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레곤 주립대가 있는 작은 도시, 코발리스에서의 하루

by TK

이번 출장은 오레곤 주립대가 위치한 작은 도시, 코발리스였다. 도착 전, 정보를 얻기 위해 "코발리스 그곳이 알고 싶다"라는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 가입했다. 첫 질문은 단순했다. "한국 음식을 먹으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요?" 여러 답변이 돌아왔지만, 한 식당 이름이 눈길을 끌었다. '청송'. 하지만 구글에서 코발리스와 한국 음식을 검색해도 청송은 어디에도 없었다.


도저히 찾을 수 없어 염치 불구하고 다시 물었다. 그러자 돌아온 답변은, "아마 '아오마츠'로 이름이 바뀌었을 거예요." 그렇게 급히 '아오마츠'를 검색해 주소를 찾았다. 식당은 밤 10시에 문을 닫는다는데, 포틀랜드 공항 도착 예정 시간이 7시, 공항에서 코발리스까지는 약 2시간 거리. 충분히 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설렜다.


달려라, 소주 한 잔과 따끈한 국물

식당에 도착했을 때, 이상하게도 손님은 보이지 않았다. 문을 열자 딸랑거리는 종소리와 함께 직원이 나타났다. "아직 영업하시나요? 식사 가능할까요?"

직원이 대답했다. "좌석 이용은 5분 후 마감이지만, 테이크아웃은 가능합니다."

아쉬움을 삼키며 다음 날 다시 방문하기로 했다.


찌라시, 그리고 나만의 기준
다음 날, 어제 만난 직원이 나를 기억하고 웃으며 맞아주었다. "어젯밤에 오셨었죠?" 고개를 끄덕이며 "오늘은 여기서 먹고 싶습니다"라고 말하고 자리에 앉았다. 새로운 스시집에 가면 늘 주문하는 메뉴가 있다. 바로 찌라시. 스시 밥 위에 신선한 회를 얹어 낸 음식인데, 이를 통해 식당의 회 퀄리티와 스시 밥의 실력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드디어 찌라시가 나왔다. 흰 살 생선 한 점, 참치, 연어를 맛보았다. 자연스레 왼손 손가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음식을 감상할 때 습관처럼 하는 행동이다. '이 작은 대학 도시에서 이런 맛있는 스시를 만나다니.' 감탄하며 즐기고 있는데 문득 생각이 스쳤다.


'이 스시가 정말 객관적으로 맛있는 것일까? 아니면 오레곤의 외딴곳이라는 연유로 내가 기대치를 낮춰 맛있게 느껴지는 걸까?'


비교 속에 잃어버린 우리 자신
Morgan Housel의 Same as Ever가 떠올랐다. 책에서는 1950년대의 삶과 현대의 삶을 비교한다. 50년대에는 모든 것이 부족했지만, 이웃 모두가 비슷한 환경에서 살았기에 비교 대상이 없었다. 현대처럼 소셜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삶이 아니었던 것이다. 주변의 모든 것이 단순했기에 행복의 기준도 단순했고, 사람들은 지금보다 훨씬 높은 행복감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우리는 "넌 있는데 왜 난 없지?" "넌 할 수 있는데 왜 난 못 하지?"라는 끝없는 비교 속에서 살아간다. 소셜미디어를 켤 때마다 남들의 화려한 삶이 눈앞에 펼쳐지고, 우리는 자꾸만 부족함을 느낀다.


그러나 이런 비교의 끝에 있는 것은 무엇일까? 스스로를 깎아내리며, 만족감 없는 삶을 이어가는 것일 뿐이다. 삶은 상대적 만족이 아니라, 절대적 가치에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자주 잊는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해야 할 일
코발리스의 스시집에서 느낀 맛은 어쩌면 음식 자체가 아니라 나의 기준 변화에서 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비교를 멈추고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나는 정말 무엇을 원하는가?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끊임없이 비교하고 스스로를 깎아내리기보다, 내 삶의 기준과 가치를 다시 세워야 한다. 주변의 화려한 모습에 눈을 빼앗기기보다 내가 가진 것들에 감사하고, 나만의 기준으로 만족감을 찾아야 한다. 코발리스에서의 작은 깨달음은 나에게 이를 상기시켰다.


삶은 비교 속에서 빛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색으로 가치를 만들어 갈 때 진정으로 빛날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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