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31일
버티니는 한창 워크샵 준비로 분주했다. 리셉션으로 들어가자 털털한 모습으로 페인트칠을 하고 있던 지부 책임자 콜린이 반겨주었다. “티모시! 다보스는 잘 다녀왔니?”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온 그녀는 권위적인 모습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모두에게 존경받는 리더였다. 우리는 짧은 대화를 이어갔다. “유엔 사무총장 코피 아난과 가이아나 대통령을 본 것은 좋았는데요, 형식적인 대화만 오가서 조금 실망스러웠어요.”
콜린은 끄덕이며 자신이 참여했던 국제회의를 언급하며 입을 열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안부도 묻고 이런저런 이야기하다 보면 벌써 삼사십 분은 지나고, 본론에 들어가면 사실상 한 시간도 없어… 그중에 정말 중요한 이야기는 얼마나 되겠어.” 그녀는 말을 이었다. “그래도 중요한 건 경험이지. 네가 다보스까지 다녀왔다는 것. 누구나 다 갈 수는 있다지만, 정말 가는 사람은 몇 명 안 되잖아. 특히 너 같이 젊었을 때 그런 경험을 했다는 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거야.” 어찌 보면 무모한 도전 같은 나의 순수한 열정을 그녀는 응원하고 있었다.
“세미나 하나를 맡아서 진행하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워크샵 마지막 주에 책임자인 자나가 물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패기 하나는 정말 끝내줬다. 그렇게 얼떨결에 세미나 하나를 맡아 진행하게 되었는데, 두 달도 안 된 멋모르는 신입을 이렇게까지 지원해 주는 그들의 모습에 나 역시 신기할 따름이다.
내가 사람들에게 나누고 싶은 주제는 ‘환경과 정의’였다. 나는 학창 시절 때부터 환경에 관심이 많아 <지구는 더 늦기 전에 에어컨을 켜야 했다>Earth had to turn on the air conditioner before it was too late라는 글을 써서 과제로 제출하기도 했다. 여기서 내가 언급한 에어컨은 허리케인 앤드류Hurricane Andrew (1992)나 카트리나Hurricane Katrina (2005)를 말한다. 나의 논리는 매우 간단했다. 방 안이 더워지면 창문을 열든지 선풍기를 켜는 것처럼, 지구도 더워지니 시원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즉, 선풍기로도 해결되지 않는 더위를 식히기 위해 에어컨을 틀었다는 것이다. 학교 한 선배의 아버지가 환경공학과 교수로 계셨는데, 자문까지 구해 글을 썼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환경에 대한 나의 관심에 크게 기여한 책이 있다면 2000년 미국의 대통령 후보였던 앨 고어Al Gore의 저서 <불편한 진실>An Inconvenient Truth (2006)이다. 이 책이 출간되고 다큐멘터리로 제작도 되면서 환경문제는 더욱 공론화되었다. 다큐멘터리는 2006년 아카데미에서 수상을 했고 앨 고어에게 노벨평화상까지 안겼다. 당시 정치와 경제를 막론하고 환경문제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뜨거운 감자로 대두되었다. 이런 영향을 받았던 나는 사막화와 산림파괴, 홍수와 가뭄 등의 자연재해, 프레온가스와 오존층, 스모그와 황사, 생태계 교란과 멸종 위기 동물, 해수면 상승과 기후변화, 심지어 빛 공해와 자원 갈등까지 광범위한 자료를 수집하며 강의를 준비했다.
내가 진행한 세미나에는 극소수의 사람들만 참석했다. 당연한 결과였다. 나는 검증되지 않은 강사였고 말주변이 좋은 사람도 아니었다. 게다가 같은 시간 때에는 베테랑 강사들이 여러 흥미로운 주제의 강의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뜻밖의 사람이 내 앞에 앉아 있었다. 지부 책임자 콜린이 강의실에 앉아 있던 것이다. 콜린의 존재만으로도 마치 사람들로 가득 찬 강의실 강단에 올라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세미나 중간중간에 질문하며, 내가 놓친 부분이나 미흡한 부분을 자연스럽게 보충하도록 도와주었고, 강의가 끝나고 건설적인 피드백을 해주고 칭찬도 잊지 않았다. 그녀가 발휘해 준 리더십으로 나는 빛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