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니, 우리 딸
텍사스의 작은 해안 도시, 갤버스턴.
주정부 바이러스 실험실은 오후 2시 32분에도 고요했다. 에어컨이 돌아가는 낮은 웅웅 거림만 들렸다. 나는 세포를 다루는 기계를 보고 있었다. 기계를 고치는 일이 내 일이다.
그때 핸드폰이 진동했다. 아내에게서 온 문자였다.
“일하는 줄 알지만, 잠깐 통화 가능해?”
오늘은 딸아이의 심리 상담이 있는 날이었다. “나중에”라고 대답하기엔 마음이 여의치 않았다. 나는 실험실 밖으로 나왔다. 복도는 더 고요했다.
“응.”
내 대답에 아내는 낮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려줘야 할 것 같아서.”
그 한마디에 수많은 생각이 스쳤다. 시간을 다투는 일인가, 단순한 상황 보고인가, 아니면…
우리가 상상하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인가.
아내는 딸아이가 오늘 상담사와 한 시간 동안 면담했다고 전했다. 상담사는 한 가지 결정을 요청했다고 했다.
“당신의 남편에게도 꼭 이야기해 주세요.”
아홉 살 때 아팠던 아이가 올해로 열두 살이 됐다. 벌써 4년째다.
가끔은 세상이 너무 야속하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에게라도 털어놓고 싶지만, 결국 나 자신에게만 중얼거리게 된다.
머릿속으로 엉뚱한 상상도 해봤다.
“그냥 아이와 산으로 가서 지낼까?”
사람들은 자연이 사람을 치유한다고 말하지 않는가.
하지만 인간이 만든 약을, 그것도 심리에 관여하는 약을 어린아이의 몸에 넣는 건… 타이레놀 한 알과는 다른 문제 같았다.
복도 끝에서 누군가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전화를 끊고 실험실로 돌아갔다.
출장을 마치고 휴스턴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던 오후였다. 우리는 다시 3자 통화를 했다. 상담사, 아내, 그리고 나.
공항 구석 의자에 앉아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나는 조용히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사람은 급히 뛰어가고, 어떤 사람은 느릿느릿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상담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딸아이의 현재 심리 상태와 필요한 대책들에 대한 설명이었다. 마지막에 상담사가 말했다.
“부모님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결국 서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건 단순한 동의서가 아니었다. 아빠로서 현실을 인정하는 서명이었다.
출장에서 돌아오면 달려와 안기던,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신나게 들려주던 그 모습만이 내 딸아이였다. 그래서 아프다는 단어를 내 입으로 인정하는 게 이렇게 어려웠다.
50이 넘은 아빠로서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이것 또한 지나갈 거야.”
시간은 우리를 실망시키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작은 희망을 함께 가져다주었다. 어디가 종착역이든, 나는 그 아이와 함께 걸어갈 것이다. 서명은 그렇게 끝났다.
공항의 사람들은 여전히 바쁘게 오가고 있었고, 나는 잠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휴스턴의 하늘은 넓었다.
오늘의 이 선택이 언젠가 희망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면서, 나는 탑승구로 걸어갔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TK
PS: 한국어와 영어, 두 언어로 부르는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 어떤 목소리가 들리시나요?
https://open.spotify.com/album/2FNn5Kt3DquC7LLrB417UC?si=v4k6SNCWTn2SZt4no2mn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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