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이다
3차 병원.
쉽게 올 수 없는 곳이랬다. 하지만 막상 병원에 가보면 이야기는 다르다. 전국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다. 다 각기 사연이 있겠지.
아파서 왔지만, 병원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은 너무 어려워서 두리번 거리는 엄마와, 걸음걸이 마저 무뚝뚝해서 무조건 1m 거리를 두고 걷지만, 누구보다 걱정이 가득한 아들.
살짝 굽은 허리와 야윈 몸으로 딸에게 의지하고 있는 아빠와 팔짱을 끼고 손으로 식당을 가리키며 메뉴를 정하는 딸
그래도 조금은 웃음기가 있는 중년의 여성과 가족보다 더 걱정하는 마음으로 함께 버스, 지하철, 택시, 기차를 함께 타고온 최소 10년이상 묵은 진국의 친구들.
혹시나 짐이 될까 자기가 다 안다고 우기는 환자와 잘못된 것이니 자기만 믿으라는 보호자.
수 없이 고개를 들어 전광판에 환자의 이름이 적혔는지 확인하는 딸. 전화로 시시각각 상황을 보고하는 며느리. 혹여나 거동이 불편할까 무료 휠체어를 빌려오고 대신 손과 발이 되어주는 사람들.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든 교통수단을 다 이용해서 10분도 채 안되는 교수님의 얼굴을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 8도 사투리를 다 들으려면 병원 만한 곳이 없다 할 정도로 다양하다. 가끔 그 곳에서 남쪽 끝 섬나라의 언어를 들을때면 내심 반갑고 미소가 질 정도니까. 그렇게 다양한 사람 구경을 하게 되는 곳이 이 곳이다.
나를 가장 마음 아프게 하는 사람은, 바로 누구보다 피곤한 얼굴이지만 애써 힘을 내어 미소를 지으며 아이에게 힘든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는 엄마와 너무 아픔을 빨리 알게된 어린 아이들이다. 병원을 이미 훤하게 꿰고 있는 꼬마 아이도, 자신이 왜 여기 있는지 조차 모를 아이들까지.
넓고 큰 병원이지만,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허락된 곳은 너무 좁기에, 그 곳에서만이라도 바깥 구경을 간접체험하는 아이들. 그리고 심지어 이런 자유조차 얻지 못하는 아이들까지.
아이들의 부푼 손등과, 쉐이빙한 머리를 감싸주는 모자를 볼 때마다 여전히 코 끝이 아려온다.
사연이 어떻든, 병에 경중이 있다고 여기든, 지역이 어디든, 직업이 어떻든 모두가 같다. 아프고 나면 환자이고, 보호자가 필요해진다. 아픈 환자 만큼나 힘들 보호자.
서로의 힘듦이 켭켭이 쌓여 자신들도 모르게 화살을 쏘게 되는 관계, 환자와 보호자
이런 생각이 들 때, 나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감사함과 미안함이 함께 몰려온다. 아픈 사람을 돌보고 조금 더 움직이고 배려하는 일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특히나 기약이 있는 아픔이 아닌 경우에는 더욱더 그렇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가 '알아서 하는 일' 아니겠는가. 아무리 가족이더라도, 어떻게 환자의 마음을 100% 알겠는가, 환자 자신도 100% 모르는게 마음인데.
그래도,
내가 설령 내 마음을 정확히 몰라서 괜찮다고 에둘러보다가 더 아프게 되더라도
내가 설령 힘듦이 쌓여서 짜증이 나도 모르게 섞일지라도.
아픈게 바로 나여서 다행이다.
내가 환자여서 다행이다.
내가 환자여서 다행이다.
나의 아픔은 내가 견뎌내면 그만이다. 그리고 조금씩 내려놓기와, 다시금 시작하기를 통해 나의 마음을 단단하게 하며 하루를 살아가면 그만이다. 일상이 조금 망가질지언정, 다시금 나는 그 상황에서의 일상을 찾아낼테니까.
하지만, 나의 부모님이 아플 수 있는 나이가 되어가고 있기에 상상해보면 너무 슬프다. 나이듦이 순리라고 하더라도, 나의 부모님은 건강하셨으면 좋겠고 이런 큰 병원은 자녀가 돈을 많이 벌어서 건강검진을 럭셔리하게 받으실 때가 오셨으면 하는 것이 내 마음이다. 정확히는 내 욕심이다. 그리고 내 남편과 내 아이들이 아픈 것은 상상도 하기 싫다. 고사리 손에 링거를, 머리가 다 빠져서 상실감과 싸리한 병원 냄새를 너무 일찍 알게된다면 그건 내가 아픈 것과는 다르게 하늘이 한번 무너져 내릴 것 같다.
아픈 환자지만, 아픈 사람의 마음을 100프로 다 이해할 수 없더라. 그래서 내가 과연 보호자였을 때 서운하지 않게 아픔을 공유하고 토닥여줄 수 있을까. 아니, 나는 그렇게 잘 못할 것 같다. 100프로 이해란 없을 수 밖에 아는 것도, 현실의 상황이 아픈 사람을 가끔 밀려나게 하기도 하니까.
내가 아는 모든 이들은 건강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픔은 나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