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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솔웅 Jan 10. 2023

알프스 작은 마을에 모인 사람들

2009년 1월 30일

스위스 다보스Davos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에 갈 수 있는 기회를 알게 되었다. 팀장인 마이클에게 함께 가자고 제안했지만, 2월에 있을 워크샵까지 마쳐야 할 일이 많아 어렵단다. 그래도 혼자라도 다녀오라며 흔쾌히 여비까지 쥐여줬다.


조금이나마 차비를 아껴볼까 고향 루가노Lugano에 가는 동료 로베르토의 차를 얻어 타고 루체른Luzern까지 가기로 했다. 레만호 지역을 지나고 뉴샤텔Neuchâtel 호수 지역을 벗어나자, 표지판은 어느덧 프랑스어가 아닌 독일어로 표기되어 있었다. 출발한 지 두어 시간이 지나 루체른에 도착했다. 로베르토는 나를 루체른 기차역에 내려주고 산 넘어 이탈리아어를 쓰는 티치노Ticino 지역으로 향했다. 그는 운전대를 잡으며 하루에 세 가지 언어를 연습할 수 있다며 좋아했다. 그의 배려로 나는 차비를 많이 아낄 수 있었다.


루체른에서 올라탄 기차는 얼마 지나지 않아 탈빌Thalwil에 도착했고, 탈빌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란다콰르트Landaquart로 향했다. 호수를 지나고 넓은 들판을 지나 란다콰르트에 도착했다. 본격적으로 산을 오르기 위해 란다콸트에서 다보스행 글래시어 익스프레스Glacier Express에 올라탔다. 기차 내부 천장을 포함한 대부분의 면은 커다란 창으로 이뤄져 있었다. 주변의 멋진 경치를 관람하는 데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기차는 어느새 하얀 눈이 덮인 깊은 산을 오르고 있었다. 기차에는 스키 시즌을 즐기는 스키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스키어들은 스키를 탄 채 기차에 타고 있었는데, 그들은 ‘기차를 타고 산을 올라 스키를 타고 내려오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 안전한 슬로프를 내려오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이다. 새하얀 눈으로 두껍게 뒤덮인 알프스 대자연의 구석구석을 스키를 타고 낭떠러지와 커다란 나무들을 피해 자신의 최고 속도로 내려오는 스키어들의 모습은 과연 도전적이었다. 그들의 뜨거운 열정은 땀 냄새와 열기로 가득해진 기차 안에서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가파른 경사를 오르던 기차는 이제는 평지를 달리고 있었다. 처마가 넓은 것이 특징인 스위스식 집인 샬레chalet들이 하나둘 보였다. 다보스에 가까이 왔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해발 1,500미터에 자리 잡은 유럽에서 가장 높은 마을 다보스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아주 작은 마을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작은 마을에서 세계적인 포럼이 열리는지 의아했다.


매년 1월 말 전 세계의 시선은 스위스 그라우뷘덴Graubünden 칸톤에 있는 작은 마을 다보스로 집중된다. 하지만 그 시작은 지금만큼 화려하지는 않았다. 다보스포럼은 독일의 경제학자이자 엔지니어인 클라우스 슈바프Klaus Schwab에 의해 1971년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유럽경영심포지움European Management Symposium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제네바 대학의 젊은 교수로 재직하며 점점 그 규모를 키워 지금의 세계경제포럼을 일궈낸 것. 그렇다면, 슈바프는 왜 다보스에서 포럼을 시작했을까? 뉴욕이나 파리와 같은 대도시가 아니라, 알프스 산 아래 파묻힌 작은 마을 다보스에서의 포럼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보스는 독일 작가 토마스 맨Thomas Mann (1875-1955)이 쓴 소설 <마법의 산>Der Zauberberg (1924)의 배경이기도 하다. 다보스는 스키어들에게 주목받는 곳이기도 하지만, 고도가 높고 공기가 좋아 결핵이나 폐병 환자들이 찾는 의료휴양지란다. 이 소설은 병으로 요양 중인 사촌을 찾아갔다가 다보스가 좋아 칠 년간 머물게 된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이는 아마도 클라우스 슈바프의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는 포럼에 오는 이들이 조금이나마 세상과 거리를 두고 쉬면서 세상에 관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논의하자는 바람을 가졌던 것 같다. 잠시나마 복잡한 세상에서 벗어나 맑은 공기를 마시고 머리를 식히며 다른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책이 무엇인지 찾아보는 것이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건물 지붕 위에 수북이 쌓여 있던 눈 뭉치를 날리며 커다란 헬리콥터 한 대가 지나갔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누군가가 탄 헬리콥터일 것이다. 다보스의 추운 날씨 탓에 꽁꽁 얼어붙은 도로 위로 검은 세단들이 줄지어 느린 속도로 지나갔다. 검은 세단의 주인들은 방금 지나간 헬리콥터가 그저 부러웠을 것이다. 뛰는 놈 위에는 나는 놈 있다더니… 마을 구석구석에는 검은 정장에 선글라스와 무전기를 찬 경호원들이 삼엄한 경계를 펼치며 전 세계에서 모인 정상급 인물들을 호위하고 있었다.


기차역 옆의 광장 한쪽에서 한바탕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포럼 반대’를 외치는 시위대가 경찰과 대치 중이었다. 세계의 이목을 끄는 장소인 만큼, 활동가들에게도 다보스는 단골 시위 장소였다. 알프스의 이 작은 마을은 겨울 스포츠를 즐기러 온 관광객들과 포럼 참가자들, 세계 각국의 기자들, 경찰과 군인, 포럼 반대 시위자들까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내가 참석하는 프로그램에 늦지 않기 위해 미리 장소를 알아두고 하룻밤 머물게 될 다보스 지부 와이웸 사무실을 찾아갔다. 다보스는 워낙 작은 마을이라 사무실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휴가 기간이라 근무하는 직원은 없었지만 내가 편하게 머물 수 있도록 필요한 내용을 자세하게 작성해 이메일로 알려주었다.




2008년이 끝날 무렵, 전 세계는 유례없는 경제 위기를 맞이했다. 리먼 브라더스Lehman Brothers를 비롯한 큰 규모의 은행과 기업들이 파산신청을 했고, 이로 인해 월스트리트Wall Street의 여러 주식은 종잇조각이 되어버렸다. 전 세계의 경제는 벼랑 끝의 흔들거리는 바위처럼 위태롭게 서 있었다. 경제 위기로 시작된 2009년 그래서 세상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다보스로 향해 있었다.


당시 포럼에는 2천여 명의 영향력 있는 정치, 경제계 리더들이 모여 세계 경제와 사회 발전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내가 참석한 포럼에는 전 유엔 사무총장 코피 아난과 남아메리카에 위치한 가이아나Guyana의 대통령, 바라트 자데오Bharrat Jagdeo 등의 세계적인 정상들이 참여하여 두 시간 동안 기후변화 등 환경 문제에 대해 논쟁을 벌였다.


짧은 시간이었던 만큼 새로운 쟁점을 발견하진 못했지만, 문제의 발단은 ‘인간의 욕심’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많은 경제전문가 역시 이번 경제 위기의 이유를 한 목소리로 일축했다. 바로 '미국은행들의 욕심' 즉 도덕적이지 못한 기업경영이라고 지목했다. 이들은 나눔은 커녕, 부도덕하고 부적절한 방법으로 이득을 취했던 것이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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