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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나 Dec 21. 2022

다가온다. 그날이

크리스마스는 모두의 축제

12월 25일.


모든 사람에게 따뜻하고 행복한 사랑의 축제.

크리스마스다.


그리고 하나 더 바로 나의 생일.



88년 12월 25일.

그렇다 쌍팔년도 용띠. 서울 올림픽이 끝나고 끝나고 한참이지만, 올림픽 해에 태어났네.

나에게 생일의 수식어들을 대부분 이렇다. 그리고, 꼭 빠지지 않는 그 말.



와, 크리스마스가 생일이라고? 좋겠다~



허!

크리스마스가 생일이라서 좋다고? 왜? 도대체 왜? 느그들이 나의 고충을 알고나 있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크리스마스가 생일이니 사람들이 기억하기도 좋고 선물도 좋게 받고 너무 행복했겠다. 라고 말해주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몇몇의 날들이 있다.




  아빠가 연말이라 회식으로 술을 거나하게 드시고 오신 날. 술에 취한 아빠가 타고 오는 엘리베이터 소리에 얼른 이불을 덮어버리는 우리들이었지만, 그날 따라는 궁금했다. 무엇을 들고 오시는지. 술 취한 아버지의 출구 없는 이야기들을 듣고 있노라면, 너무 힘들지만 그것도 극복하고 나는 기다렸다. 그냥 그러고 싶은 날이었다. 역시 나의 촉은 틀리지 않았고, 아빠의 손에는 [그랑드랑], 지금은 없어진 패밀리 레스토랑의 케이크가 들려있었다. 파티라고는 저 지구 반대편 사람들이나 하는 줄 아는 우리 집이었기에, 그 케이크는 나에게 설렘을 가져다주었다. 뭐, 그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잠들 때까지만 해도 좋았지.  

  파티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다음 그 어제의 케이크가 먹고 싶었던 나는, 서둘러 아빠를 깨웠지만 돌아오는 아빠의 한마디는 나의 설레었던 그 마음을 산산조각 내주었다. "너 생일이니까, 네가 밥을 차려라." 그 말이 그 어린 나이에 얼마나 비수로 꽂혔던지, 크리스마스에 스스로 밥상을 차리는 그것도 생일상을 차리는 사람은 나 밖에 없으리라. 그 와중에 말리는 시누이는 더 미운법이라고, 엄마는 "그럼 되겠네, 미역국은 끓여놨고. 밖은 다들 복잡하니까 아침 먹음 됐지 뭐." 그 어린 마음에 그래도 케이크를 불고 싶어서 미역국 밥상을 차리던 어린 꼬마에게 너무나도 잔인한 날이었다.




  친구들은 항상 나에게 선물 두 개 받겠네?라고 말했지만 가당치도 않은 소리. 선물을 받기라도 하면 다행이게. 이렇게 아주 잘 다듬어져서 생각을 하고 살던 나에게 예상치 못한 복병이 나타났다. 사람 마음이 갖지 못할 땐 그런가 보다 하다가 나를 빼고 갖는 꼴은 무지무지 배가 아픈 법이다. 그 인물은 바로 남.동.생. 나와 6살의 나이차이가 있는 그 위인은 생일, 어린이날, 크리스마스를 야물딱지게 챙겨먹는 대단한 삼식이었다. 

  선물을 안 받는 게 당연하게 지내오던 나에게 그 삼식이 덕에 선물을 받은 기억이 있다. 바로 벙어리장갑. 아침에 눈떠서 머리맡에 놓였던 금박 포장지를 북북 찢어 받았던 그 기쁨의 벙어리장갑. 하지만 껴보기도 전에 금은 돌이 되었다. 장갑을 끼며 보게 된 같은 포장지 게다가 같은 사이즈 아, 쟤도 나랑 같네? 뭐야 이건 내게 생일 선물이야? 산타선물이야? 지금 생각해도 우리 엄마 너무했다.

