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오래된 수첩을 꺼냈다.
아마 출장을 다니며 이것저것 생각나는 대로, 느낌이 느껴지는 대로 적어보았던 수첩이었다. 꺼내어 본 지가 한참이라 표지가 조금 바래 있었다. 펼쳐보니 예전에 적어둔 문장들이 나왔다. 대부분은 볼 때마다 쑥스러운, '그때 나는 왜 이렇게 썼을까' 싶은 것들이었다.
그중 한 페이지에 이런 질문이 있었다.
"만약 내 기억이 전부 사라진다면, 나는 누가 될까?"
기억이 사라진 나.
좋아하던 음식도, 미워하던 사람도, 두려워하던 일도 모두 잊은 채, 그 순간의 공기와 냄새만을 느끼며 사는 나. 상상만으로도 묘하게 불안하다.
우리는 기억을 통해 자신을 설명하고, 과거의 패턴으로 자신을 정의한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나는 그런 건 못해." 마치 오래된 옷처럼 익숙하고 편하지만, 가끔은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나를 불편하게 하기도 한다.
기억은 우리의 보호자이기도 하다. 두 번 실패하면 세 번째는 하지 말라고 알려준다. 한 번 크게 다치면, 그 운동은 다시 하지 말라고 말해준다. 그 덕에 우리는 안전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가능성이 줄어들어 우리의 모습이 작아지기도 한다.
이게 바로 기억의 이중성이다.
기억은 삶을 잘 헤쳐 나갈 수 있게 도와주는 잘 그려진 지도가 될 때도 있지만, 동시에 우리를 한 자리에 묶어두는 쇠사슬이기도 하다. 마치 어린 코끼리의 발목에 채워진 사슬을 성인이 되어도 끊지 못하는 것처럼.
어린 코끼리는 작은 말뚝에 묶여 있다. 힘이 약해서 빠져나올 수 없다. 그런데 어른이 된 코끼리도 여전히 그 말뚝에 묶여 있다. 이제는 충분히 끊을 수 있는 힘이 있는데도, 기억이 말한다. "너는 빠져나올 수 없어."
우리도 그런 건 아닐까?
그날 수첩을 덮으면서 생각했다.
그냥 기억에 오롯이 의존하며 안전하게만 살 것인가, 아니면 사슬을 끊고 새로운 길로 갈 것인가. 어쩌면 가끔은 기억을 잠시 내려놓는 연습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내가 이민을 온 것처럼, 마치 낯선 도시에서 지도 없이 길을 걸어보는 것처럼.
방향을 잃고, 조금 두려워하다가, 전혀 몰랐던 길모퉁이에서 새 풍경을 만나는 것처럼.
기억을 버리라는 게 아니다.
다만, 기억이 우리에게 속삭이는 모든 제한을 진실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너는 안 돼", "너는 못해", "너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라는 목소리에 매번 고개를 끄덕일 필요는 없다.
가끔은 기억 없는 사람처럼 살아보자. 과거의 실패가 오늘의 시도를 막지 못하게. 어제의 두려움이 내일의 가능성을 가리지 못하게. 기억은 나를 정의하는 전부가 아니다. 단지 참고사항일 뿐이다.
그리고 어쩌면, 진짜 '나'는 기억 너머에 있는 건지도 모른다.
T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