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해버렸던 것들

처음의 시작

by 티나

이상하다.

나오지 말아야 할 곳에서 피가 나온다.



결혼을 앞둔 2월,

브래지어에 피가 묻어있다.


하하호호 웃고, 맞장구를 잘 치는 '나'란 사람은, 다른 사람이 보기엔 조금 둔할 것 같은 몸을 가지고 있는 사람. 하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몸에 대한 '예민도'가 높은 사람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나는 정신건강으로 그래 괜찮아, 이 정도면 넘어가도 돼. 하지만 무의식이 나를 아프게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몸은 어렸을 때부터 신경성이라는 병명 아래, 많은 곡소리를 내주었다.

"제발, 너 좀 보살펴!"라고, 하지만 나는 끝까지 외면해 왔던 것이다. 사람은 꼭, 큰일이 터져야만 아주 작게나마 깨닫는 법이더라.



이곳은 믿지 못하겠다. 서울로 가자.


고민 고민하다 그래도 여쭤볼 곳은 학교 연구실 밖에 없어서 내 이야기를 터놓게 되는데 옆에서 매일 수다를 떠는 띠동갑 무려 2바퀴 위의 선배님께서 하신 말씀.



"지금 결혼이 중요한 게 아니야, 너의 몸부터 체크해."



곧바로 살고 있는 병원을 찾아갔고, 모양이 이상하다며 바로 검사를 하자고 했다. 하지만 나는 하지 않았다. 나와 같은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이유. 이곳은 믿을만한 병원이 없다. 가족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지만, 조금씩 무서워지기 시작한 탓에 언니와 엄마에게만 알렸다. 그게 비밀이 지켜질 리가 있나. 소식을 들은 형부는 지인의 지인을 다 동원해서 유명하다는 유방외과 의사가 운영하는 개인병원을 접수해주었다.




방학 기간에 맞추어 병원 일정을 잡았고, 대수롭지 않은 의사의 말은 1시간도 안 걸리는 시술이며, 조금 불안한 부분이 있으니 시술 중 떼어낸 조직으로 조직검사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전문적 권위 앞에 어떠한 선택이 있으랴, 서울이라면 지방보다 낫겠지라는 생각의 모녀는 바로 일정을 소화하기 시작한다.



"여기 누우시구요, 원장님 오시기 전까지 자세 잡고 수액 준비하고 있을게요."

병변이 보이는 오른쪽 유방의 부분을 맘모톰이라는 기계로 제거하는 시술을 받기 위해, 다시금 초음파실에 누웠다. 수술실은 따로 없나 보다. 오른팔을 들어 올리란다. 암요, 해야죠. 그런데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리기 시작한다. 가뜩이나 손발이 차가운 나인데 바들바들 떨리며 손이 얼음 손이 되어간다. 그때 내 나이 만26세.



시술 기계가 들어가는 부분만 마취가 들어가는 터라 마취주사를 맞고 시작한단다. 뻔히 아픈 거 알면서 의사 선생님은 물으신다. "아파요? 괜찮죠? 마취했으니 괜찮을 거예요" 지금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마취했다는데 왜 이리 아픈 것인가. 바들바들 떨리는 입술로 작게 괜찮다고 대답했다. 아마 그 불안과 떨림을 알아차렸는지, 간호사 한 분께서 내 손을 잡아주었기에 그 고마운 온기에 작게나마 대답이라도 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무엇이 나가는 것인지, 도대체 내 가슴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는 것인지 모르는 체 의사와 간호사의 바쁜 대화, 그리고 수으욱컹, 수으크엉의 아주 일정한 기계음과 눈을 감고 한 숨 자라고 명을 받았지만 그 명을 받들지 못하고 바들바들 떨고 있는 환자만이 있는 공간이었다.



그러다 정적을 깨는 의사 선생님의 한마디, "마취한 부분은 아닌데, 더 제거해야 할 것처럼 보여요. 아파도 좀 참아요." 뭐라고, 마취한 것도 아팠는데 생으로 더 제거한다고? 왜요?라고 묻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이미 생살을 뜯고 있었기에, 아픈데 움직이면 안 된다기에 내 손을 잡아주고 있던 간호사의 따뜻한 손만 더 움켜쥐며 눈물만 흘렸을 뿐.