  



  뭐 같은 선물을 받은 것쯤이야. 그리고 생일선물과 크리스마스 선물을 하나로 받은 것쯤이야. 그래 내가 백번 양보할게, 하지만 내가 산타가 되는 건 아니지 않수? 앞서 말했듯이 6살 차이 나는 남매였기에, 남동생이 크리스마스의 진가를 알게 될 때쯤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이었고, 이미 산타는 없음을 아는 아이 었기에 아무렇지도 않게 부모님은 삼식이가 갖고 싶어 하는 큰 로봇을 아파트 계단에 숨겨두셨고, 사인이 떨어지면 나는 가져다가 몰래 가져다주는 것이었다. 나름의 스릴이 있었긴 했지만 정말 바보천치가 따로 없다. 

  



  축복받은 날 태어났다며, 사람들이 잊지 않겠네요.라고 해주는 사람들. 뭐 내 생일이 특별한 날이긴 해도 꼭 기억해야 하는 법은 없지. 하지만 그걸 알고들 있나 싶다. 나는 참 다른 사람의 생일을 기억을 잘하는 편이다. 이상하게 그건 그렇게 잘한다. 그냥 기억이 난다. 그날은 누구 생일이다 하고. (이런걸로 대학갔음 좋았을 걸)그래서 꼭 카톡으로나마 연락을 하는 편인데, 나의 생일이 아무리 특별해도 그날은 핸드폰을 많이 보는 날이 아니라서, 잊었든 기억했어도 연락을 못했든 2가지의 이유로, 생일축하는 반사되어 돌아오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쫌생이가 아닌데 한 번씩 배가 꼬이는 경우가 생기더라.

  지금의 남편은 연애시절부터 꼭 그 말을 해주었다. 자기에겐 크리스마스가 없다고, 12월 25일은 나의 생일만 있다고 뭐 별거 없는 저 말이 그 당시엔 어찌나 고맙고 멋져 보이던지. 내 마음을 다 알고 있는 듯한 저 남자가 든든하고 의지가 될 정도더라. 참, 귀가 얇았던 나다.




  크리스마스가 아무리 내 생일이어도, 내가 좋아하는 크리스마스트리를 꺼내서 꾸미며 그 분위기를 소박하게 내는 것. 화려한 파티를 해본 적도 없고, 큰 선물을 받아본 적도 없지만, 부모가 된 나의 크리스마스는 여전히, 내 생일보다는 크리스마스다. 아이들이 바라고 바라는 산타할아버지로 부터 받고 싶은 선물들을 몰래 엿듣고는 준비하고, 그래도 마음이 풍족했으면 하기에 엄마 아빠의 선물도 넣어두는 그런 날. 그리고 급하게 포장하고 007 작전을 쓰느라 정신없지만, 크리스마스이브의 마지막 트리모습. 반짝이는 트리 밑에 삼남매에게 남기는 선물들. 그리고 선물을 뜯고 5 식구가 다 같이 케이크라도 불면서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는 우리 가족의 모습들. 역시나 크리스마스는 바쁘고 복잡하니 외출을 하지 않는 것은 내가 아빠랑 결혼한 것인지 남편과 결혼한 것인지 헷갈리게끔 하지만. 생일상은 차려주니까 조금은 발전한걸로.

  




   색색깔 전구들, 트리의 오너먼트들을 생각해보면 그 모든 것들이 다 따뜻하게만 느껴지는 그날이 바로 크리스마스다. 눈이 오든 비가 오든 해가 쨍쨍이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행복감이 가득한 날. 그런데 어떤 스쿠루지들에게는 외롭고 고독한 날일지도 모르고, 나홀로 집을 지키는 사람들도 있을 거라는 것을 나는 안다. 루돌프가 길을 잃어 산타할아버지가 도착하지 못한 집들도 있을 것이다. 어린 내가 속상했던 나의 그날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그리고 이제는 그날의 따뜻함을 온전히 느끼기로 마음을 먹어보려 한다. 그래서 나는 한번도 쓰지 않았던 내 생일쿠폰을 써본다. 나와 내 가족은 크리스마스에 따뜻함을 전달하는 사람이 되자고. 그것이 내게는 가장 큰 생일 선물이라고 말이다. 그게 내가 이날에 태어난 이유일 거라고. 내 생일을 몰라주면 어떤가 셀프브랜딩시대에 이제는 내 생일에 따뜻함을 전달하며 세상에 대놓고 이야기해보지 뭐.


난, 12월 25일에 태어났어요.
제가 따뜻함을 나눠드릴게요.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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