들을 억류한 채 몸값을 내라고 강요하기도 했다. 말을 듣지 않으면 고문을 감수해야 했다. 백성들의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말이 영주지 노상 강도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이들을‘강도 귀족(Robber Baron)’이라고 불렀다.
사회 불안이 심화되자 마인츠 등 라인강 유역의 4개 도시는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라인도시동맹을 결성했다. 강도 귀족의횡포가 워낙 심했던 탓에 쾰른 등 라인 지방의 거의 모든 도시들이 속속 동맹에 합류했다.
라인도시동맹은 강도 귀족에 대한 토벌작전을 개시했다. 강도 귀족이 세운 성(城)은 허물어뜨리거나 불태웠다. 이들에게 붙잡혀있던 상인들은 풀어줬다. 왕위에 오른 합스부르크(家)의 루돌프도 강도 귀족을 엄단했다.
‘강도 귀족’이라는 말은 대공황 때 다시 등장했다. 미국의 정치경제 평론가 매튜 조셉슨은 록펠러를 비롯한 독점 기업인들을 비판하면서 이 용어를 사용했다. 이들은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을 최대한 활용해 독점을 추구하는 동시에 노동자들에게는 터무니 없이 적은 임금을 지급했다. 사실상 라인강 유역의 강도 귀족과 다를 바가 없었다.
원자력 발전소 관련 비리를 보면 강도 귀족이 한국에도 등장했다는 생각이 든다. 원전 부품을 시험조차 하지 않고도 “사용해도괜찮다”는 내용의 시험성적서를 발행했다. 검사료를 받고도시험을 하지 않았으니 명백한 사기 행위다.
시험검사기관은 제품의 품질과 안전성을 담보하기 위한 기구다. 제조업체는 최고경영자 직속으로 품질보증부서를 설치, 운영한다. 제품을 직접 생산하는 부서와 독립적으로 운영돼야 품질을 제대로 보증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공공 안전에 큰 영향을 주는 제품이나 부품의 경우 이것으로도 부족하기 때문에 외부 시험검사기관의 검증을 의무화한다.
원전 관련 부품은 불량품이 사용될 경우 끔찍한 사고를가져올 수 있다. 눈곱만큼이라도 품질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불합격’ 판정을 내려야 한다. 따라서 시험검사기관은 고도의 전문성과 함께도덕성을 갖춰야 한다.
전문가들을 존중하는 것은 이들이 우리 사회를 유지하는 보루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로 자처하면서 전문성도 부족하고, 도덕성도 없다면 사기꾼이나 마찬가지다. 더욱이 국민들은 무시무시한 사고 위험에 노출시켜놓고 제 이익만 챙겼다. 국내 원자력 산업을 좌우하는 ‘원전 마피아’는 중세의 강도 귀족과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참고문헌
1) Interregnu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2) RobberBaron -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