결과가 걱정됩니다.


수술이 끝나고 나를 재우는 약을 쓴 것 같다. 기억이 없다. 그리고 시계를 봤는데 시간이 꽤 흘렀다. 엄마의 말로는 20분만 하면 끝난다는 시술이 1시간이 넘게 걸렸다고. 잠에서 깨니 너무 아프다. 개인병원 병실이라 좁디좁은데 너무 아프다. 눈을 뜨니 보이는 엄마, 안쓰러운 얼굴을 하시지만 우리는 서로 부둥켜 안거나 그렇게 위로하는 사이는 아니다.(사이가 나쁜 것은 더더욱 아니다.)


내 몸에는 내 몸통만 하게 붕대가 가슴에 감겨 있었고, 멍이 들 수 있으니 무거운 것으로 누르고 있었다. 그 붕대를 감고 퇴원을 하는데,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보인다.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늘씬한 언니들 그런데. 그들은 분명 나 같은 상황은 아닌 듯하다. 그러고 나서 둘러보았는데 아, 다 성형외과구나. 다른 이유지만 그들도 참 아프겠다는 생각을 하고 모든 에너지를 소비한 채 누워도 앉아도 사라지지 않는 통증과 불편함을 가지고 하루를 보냈다.


다음날 의사 선생님과의 면담, 수술은 잘 되었단다. 맨날 잘되었다고 하지 잘못했다고는 안 하는 것 같다. 쳇 아무튼 나의 병변을 도려내다 보니 오른쪽 유방 4cm × 6cm의 범위를 도려냈고, 수술 중 기억나는 한마디는 다음에 왼쪽도 하려면 시간 내기 힘드니 왼쪽도 합시다. 해서 왼쪽 물혹도 몇 개 제거했다는 경과보고. 이렇게 끝날 줄 알고 나는 용기 내어 질문한다. 그럼 이제 괜찮은 거죠?



왜 바로 대답을 안 합니까. 왜 자신 있게 괜찮다고 안 하는 거냐고요. 돌아오는 답은 조직검사의뢰가 꼭 필요해 보여서 의뢰했으니 그 결과를 기다려 보자고 한다. 빨라도 1주일은 걸린다고. 이때는 몰랐는데, 진정한 환자가 되고 나면 기다림은 환자의 기본 갖춰야 할 덕목이다. 병마와 싸우다 지치는 것보다 기다리다 지치는 일이 허다하니까.



그리고 일주일 뒤, 다시 찾아간 서울.

[다발성 유두종] 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그냥 대부분의 혹이 물혹(섬유선종)인 것에 비해 오른쪽 유방은 다발성 유두종이라고 나왔다고. 그래서 유방암은 아니지만, 씨를 어디에 어떻게 뿌렸을지 모르는 병변이라 다시 또 재발할 수 있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 지금 생각해보면 뒤에 말을 더 유의 깊게 듣고, 더 명심하고 더 조심했어야 했는데. 암은 아니지만 이라는 두괄식에 이미 다른 건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외면한 결과 3년 동안 복을 가져다준다는 첫째와 절대 예상하지 못한 쌍둥이를 임신하는 기간에 2번의 맘모톰 시술을 더 받게 된다. 같은 그곳에서 또다시 벌벌 떨며, 조금은 익숙해질 법한 그곳에서 말이다. 쌍둥이 출산을 앞두고 정기검진을 받던 그날 우리의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가장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고 만다.



이제 안 와도 돼요. 절대 다시 재발할 일은 없어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를 진료한 의사가 무려 총 3년의 기간을 지켜본 의사가 다시는 안 와도 된단다. 절대 아니란다. 그 말에 모든 행복감을 느꼈던 나.



사람 말을 철석같이 믿는 '나'이기에 방심한 탓일까, 아니면 정말 육아가 체질에 맞지 않아서였을까.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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