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K Mar 16. 2023

캐나다에서 일 찾기

캐나다에서 일한 경험이 없어 고용을 할 수가 없다고?

캐나다에 정착하여 일(아르바이트가 아닌 정규직/계약직)을 구해본 경험이 있는 분이라면 HR(한국의 인사과)로 부터 이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들었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자격은 충분하나 캐나다에서 일한 경험이 없어 고용을 할 수가 없습니다. 다음 기회에 뵙겠습니다." 그러면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아니 일을 줘야 경험을 쌓지...", 도대체 다른 이민자들은 어떻게 일을 찾는 거지? 유학생 신분으로 일을 구해서 이민까지 가능하긴 한건가? 답도 없는 질문만을 계속해서 할 뿐이다.


아는 사람이나 에이전트를 통하지 않고 캐나다 회사에 정규직으로 고용되어 스폰서를 통해 워킹비자를 받는다?? 최소 내 주변엔 그걸 해 냈다는 사람은 없다. 고용을 시켜줄 아는 사람은 당연히 없다. 에이전트도 "캐나다 경험이 없다는" 같은 이야기만 할 뿐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또 4년제 대학을 간다는 건 불가능이다. 돈과 시간이 넘치면 모를까. 그렇다고 지난 고생을 버리고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더더욱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능하게 해야만 했다. 20여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나 지금에 와서야 느끼는 것이지만 유학생으로 와서 회사 스폰서를 받아 워킹비자를 받고, 그리고 영주권에서 시민권까지. 긴 시간이 걸렸지만 충분히 값지고 많은 경험을 내어준 시간이었다.




한국의 4년 대학 졸업장만을 가지고 캐나다에서 정규직을 구한다는 것은 너무나 힘들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가끔 들리는,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 중 의사 면허를 가지고도 커피숍에서 일하고 건물 청소 일을 한다는 이야기에 현실을 더욱더 실감하게 된다. 약간의 돈이 들겠지만 빠른 시간 내에 살아남을 방법은 기술을 익히는 전문대라는 생각에 입학과 졸업을 하게 된다. 졸업 후 나오는 단기 워킹비자로 같은 과를 졸업한 친구의 소개를 통해 공장 자동화 제품을 공급하는 회사에 기술지원으로 고용이 된다. 이제 내 인생도 이야기로만 듣던 성공한 이민자의 첫걸음을 딛게 되는구나 하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와이프랑 코스코에서 연어를 사서 회를 만들고 와인도 한잔한다. 없는 돈에도 불구하고 어찌어찌해서 500불이라는 거금을 마련해 출퇴근용으로 10년 된 중고차도 하나 구입한다. 1992년산 닷지에서 나온 콜트라는 모델이다. 6개월을 다니다 잘린다. 꿈은 창대했으나 현실은 역시 냉정하다. 영어로 기술지원을 하고 판매를 하는 일에 나의 영어는 딱 6개월 짜리다. 영어라는 언어는 계속해서 장애물이 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또 한 번 하게 된다.


그 이후 살아야겠기에, 한국 슈퍼마켓에서 냉동 창고 정리 일을 시작하게 된다. 적지만 고정수입이 생긴다. 그리고 마켓 동료들과 술도 가끔 마시게 된다. 뭐랄까, 처음에 캐나다를 오면서 품었던 꿈같은 열정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외국에서 이래라도 먹고 살면 되지않을까'라는 안일한 마음만이 커져간다. 꽤 오랜 기간 일을 하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부모님과 생이별을 하고 캐나다까지 와서 이건 아니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일단은 영어가 주 언어인 회사에서 일을 하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력서에 쓸 캐나다 회사에서의 경험을 쌓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다. 방법은 일용직... 에이전시에 문을 다시 두드리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12시간 일용직이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일이다. 플라스틱 부품 조립 공장에 야간 근무를 가거나 아니면 자동차 부품 제조회사 공장에 가서 일하는 것이 에이전시에서 구할 수 있는 일들이다. 이러한 일들 마저도 에이전시에 가서 인터뷰와 적성검사를 보고 통과를 해야 한다. 이마저도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도 자주 생긴다. 계속되는 실망스러운 날에 어렵게 다시 켰던 불씨가 사라져 가는 것을 느낀다. 한국의 4년제 대학 졸업장, 여기선 그냥 자존심과 함께 쓰레기통에 버리고 시작하는 것이 그나마 덜 비참하다. 일용직을 하면서도 장담컨대 이력서를 아마 수백 통이 넘게 보냈다. 학교 버스운전, 토론토시가 운영하는 버스나 지하철 정비공이나 운전사, 공장의 기술직 등등, 유창한 영어가 필요하지 않고 기계를 다루거나 부지런하면 가능한 일들로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답변이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캐나다에서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최소 영주권)이 없어 안된다는 답변뿐이다. 정말 어렵다.


몇 개월이 지나 자동차 부품업체 중 괜찮은 곳이라는 Magna에 운 좋게 고용되어 조립 부서에서 일을 하게 된다. 오래 일을 하다 보니 이야기를 나누는 동료들도 생기고, 우연찮게 동료가 AB Sciex라는 회사에 자기 사촌이 다니는데 요즘 사람을 뽑더라는 이야기를 해준다. 생전 들어보지도 못했던 질량 분석기라는 것을 만드는 바이오 회사, 뭐 지난 수백 통의 이력서에 하나를 더 한다고 해서 손해 볼 건 없다는 생각에 기술공 일자리에 이력서를 넣게 된다. 엔지니어는 꿈도 못 꿀 일. 다행히 인터뷰는 몇 주 후에 잡혔고 회사 웹사이트를 달달 외워서 나름 괜찮게 했다고 생각하며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온다. 그래도 몇주후면 연락이 오겠지? 겨울, 봄, 여름 이렇게 시간이 지나간다. 기대했던 소식은 없다. 공장에서 일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은 보이질 않는다. 하지만 공장에서의 일로는 워킹비자 스폰서를 받을 수가 없다. 학생비자, (배우자에게 워킹비자를 준다),를 위해 결정했던 와이프의 대학생활도 뭔가 어긋나고 있다. 가슴이 답답하고 패배자라는 생각이 든다. 이젠 더 이상 캐나다에서 법적으로 살 방법이 없어 보인다. 모든 걸 내려놓고, 뭐 내려놓을 것도 없지만, 와이프와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시작한다. 한국에서도 여기서와 마찬가지로 살기위해 일을 찾아야 하니 친구들이나 친척들에게 전화를 돌린다. 한국은 캐나다와는 달리 아는 사람은 있다. 그래도 다행이다.




살면서 가끔 느끼는 신의 장난이 바로 이런 게 아닌가 싶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생에 최고의 날이란게 바로 이런게 아닌가 싶다. 지난해 겨울에 인터뷰를 보고, 봄이 지나 더운 여름을 느끼며 패배자의 커피를 마시는 어느날 아침,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온다. "Hello" "This is from AB Sciex HR department. We've decided to hire you, so come visit to sign the contract" 뭐래는 거야? 날 고용하겠다구? 반년이나 지나고 나서? 와서 계약서에 사인하라고? 이런!! 우리 부부가 캐나다에 와 가장 행복했던 순간 중에 하나다. 그냥 우리 둘은 얼싸안고 있다. 정말 기쁘다.


TK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